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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정·재계 거물들의 옥중상련(獄中相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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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국회반장)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불법 정치자금이 검찰수사 대상에 오른다. 전 정권의 곪은 데를 도려내고, 정적(政敵)을 단죄할 수 있는 속된 말로 ‘일타쌍피'의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불법 정자자금의 출처가 드러나고, 공동종범으로 기업인들도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한다. 돈과 정치의 검은 커넥션이 단절되지 않는 한 5년마다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정경유착의 적폐다.

정·재계 거물들의 옥중생활은 베일에 쌓여 있다. 수감생활 자체가 말할 수 없는 심적고통과 수치심을 안겨줘 당사자들이 입을 굳게 봉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들의 수감생활은 측근들을 통해 일부 흘러나온다. 정치인들 중에는 자신의 수감 경험을 털어놓기도 하다. 정치자금법에 관한한 확신범에 속하는 정치인들은 대법원 무죄 판결만 이끌어내면 수감 횟수를 거물급 도약의 발판으로 삼기도 한다.

정·재계 거물들은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때문에 같은 기간 수감생활을 한 정재계 인사 중에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애뜻한 인연을 맺기도 한다.

2004년 불법 정치자금법에 걸려 유죄를 선고받은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과 정대철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이 같은 케이스이다. 과거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함께 활동한 후 여야로 갈려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 당대표를 거쳐 한 세대를 동고동락한 데다, 말년에 똑같이 대선 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러야 하는 동변상련을 겪으면서 둘은 피를 나눈 형제이상의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 의원은 지난해 보궐선거를 통해 복귀한 반면 정 고문은 아들 정호준 의원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현실정치에서 발을 뺀 상태다. 둘은 아직도 연락을 주고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역 국회의원 중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만큼 구치소 생활을 오랜 한 정치인을 찾기 힘들다. 박 의원은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을 시작으로 기업들의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된 횟수만 11번에 달한다. 서울구치소 행이 잦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과 ‘감방 동기'의 인연을 맺었다.

정·재계 인사들이 서울구치소에 오면 0.98평의 독방을 쓴다. 확정판결 전까지는 변호사 접견및 가족면회 등이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는 피해의식과 배신감 등으로 대부분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마음고생을 한다.

재소 경험이 있는 한 재계 인사는 “감옥에 가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일각에선 병보석을 노리고 꾀병 부린다고 의심하지만, 실제로 감옥에 억류되면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없던 병이 생기고 몸에 탈이 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정치자금법으로 기소된 안희정 충남지사와도 서울구치소 동기다. 자신이 ‘DJ를 위한 희생양’이고, 안씨가 ‘노무현을 위한 희생양’이라는 동변상련의 처지가 서로에 대해 애뜻한 감정을 품은 배경이 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박 의원은 구치소에 수감된 후 재계 인물들과도 적극 교류하면서 자신의 ‘마당발’ 인맥을 넓혔다. 2006년 비자금 문제로 구속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도 막역하게 지냈다. 박 의원은 정 회장을 무척 예의바르고 소박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정 회장은 함께 이동할 때 한 번도 앞서가는 법이 없이, 항상 손을 앞에 모으고 박 의원에 앞서 나가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박 의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 회장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하루는 평소 친하게 지낸던 교도관이 휴일날 큼직한 인절미를 싸들고 와 박 의원을 휴게실로 불렀다. 박 의원이 정 회장을 청해 인절미를 권하자, 거듭 고마움을 표시한 후 맛있게 먹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박 의원은 “일반인의 두 배 정도인 큰 손으로 인절미에 콩고물을 듬뿍 묻여 9개나 집어 먹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재벌총수라고 별거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박 의원에게 구치소에서 만난 재벌총수들의 특징을 묻자 “말도 못할 정도의 짠돌이들"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정재계 인사들은 대부분 영치금이 풍족하다. 하지만, 영치금을 쓰는 방식에는 정재계 인사간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게 박 의원의 증언이다. 박 의원을 비롯해 정치인들은 지지자나 가족 등이 넣어준 영치금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교도관에 위탁한다. 얼마 남았는지도 잘 모르고, 간식 매입 등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교도관에게 청하는 식으로 영치금을 관리한다. 반면 기업인들은 영치금을 자신이 직접 관리한다고 한다.

박 의원 등 정재계 수감자들은 군것질보다 계절과일 구입등에 영치금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고 한다. 하루 2만원씩으로 한도가 정해져 있어 자신들을 ‘60만원짜리 하숙생’으로 불렀다. 박 의원은 영양보충겸 건강관리 차원에서 토마토를 즐겨 먹었는데, 방울토마토가 이에 자꾸 끼는 바람에 일반 토마토로 바꿔 먹기 시작했다.

모 재벌총수와 사담을 나누다 “회장님도 보통 토마토로 바꿔드세요”라고 조언하자, 그 회장은 “전 처음부터 일반 토마토만 먹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방울토마도는 kg당 2400원인데, 일반 토마토는 1800원씩 이에요" 하더란다. 박 의원은 “내노라하는 재벌총수가 토마토를 원가 계산하면서 사먹는데 두손 두발 다 들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누구냐고 재차 물어도 실명은 함구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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