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기준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92시간. 이는 OECD평균 1705시간 보다 길고 가장 적게 일한다는 독일 (1317시간)과 비교할 경우 1.6배에 이릅니다.
같은 해 기준 한국의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은 5만6710달러(2005년 불변가격, 구매력평가기준). 이는 OECD 평균인 7만222달러의 81%, G7 평균인 8만780달러의 70%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또 2012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8.9달러 (구매력 평가기준)로 33개국 가운데 28위에 머물렀습니다. 특히 이 수치는 특히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가장 높은 노르웨이 (86.6달러)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 근로자가 3시간을 일해야 노르웨이 근로자가 1시간 일한 만큼의 가치를 창출했다는 얘깁니다. 앞 뒤 내용을 종합하면 우리의 옛 속담 ‘뿌린 만큼 거둔다’의 정반대인 셈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한국인, 한국 기업들이 ‘부지런한 비효율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분석의 출처는 LG경제연구원 강승훈 책임연구원이 7월 23일 발표한 보고서 ‘헛손질 많은 우리 기업들 문제는 부지런한 비효율이다’ 인데요.
“열심히 일하면서 뒤로는 이익과 자원을 까먹는 것이 부지런한 비효율의 민낯”이라고 강승훈 책임연구원은 정의했습니다. 부지런한 비효율의 5대 얼굴을 공개 수배합니다.
♣보여주기 = 성과창출 보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보여주기에 몰두하는 관행이야말로 부지런한 비효율의 대표다. 성과를 당당히 인정받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성과가 창출되기 이전의 투입 노력이나, 성과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보여주기에 힘을 쏟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보여주기에 병든 조직에서는 흔히 실행보다 계획에, 실속보다 형식에 방점이 찍힌다. 구성원들은 내용이 빈약한 보고서를 멋지게 꾸미고 회의 석상에서 멋진 발표를 통해 인정받고자 한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야근을 하기도 한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이 있고, 멋진 보고서가 있고 감동적인 발표도 있다. 하지만 실행과 성과는 없다.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대부분 고객이나 성과가 아닌 상사를 향해 있다. 잭 웰치가 위계적 조직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말한 ‘모두가 CEO를 바라보고, 고객에게는 엉덩이를 들이대는 조직’이 되는 것이다.
♣시간끌기 = 부지런하다고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속도는 더딘,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끌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의사결정의 책임 앞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조직학의 대가 에치오니가 지적했 듯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의사결정을 방어적으로 회피하거나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인 비효율이 발생 할 수 있다. 책임회피를 위해 비효율 뒤에 숨어 꼭 필요한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실행보다 계획이 중시되고 실속보다 형식이 중시되는 조직은 고객과 성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대안을 검토하는 하위자들은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를 거듭하며 불확실성이 사라지길 기다리고 필요이상으로 복잡한 결재단계 사이에서 줄을 타며 시간을 끌기도 한다.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위자도 마찬가지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보고서의 사소한 오류나 정보부족을 탓하며 재작업을 지시해 시간을 끈다. ‘돌다리도 두드려본다’는 격언이 ‘의사결 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의사결정은 없다’라는 격언을 압도한다.
의사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쉬는 것은 아니다. 모두 정보를 수집하며 바쁘게 뛰고 있고 보고서의 버전은 끝없이 올라간다. 그렇게 돌다리를 두드리던 한 순간 경쟁사는 이미 그 돌다리를 건너 신제품을 내놓는다. 남은 것은 완벽 한 (그러나 이미 쓸모없는) 보고서와 ‘우리의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어’라는 씁쓸한 자위 뿐이다.
♣낭비하기 = 개인과 조직의 이해가 어긋난 상황에서는 조직 자원을 조직목표 달성이 아닌 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도덕적 해이도 종종 발생한다. 2001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파산한 엔론사를 보자.
회사가 껍데기만 남은 상황에서도 구성원들은 회사의 돈을 물 쓰 듯 썼다. 거래 개발자들은 현실성 없는 사업계획을 갖고도 일등석을 이용해 해외 출장을 다니며 최고급 호텔에 묵었다. 회사 돈으로 업무와 관계없는 파티를 열기도 했다.
심지어 엔론이 파산하던 2001년에도 1000만달러 이상의 급여를 받아간 임직원이 15명에 달했다. 이러한 자아도취적 자원 낭비는 조직과 개인간의 목표 불일치시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agency cost)의 전형이다.
한국 기업의 경우에는 과도한 의전 儀典이 조직 성과와 무관한 낭비의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과도한 의전은 체면과 권위가 중시되고 조직과 상사의 구분이 불명확한 한국의 조직문화에 기인한 관행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과시적인 자의식과 상사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사심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면에서 도를 지나친 의전엔 기회주의적인 성격도 숨어 있다. 이러한 낭비는 단순한 비용의 발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원이 낭비되는 와중에 고객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방해하기 = 흔히 경영을 전쟁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그 전장이 조직의 내부가 돼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내부 경쟁의 이익이 외부 경쟁을 통한 이익보다 기형적으로 커지거나 내부 경쟁에서 밀리면 생존이 어렵다는 생각에 자기 보호 본능이 극대화되면 구성원들이 총구를 조직 내부로 돌려 내부 경쟁에 모든 힘을 쏟는 어처구니 없는 비효율이 발생하기도 한다.
건전한 내부 경쟁은 상호 발전과 조직 성과 향상의 밑거름이다. 그러나 내부 경쟁은 열심히 일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스탠퍼드대의 제프리 페퍼 교수와 로버트 서튼 교수가 말한 바 있 듯 제로섬 (zero-sum) 형태의 강력한 내부 경쟁은 조직 내 모두를 패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조직 자체도 패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
과도한 내부 경쟁 속에서는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직의 목표가 무시되고 협조와 의사소통이 사라질 뿐 아니라 서로를 방해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앞서 살펴본 엔론은 요란스러운 파산만큼이나 치열한 내부 경쟁으로 악명을 떨친 회사였다. 이 회사는 PRC (performance review committee)라는 시스템을 통해 매년 하위 15%의 직원을 퇴출하는 극단적인 내부 경쟁정책을 사용했다.
그 결과 조직내 협조가 사라지고 동료가 자신의 모니터를 훔쳐보는 게 두려워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한 임원은 경쟁사업부의 사업이 실패하자 승리의 V자를 그리는 직원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런 회사가 파산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의아한 일일 터다.
♣분산하기 = 20세기초 프랑스의 농업공학자 막스 링겔만의 실험 이후 널리 알려진 ‘사회적 태만 (social loafing)’ 현상에 따르면 협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개인별 노력의 최대량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 처럼 책임을 분산하고픈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조직은 구성원의 임무를 명확히 부여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의 선이 희미해지면 책임을 분산시키려는 욕구가 조직에 비효율을 일으킬 수 있다. 불필요한 이 메일의 남발이나 안건과 관련성이 없는 사람까지 참석시키는 회의에 따른 시간낭비가 대표적인 예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들은 하루 평균 74회나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직장인들도 다르지 않다. 메일 확인에 한 시간 이상씩 낭비하는 예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정말로 필요한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회의도 마찬가지다. 회의가 곧 일이 될 정도로 회의를 쫓아다니지만 자신이 왜 참석했는지 모를 회의가 상당수다. 책임의 회피와 분산을 위해 일단 이메일을 통해 내용을 공유하거나 혹은 꼭 필요치 않는 사람도 회의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최근 마이클 맨킨스 등 베인&컴퍼니사의 컨설턴트들 역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쓴 글에서 조직내 이메일이 폭증하고, 회의도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메일 체크와 회의 홍수에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고 고객에게 쓸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비효율을 일으키는 구성원은 소수일 것이다. 다수의 선량한 구성원들은 기존 관행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비효율적인 업무 관행의 1차적 책임 내부 경쟁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때 구성원과 조직 모두가 패자가 된다.
책임은 그렇게 일하도록 게임룰을 만든 조직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무관심과 관행에 따르는 태도는 비효율이 자라나는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선량한 구성원들이라 할지라도 조직 비효율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기는 어렵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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