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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짱 토론] 가파른 환율하락, 시장개입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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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미 기자 ] 올 들어 한국 경제의 최대 변수 중 하나는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내려(원화값 상승) 30일 장중 달러당 1020원 선마저 무너졌다. 26개월째 이어진 경상수지 흑자, 글로벌 달러 약세로 환율하락 압박은 여전히 높다. 환율이 급락할 때 외환당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한다.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서 원화강세 속도를 늦추거나 구두개입을 통해 투기세력에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식이다. 지난달 달러당 1050원 선이 깨진 뒤 외환당국의 개입은 다소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한국이 경상수지 흑자를 위해 환율을 의도적으로 끌어올린다며 비판했다. 정부의 환율방어를 찬성하는 측은 저환율의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통화전쟁에도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외환시장 개입의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환율하락의 긍정적 효과도 놓칠 수 없다고 맞선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이 찬성론을, 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거시분석실 수석연구원이 반대론을 펼쳤다.

찬성 원화가치 ‘나홀로 상승’ 위험…글로벌 통화전쟁 대응해야

투기세력 공격땐 외환위기 부를 수도

환율하락을 용인해야 한다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원화강세는 침체에 빠진 내수를 부양시킬 수 있다는 점, 수출기업도 이제는 환율에 의존하기보다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지나친 환율하락이 초래할 막대한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막기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

한국은 자본시장이 자유화됐고 외환시장 규모도 작다. 투기세력의 공격으로 과도하게 자본이 들어올 경우 환율은 적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게 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원화가 8%까지 저평가됐다고 발표했다. 환율하락을 예상한 투기세력의 공격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유입도 증가하고 있다. 환율이 과도하게 하락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외환당국은 적정환율을 방어해 시장의 위험을 줄여야 한다.

환율 하락속도를 줄이고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서도 시장개입은 중요하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환위험이 높아져 무역과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 환율 하락 추세가 지속되면 환투기도 늘어난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하락속도가 가파르고 변동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이나 일본과 중국의 환율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환율은 관리돼야 한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로 자국의 경기가 침체되지 않도록 경쟁적으로 환율을 높이고 있다. 이른바 환율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일본은 이미 아베노믹스로 엔화가치를 큰 폭으로 떨어뜨렸다. 중국도 환율의 변동허용폭을 넓히면서 환율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만 환율이 내릴 경우 경상수지가 급격히 악화돼 외환위기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이 금리를 높인 1997년 외환위기 전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국가신용도가 하락하면서 한국은 외환부족의 어려움을 겪었다. 외환당국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원·엔 환율이 100엔당 1000원 이하로 떨어질까봐 우려하는 이유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환율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환율은 수출을 늘려 일자리를 늘리고 경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중소기업 투자도 모두 수출과 연관이 있다. 게다가 지금은 투자가 부진할 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등으로 소비가 위축된 상황이다. 내수가 침체된 가운데 환율까지 떨어지면 위험하다. 수출까지 줄어들어 한국 경제는 침체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최근까지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면서 환율의 영향이 눈에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환율은 경상수지에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친다. 환율이 달러당 900원대까지 하락할 경우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 경상수지는 큰 폭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환율의 지나친 하락을 경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물론 환율을 적정환율보다 과도하게 높이는 고환율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자본유입과 투기세력에 맞서 적정환율을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다. 과도한 환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 미국의 출구전략과 동아시아 환율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종합적인 환율정책을 펴야 한다. 경기를 회복시키고 위기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외환당국의 효율적인 환율관리가 필요한 시기다.


김정식 < 한국경제학회장 >

반대 수출 ‘원高 타격’ 크지 않아…막대한 환율방어 비용 부담

민간소비·투자 증가 등 원貨강세 긍정 효과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기축통화국인 미국도 달러가치가 정상 수준을 벗어날 때 시장에 달러 발행물량을 조절함으로써 사실상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문제는 그 개입이 무리한 수준이어서 경제에 해가 될 때다. 환율하락(원화 강세) 효과를 일방적으로 해석하면 시장에 공포가 생겨나고 외환당국의 과도한 개입을 유도하게 된다.

우선 원화강세에 따른 수출 감소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해외생산 비중 확대, 국내 제품의 품질 경쟁력 강화, 차별적인 경쟁 제품군 형성, 주요국의 경기 회복세 등으로 인해 원화강세의 부정적 효과는 많이 상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해외생산 비중은 55%로 전체 생산의 절반을 넘어섰고, 삼성전자는 휴대폰과 태블릿PC의 93%를 해외에서 생산한다.

엔화 약세에도 국내제품 수출이 큰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은 한·일 간 경쟁제품군이 차별적으로 형성되면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엔화 대비 원화가치가 10% 오를 때 한국의 수출 감소율이 1998~2005년 1.5%에서 금융위기 이후 0.7%로 낮아졌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은 결제통화를 다양화하고 환위험 헤지(위험회피)도 강화했다. 삼성전자는 달러화 외에도 엔화, 유로화, 루블화, 위안화 등 결제통화를 다변화했고, LG전자도 미국, 네덜란드, 중국, 싱가포르 등에 해외 금융센터를 세웠다.

원재료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 철강, 비철금속 업종은 원화 강세로 구매비용이 줄어든다. 4~5년 이상 장기 납품계약으로 수출이 이뤄지는 자동차부품, 환헤지를 지속적으로 해온 조선 분야도 단기적으로는 영향이 미미하거나 제한적이다. 또한 내수기업 중에서도 외화부채가 많은 항공, 상사, 유통업종은 순이익이 늘어난다.

원·달러 환율의 적정수준이라는 개념은 모호하다. 사실상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고환율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기업들의 수익으로 고용이 늘거나 가계소득이 늘어나는 ‘낙수효과’도 예전 같지 않다. 고환율정책의 수혜를 입은 기업들은 높은 수익을 올렸지만 기업과 가계 간 소득불균형은 심화되고 내수부진도 장기화했다.

반면 원화강세는 내수에 긍정적이다. 수입물가 하락을 통해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높이고 투자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원·달러 환율이 1% 하락했을 때 민간소비와 투자는 각각 0.21%, 0.4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투기세력 등에 의해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과도해지면 실물경제에도 부정적일 수 있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외환시장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은 필요하다. 외환시장 개입에 따른 비용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 부담해야 할 보험료에 가깝다. 하지만 과도한 개입으로 비용이 커지면 결국 세수로 충당해야 한다.

원화강세가 한국 경제에 해가 된다면 최근 10년간 위기에 처해 있었던 셈이 된다. 이 기간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면서 외환시장에선 달러가 늘 공급 우위로 원화강세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등락을 거듭했다. 이 기간 기업의 실적을 좌우한 것은 환율이 아니라 제품경쟁력과 마케팅 능력, 글로벌 경기 회복 여부였다.


허문종 <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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