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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기소 자체가 공직자에겐 흠" vs "억울한 기소…옥살이 누가 책임지나"
이철규·김장호·김중회 등 고위공직자, 대법서 무죄판결 불구 복직 못해
[ 장창민 기자 ]
“30년 일했던 공직을 이렇게 떠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젠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사표를 제출한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은 29일 이렇게 말했다. 그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가 작년 말 무죄 판결을 받고 금융위원회로 돌아왔다. 이후 6개월 동안 아무런 보직을 받지 못해 결국 공직을 떠나기로 했다.
○“앞으로 억울한 공직자 없었으면…”
김 전 원장은 아직도 2011년 6월1일을 잊지 못한다. 그의 집무실로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을 위해 들이닥친 날이다. 며칠 후 그는 구속됐다.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이던 2008년 9월 청탁을 받고 김양 부산저축은행 부회장 등에게서 20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선·후배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던 그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김 전 원장은 1심에서 징역 1년6월 등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심과 3심에서는 “관련자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고 서로 모순된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그는 지난해 10월31일 대법원 판결 직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저같이 억울한 공직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구속된 지 29개월 만인 작년 11월 금융위로 돌아와 본부에서 대기했다. 금융위는 올초 업무 능력이 뛰어난 그를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1급)으로 밀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인사검증권을 쥔 청와대 인사·민정 라인의 반대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법적으로는 무죄지만, 공직을 계속 수행하기엔 도덕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측이 검찰의 기소가 이뤄진 것 자체를 흠결로 보고 반대한 것으로 안다”며 “특히 1심에서 유죄를 받았던 점을 끝까지 문제 삼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관기관이나 산하단체로 나갈 처지도 아니었다. 갈 곳이 없었다. 김 전 원장이 고심 끝에 사표를 낸 이유다.
○공직자 대부분 무죄 받아도 ‘사표’
김 전 원장뿐만이 아니다.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도 억울한 옥살이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보직을 받지 못해 지난해 말 공직을 떠났다. 그는 2011년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4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뒤 직위해제됐다가 작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후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치안정감 승진·보직 인사에서 제외됐다. 결국 같은 해 12월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관료는 아니지만 김장호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도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1년 기소되면서 조직을 떠났다. 작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으나 금감원에 돌아오지 못했다. 김중회 전 금감원 부원장 역시 청탁성 금품을 받은 혐의로 2007년 1월 기소돼 같은 해 8월 사의를 밝혔다. 다음해인 2008년 5월에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현 보고펀드 대표)은 억울한 옥살이를 한 대표적인 공직자다. 경제관료로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과거 재경부 국장 시절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됐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이처럼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기소된 뒤 무죄 판결을 받고도 조직을 떠나게 된 공직자들이 늘면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사권자의 의사결정도 존중돼야 하지만 ‘무죄는 무죄’라는 상식도 함께 지켜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공직자로서 수십 년간 쌓아온 긍지와 자부심을 한순간에 잃고 고초를 겪은 것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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