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Practice
세계 2위 완구업체 - 미국 '해즈브로'
폴란드 이민자 형제가 창업
필통 만들다 완구회사로 명성
한때 제품 평판 악화·내부 갈등
활발한 M&A통해 제2의 도약
영화는 물론 게임시장에도 진출
해즈브로 변신은 아직 진행형
7억弗 - 2007년 트랜스포머 흥행 수익
45% - 1995년 매출액 중 수출 비중
[ 이정선 기자 ]
할리우드 공상과학(SF) 영화 ‘트랜스포머4(사라진 시대)’가 개봉 2주 만에 한국에서만 400만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세 편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를 달구고 있는 이 블록버스터는 미국 ‘해즈브로(Hasbro)’의 완구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 회사는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마텔에 이어 세계 2위의 완구업체다. 트랜스포머뿐 아니라 최근 배우 이병헌이 캐스팅돼 화제가 됐던 액션영화 ‘지.아이.조(G.I.Joe)’의 캐릭터도 해즈브로가 개발했다. 해즈브로는 원래 옷감을 취급하던 영세업체였다. 창업 후 약 100년간 문구·장난감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가 이제는 엔터테인먼트·게임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변신한 해즈브로의 궤적을 좇다 보면, 이 회사가 곧 트랜스포머임을 알 수 있다.
○폴란드 이민자 출신 형제가 창업
해즈브로의 창업주는 형제다.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헨리 하센펠드와 힐렐 하센펠드 형제가 1923년 세운 ‘하센펠드 브러더스’가 모태다. 하센펠드 브러더스는 원래 옷감을 거래하던 회사였다. 몇 년 뒤 자투리 옷감을 활용해 필통을 씌우는 덮개를 납품하게 됐는데, 이 필통이 큰 인기를 끌면서 가족 8명이 모두 이 일에 뛰어들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1930년대 들어 직원은 200명으로 늘어났고 하센펠드 브러더스의 연간 판매금액도 50만달러로 급증했다. 어엿한 문구회사로 자리잡은 시기다.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인 만큼 견제가 없을리 없었다. 하센펠드 브러더스에 하청을 주던 필통 제작사는 따로 납품을 받는 한편 독자적인 저가 제품을 내놓으며 하센펠드 브러더스의 밥그릇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발끈한 하센펠드 형제는 자신들이 직접 필통을 만들어 내다파는 공세적인 전략을 폈다. 내친김에 연필 제작까지 뛰어들었다. 이때의 변신은 향후 45년간 하센펠드 브러더스에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져다주게 된다.
1930년대 말 하센펠드 형제는 병원놀이와 점토 장난감을 내놓으며 완구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50년 뒤에 나올 대박 캐릭터인 트랜스포머의 씨앗을 뿌린 시기다. 이후 립스틱 등 여아들의 장난감 화장품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성장한 후 완구 부문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메릴 하센펠드는 1952년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라는 완구를 출시했다. 하센펠드 브러더스가 완구회사로의 명성을 굳히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예쁘고 아름다운 외형 일색이던 기존 장난감과 달리 못생긴 감자를 의인화한 이 제품은 당시 “완구산업의 혁명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메릴 하센펠드의 형인 헤럴드 하센펠드는 완구 사업과 더불어 하센펠드 브러더스의 양대 축인 연필 제작 부문을 맡았지만, 회사의 무게 중심은 서서히 완구 사업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경영권 갈등, 판매 부진…암흑기
1964년 군인들의 모습을 역동적인 모형으로 재현해 내놓은 ‘지.아이.조’ 완구 세트는 미국의 아이콘으로 자리잡는 성공을 거둔다. 사내아이는 인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깬 것은 물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TV프로그램에까지 진출했다. 1968년부터는 사명을 ‘해즈브로’로 변경했다.
공교롭게도 사명 변경 이후 해즈브로는 10여년의 암흑기로 접어들게 된다. 뜻밖에도 효자 상품이던 ‘지.아이.조’가 발목을 잡았다. 베트남 전쟁으로 반전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면서 군인을 형상화한 인형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차가워진 탓이다.
내부 갈등까지 불거졌다. 메릴 하센펠드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인 스티븐 하센펠드가 법정 상속인이 됐지만, 완구 사업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연필 사업에 불만은 품은 삼촌 헤럴드 하센펠드가 조카의 권위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둘러싼 친족 간 갈등은 1980년대 양측이 기업 분할에 합의하면서 비로소 해소된다. 완구 분야의 경영권을 장악한 스티븐 하센펠드는 지난 10여년간의 경영침체를 정비하기 위해 생산 제품을 간추리는 한편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내실경영에 치중했다.
○공격적인 M&A 통해 제2의 도약
해즈브로가 침체기를 딛고 다시 세계적인 완구·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서였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라도 창의적인 아이템을 가진 회사라면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거나 사들였다. 1984년 출시한 트랜스포머도 일본 한 회사의 판권을 사들여 미국 시장에 맞게 변형한 캐릭터다. 한국에는 늦게 알려졌지만 트랜스포머는 이때부터 변신로봇의 독보적인 완구 캐릭터로 인기를 모으며 애니메이션 등으로 시장을 꾸준히 넓혀 나갔다.
1980년대 중반에는 해즈브로가 마텔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장난감 회사로 올라서기도 했다. 1989년에는 양배추 인형으로 잘 알려진 콜레코의 판권을 8500만달러에 인수했다. 수출 규모를 늘리기 위해 그리스와 헝가리, 멕시코 등에도 뛰어들었다. 1995년 기준 해즈브로는 매출액 중 45%를 수출을 통해 벌어들였다. 10년 전에 비해 수출 규모가 10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트랜스포머는 2007년 영화로 처음 제작되면서 히트를 쳤다. 덩달아 완구 매출도 급증해 해즈브로에 엄청난 수익을 안겼다. 그해 흥행수익만 7억달러에 달했을 정도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다른 장난감 분야 기업의 주가가 연 40% 가까이 떨어졌을 때 해즈브로는 되레 3% 상승했던 것도 트랜스포머의 덕이다.
트랜스포머의 성공은 특히 2000년부터 해즈브로에 합류한 현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골드너의 역할이 컸다. 트랜스포머의 영화제작자 로렌조 디 보나벤추라는 2008년 12월 마켓워치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통상 이런 영화 작업은 논의하는 과정만 몇 달이 걸리는데, 골드너와는 곧 의기투합했다. 두세 번 만난 뒤 일이 끝나버렸다. 골드너는 본능적인 직감과 역동적인 상상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트랜스포머 제작에 큰 기여를 했다.”
영화 트랜스포머는 91년 역사의 해즈브로를 단순한 장난감 회사에서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재탄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옷감 사업에서 문화콘텐츠 제작사로 거듭난 해즈브로의 변신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골드너는 마켓워치 등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는 물론 비디오 게임, 테마파크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해즈브로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남은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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