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확대 경제장관회의에서 ‘금융권 보신주의’를 질타해 파장이 적지 않다. 그날 박 대통령은 “사고만 안 나면 된다는 금융권 임직원들의 의식 때문에 리스크가 있는 대출이나 투자를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금융이 제대로 역할을 안 한다면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진의가 무엇이건, 대통령의 금융 불신이 여과 없이 토로된 언어들이다.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질타는 그동안 창조금융과 기술금융 활성화를 수없이 강조했지만 현장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는 데 대한 불만의 표시일 것이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접시를 닦다 깨뜨리는 것은 용납할 수 있지만, 깨뜨릴 것이 두려워 아예 닦지도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보신주의가 팽배한 진짜 이유를 따져보면 금융권 종사자들만 탓할 수는 없다. 보신주의란 담보 위주의 안전 대출에 급급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위험이 있으면 몸을 사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금융이 본연의 자금중개 기능에 충실하려면 엄격한 심사기능을 통해 자본의 신뢰 프로세스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금융은 자율이 아닌 타율과 관치에 익숙해 있다. 금융회사들이 심사능력을 키울 새도 없이 온갖 명목의 정책금융이 할당되고, 시장의 자연스런 기술평가 이전에 벤처지원 정책자금부터 쏟아지는 식이다. 이런 풍토에서 심사 및 기술평가 능력이 생기고, 과감한 신용대출과 투자가 일어날 수는 없다.
당국에 대한 불신도 팽배하다. 위기 때마다 면책을 약속해놓고, 나중에 부실이 생기면 죄다 징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설상가상 대통령의 질타에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이 원래 보수적이고 책임지기 싫어하는 분야”라고 맞장구쳤다고 한다. 금융권 보신주의는 곧 금융당국의 보신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 올 때 우산 빼앗는 것은 분명 문제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에 고객 돈을 아무렇게나 굴리고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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