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희 기자] 오징어 제조기라니. 잘생긴 외모를 가진 남자배우에게 조금 더 그럴싸한 별명을 붙일 수도 있었건만. 팬들은 그를 두고 ‘오징어 제조기’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별명을 붙여줬다. 그것은 주변 이들을 모두 오징어로 보이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 별명으로, 부족할 것 없는 그의 조각 같은 얼굴을 설명하는 하나의 유행어가 됐다.
인간적이지 않은 외모. 큰 키와 잘생긴 이목구비,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위화감.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와 주고받는 언어 사이에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온기가 담겨있었다.
최근 영화 ‘우는 남자’(감독 이정범) 개봉 전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장동건은 그 ‘잘생긴’ 외모로 하여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연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장동건이라는 이름으로 하여금 불러일으키는 많은 이미지들. 그것들을 하나씩 지울 때, 비로소 드러나는 감정들은 그가 가진 본질과 닮아있었다.
몇 년 간, 장동건은 예상치 못한 작품들에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다양한 장르며, 드라마나 영화를 불문하고 스스럼없이 선택에 나선 것이다. 영화 ‘마이웨이’부터 ‘우는 남자’까지. 배우로서의 그의 행보에 대해 “좋은 경험이었겠어요” 말을 건네자, 그는 해사하게 웃으며 “개인적으로는 좋았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죠”라고 대답해버린다.
“나름 여러 가지 것들을 했어요. 배우 활동을 20년 정도 해왔는데, 시기에 비해 작품 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지나고 나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자는 생각했어요. 그 이후부터 다양한 작품들, 장르들 시도하는 것 같아요.”
그와의 인터뷰는 이런 식이었다. 조심스레 물어도, 시원스럽게 대답해버린다. 그런 ‘예상치 못한’ 성격 탓에 인터뷰 내내 키들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네임드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 선택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자 이내 수긍해버린다.
“예전엔 작품 선택을 잘 못 했어요. 배우로서 끌리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 시절에는 다른 이유. 그러니까 외적인 요소로 출연을 고사한 게 많았죠. 그게 지나고 나니 후회가 되더라고요.”
22년 차 배우의 깨달음. 그것은 대중들이 ‘생각지 못한’ 행보를 이뤄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배우로서의 삶을 위한 선택. 그는 영화 ‘우는 남자’에 대해 ‘남자라면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장르’라고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느와르는 제가 제일 선호하는 장르에요. 그동안 이런 작품을 못했던 것은 킬러 소재의 영화라는 게 한국 영화에서 현실성 있게 그리기가 어려운 영화기 때문이었어요. 그런 이유에서 이정범 감독은, 걱정을 상쇄시키는 부분이 있었죠. 전작에 대한 믿음이랄까요.”
처음 ‘우는 남자’ 시나리오는 성긴 뼈대만 존재하는, 하나의 철근 덩어리에 불과했다. 초고 단계였던 시나리오는 전체적인 줄거리와 사건뿐인 거친 면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동건은 이정범 감독에 대한 신뢰로, 곤이라는 캐릭터를 선택하기로 했다.
“전작 ‘아저씨’도 그렇고 ‘우는 남자’ 역시.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고 상투적일 수 있지만 그걸 깊이 있게 만들어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저씨’를 보고 ‘우는 남자’ 역시 그렇게 만들어질 거란 기대감이 있었죠.”
같은 감독, 같은 장르, 그리고 ‘아저씨’의 성공. 하지만 장동건은 “크게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며 차근차근히 답변을 이어갔다.
“외국에서는 한 감독이 한 장르의 영화를 계속 만들잖아요. 기타노 다케시 감독도 그렇죠. 비슷한 정서의 영화를 만들지만 각 작품이 명작 반열에 올라요. 비슷하다고 폄하되는 법도 없죠. 장인 같은 감독이랄까. 이정범 감독 역시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가 될 것 같아요. 굳이 ‘아저씨’와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지 않았으면 해요.”
‘우는 남자’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던 킬러 곤(장동건)이 조직의 마지막 명령으로 표적 모경(김민희)을 만나, 임무와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특히 곤은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홀로 살아남으며 킬러로 성장한 인물. 때문에 장동건은 킬러답게, 몸에 밴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약 4개월간 액션스쿨을 다녔다.
“처음 두 달은 기술적인 것에 치우진 액션을 연습했어요. 전작이 ‘아저씨’니까 이번에도 그런 액션이겠지, 나도 이제 이런 걸 하는구나 싶었죠. 그런데 감독님이 현장에 와서 연습하는 걸 보더니 ‘동건. 내가 생각하는 액션은 이런 게 아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저씨’를 연출한 사람이 이런 얘길 하니까. (웃음) ‘뭐야’ 싶었죠.”
보통의 액션영화와는 다른 색깔. “선과 악이 불분명하므로,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우는 듯한 느낌이 필요했다”는 장동건의 설명은 줄곧 말했던 ‘감정이 담긴 액션’이기도 하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반성 회개가 담긴 객기 같은 느낌이 드는 액션이었어요. 액션에 감정이 들어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액션 훈련 방식을 바꿨어요. 몸과 몸이 더 부딪치고, 처절해 보이는 액션으로요. 배우로서는 그런 점이 아쉽기도 해요. 그래도 한두 장면 정도는 있었으면 좋았을걸. (웃음)”
‘아저씨’보다는 ‘열혈남아’에 가깝게 느와르를 그리고 싶었던 이정범 감독의 바람은 영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액션이 이어지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복잡한 감정과 심경들은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자기학대에 가까운 곤의 액션은, 모경을 보호하는 것보다 용서하는 것에 가까운 행동을 취한다.
“곤과 모경의 관계에 대해 많은 분들이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세요. 하지만 곤이 모경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아이를 죽인 죄책감이 아니에요.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증오, 그리고 죽여야 할 상대에게서 느끼는 모성들이 용서와 속죄로 나타나죠. 모경이라는 개인을 구해주기 위한 게 아니라, 엄마에 대한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어요.”
모경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대입하고, 그를 용서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속죄한다. 거친 액션을 선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성은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액션과 감성연기를 병행하는 것에 충돌은 없었느냐”고 묻자, 장동건은 “곤은 그래서 어려운 인물이죠”라고 답했다.
“곤이 자기감정이나 상황을 대사로서 누군가에게 말하는 장면은 없어요. 그저 모경에게 상황을 전달해주거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정도죠. 그것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곤은 표현에 있어서 좁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도 넓은 인물이에요. 그런 지점이 정말 어려웠죠.”
곤은 “눈을 촉촉하게 만들고,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던 캐릭터”였지만, 내면 연기를 더함으로써 더욱 복잡해지고 손이 많이 가는 인물로 변모했다. 장동건은 이정범 감독에게 “왜 이렇게 어렵냐”고 투정하면서도, 한 장면에서 여러 테이크의 버전을 찍을 만큼 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예민하고, 기민한 인물인 곤과 장동건은 얼마나 닮아있을까? 장동건에게 ‘킬러와 배우의 공통점은 뭘까요?’하고 물었더니 ‘음’하고 고민하는 얼굴이 그려졌다.
“킬러라는 게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직업인 것 같아요. 실수는 영원히 남게 되죠.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연습했어도 카메라 안에 담기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게다가 평생 남기도 하고. 그런 점이 닮아있는 것 같아요.”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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