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태 정치부 기자,국회반장) 중앙일보 주필 출신인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가 과거 우편향적 칼럼과 발언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장로였던 그가 과거 교회에서 한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한 강연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중도낙마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13일 개각을 밀어붙인 데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초재선 의원들의 반대 성명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강행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문 내정자의 문제 발언이 담긴 1시간10분가량 영상물을 함께 시청한 후 “청문 기회를 주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문 후보자가 안대희 전 대법관에 이어 청문회에 서 보지도 못하는 헌정사상 최대 ‘인사참사’의 주인공 신세는 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의 청문회는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청문회 ‘보이콧’ 등 강경 입장을 고수 중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철저한 사전검증에 착수하고 있어서다. 문 후보자에게 ‘더 큰 불행’은 청문회 위원장에 ‘원샷 원킬의 저격수' 박지원 의원이 내정됐다는 사실이다.
유력인사의 신상 정보 수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 의원은 스스로를 '청문회 낙마 7관왕'이라 부른다. 이명박(MB)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감사원장, 헌법재판관 포함 7명의 국무위원 후보자를 줄줄이 사퇴시킨 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유력인사의 신상 정보력 수집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 의원은 스스로를 ‘청문회 낙마 5관왕'이라고 부른다. 이명박(MB) 정권 때 청문회를 진두지휘하면서 감사원장 포함 5명의 국무위원 후보자를 줄줄이 사퇴시킨 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13일 전화통화에서 “청문위원장 요청을 받아놓은 상태지만 청문요구서가 오지 않아 청문회가 취소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 후보자는) 총리감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감도 못 된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김대중(DJ)정부의 ‘권력2인자’였고, 민주당에서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를 두루 거쳐 ‘원로급’인 박 의원이 청문위원장직을 수락한 것은 문 후보자와 쌓인 개인적 ‘구원(舊怨)’이 배경이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 후보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인 2009년 8월4일자 칼럼 ‘마지막 남은 일’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자금 조성과 재산 해외 도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가 이루어 놓은 업적에 버금갈 수 있는 깨끗한 마무리가 있어야겠다. 그가 늘 외쳤던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나라’를 위해서 말이다”라고 마무리해 박 의원을 비롯해 김 전대통령 측근 전부와 갈등을 빚었다.
중앙일보는 나중에 반론보도를 실었지만 박 의원의 앙금은 풀리지 않았다. 박 의원은 “중앙일보는 반론을 실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일에 대해 아직까지 일언반구도 없다"고 비난했다.
문 후보자는 또 2009년 5월26일자 칼럼 ‘공인의 죽음’을 통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죽음은 자연인과 공인의 성격으로 나누어 판단해야 한다. 자연인으로서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공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라며 비판했다. 특히 “그의 장례 절차나 사후 문제에도 반영돼야 했다”고 한 발언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를 필요가 없다는 주장으로 해석돼 야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야당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평가하는 2명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이 같은 칼럼에 대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전직 대통령을 욕보이고, 다른 한 명은 부관참시했다"는 게 측근들의 격앙된 반응이다.
박 의원은 MB정부 때 국무위원 후보자를 줄줄이 낙마시키면서 그 진가를 톡톡히 드러냈었다.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첫 희생양이었다. 박 의원은 당시 천 후보자가 강남 신사동 아파트 매입 과정에서 15억5000만원을 건설업자 박 모씨에게 빌린 사실을 포착했다.이어 청문회에서 둘의 관계를 ‘스폰서 관계'로 집중 부각시켜 천 후보자를 궁지로 몰아세웠다.
뿐만 아니다. 박 의원은 천 후보자와 박씨의 동반 해외 골프여행과 천 후보자 부인과 박씨의 해외 명품 쇼핑 의혹을 들춰내 천 후보를 당혹케 했다.
박 의원은 이 같은 의혹을 사전 보도자료로 배포하지 않고, 청문회 현장에서 집중적으로 따졌다. 후보 측의 사전 대응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결국 천 후보자는 박 의원이 면세품점 등에서 뽑은 해외 골프 및 호화쇼핑자료 등 ‘디테일’하기 그지 없는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경질됐다.
2010년 원내대표였던 박 의원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김태호 의원에 대해 위장전입,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논문표절 등 온갖 의혹을 들춰냈다. 부인의 과거 관용차 이용일지까지 들이대는 ‘독한 공격’에 김 후보자도 결국 무릎을 꿇었다. 신재민 문화체육부장관 후보자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도 박 의원이 진두지휘한 청문회 벽을 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박 의원은 2011년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의 낙마 때도 맹활약했다. 그는 총리후보 지명 직후 “전관예우로 7개월 만에 7억원을 번 정 후보의 검증이 청와대에서 문제 없었다니…. 과거 청와대가 검찰총장, 국무총리, 지식경제부·문화관광부 장관이 문제 있었다고 발표했었느냐”고 비판했다. 정 후보에 대해 각종 의혹을 제기하던 박 의원은 “사퇴하지 않으면 매일 한 건씩 추가로 폭로하겠다”고 압박하자 결국 정 후보는 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김병하 대법관후보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도 박 의원이 주도하는 야당의 의혹 제기로 중도 낙마했다.청와대가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박 의원과 문 후보자간 ‘창과 방패’의 전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전쟁은 둘만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야당 vs 인사권자인 박근혜 대통령, 야당 vs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 7.30재·보궐선거의 기선을 잡기 위한 야당 vs 여당간 전쟁이란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다.
새정치연합측은 문 후보자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짐으로써 현 정부의 잇딴 인사참사를 부각시키고, 재보선의 승기를 거머쥐겠다는 계산이 다분히 깔려 있다. 이번 청문회의 진짜 타깃은 지난 1년여 동안 ‘공허'하게 퇴진을 요구해온 김 비서실장이란 얘기도 들린다.
만약 안 전 대법관에 이어 문 후보자까지 낙마한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질 사람은 딱 한 사람, 김 비서실장 뿐이기 때문이다.(끝)[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