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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간중독’ 임지연, 여배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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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홍콩 여배우 같아. 분위기가.”

사진 촬영을 마친 사진기자가 빙글 웃었다. 장비를 정리하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배우에게는 최고의 찬사네요”라고 거들었다.

뭐라 할까.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묘한 기분이 든다. 보기만 해도 홀릴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최근 영화 ‘인간중독’(감독 김대우) 개봉 이후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만난 임지연은 앞서 말한 여러 가지 드라마가 한데 모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갖은 상처를 받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불현듯 마주친 시선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종일 그 얼굴에 대해 정의하려고 애쓰다가 저녁이 다 돼서야 무릎을 탁 쳤다.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 바로 그것이라고.


“언론 시사회는 영화를 처음 보는 거라서. 제 연기를 보느라 집중이 잘 안 됐어요. 그냥 아쉬운 부분들만 보이더라고요. 제 연기 같은 것들이요. 그다음엔 VIP 시사회 때 영화를 봤는데…. 그날은 또 기분이 달랐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게 보이고, 재미도 느껴지고요. (웃음) 요즘은 하루하루가 떨려요.”

대게 ‘사연 있는 얼굴’을 가진 배우들이 그렇듯, 임지연 역시 짐작과는 다른 얼굴들을 드러내곤 했다. 시사회를 무사히 마쳤다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얼굴이나, 상대에게 영화에 대한 반응을 묻는 호기심 어린 표정 같은 것들. 그런 순간들 속에서 드러나는 임지연의 얼굴은, 그의 이면에 숨어있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인간중독’ 종가흔에게 애정이 많았어요.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붓다가, 끝나버리니까 공허하고 허무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갑자기 외로워지기도 하고요. 감독님이나 조여정 선배님께 이 기분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어요. 두 분 다 ‘당연한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적당히’할 수 없는 신인 배우의 열정. 처음이라서 그랬던 걸까. 절실한 마음으로 종가흔에게 애정을 기울였고, 긴 연애의 마친 것처럼 촬영 후 찾아온 공허함에 마음을 다독을 수가 없었다. 베테랑 감독과 배우에게도 당연하게 찾아오는 공허한 순간이지만, 신인 여배우에게는 견디기 힘든 이별이었다.

“감독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배우도 그런데 감독은 어떻겠니?’라고요. 예전의 저로 돌아가서 가흔이를 보내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여행도 가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천천히 가흔이를 보내줬었는데…. 영화가 개봉하니 또 가흔이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다시 또 그 기분에 젖어드는 것 같아요.”

영화 ‘인간중독’은 베트남전이 막바지로 치달아가던 1969년. 엄격한 군 관사 안에서 부하의 아내 종가흔(임지연)에 첫 사랑을 느낀 교육대장 김진평의 치명적이고 은밀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 중 종가흔은 신비로우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궁금증을 모았다. 이를 두고 “하도 사연 있어 보이는 이미지라, 종가흔이 뒤통수를 때리진 않을까 했었다”고 말하자 임지연은 “그런 분들이 꽤 계셨어요”라며 해사하게 웃었다.

“가흔이의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그 부분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했었어요. 모든 남녀의 로망인 김진평이 자신의 모든 걸 버리면서까지 사랑하는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생각했죠. 분명 매력적인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분명 매력적이다. 어딜 가나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이 당황할 정도로 침착한 모습에서 불러일으키는 이질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 김진평을 당혹스럽게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가도 겁이 난다며 한발 물러서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취하지만 그마저도 ‘매력’으로 승화할 정도다.

“감정의 굴곡이 많은 역할이잖아요. 진평에게 ‘내 우주에요’라고까지 했다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발을 빼고 ‘사랑하냐’고 계속 묻기도 하고. 제 생각에 가흔이는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여우짓 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저는 분명 가흔이가 진평에게 끌렸다고 생각해요.”

그는 가흔과 진평의 첫 만남을 설명하면서 “제가 아끼는 새들 앞에서 담배 내뿜는 남자에게 ‘그러지 마세요’하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니라 ‘관사에 사느냐’고 한 번 더 질문하지 않느냐”며 서로에게 있었을 미묘한 감정에 대해 덧붙였다.

“사랑에 대한 감정이 낯선 여자에요. 그렇게 사랑의 감정도 모르는 여자가 처음 맛보는 순간들이 어떨까에 대해 생각했어요.”

만약 자신이었다면 현실이 아닌 사랑을 택했을 거라는 그. 캐릭터의 선택과 자신의 마음이 다를 때, 그 과정을 합의해가는 과정이 궁금했다.

“제가 학교 다니면서 어려운 캐릭터 만나면 쓰던 방법이 있어요. 먼저 제가 종가흔이라는 생각을 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죠. 처음 진평이를 만난 순간부터 시나리오에 있는 모든 순간을 일기로 썼어요. 새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 진평을 처음 만났을 때 든 기분이라든지. 스스로 상상하는 게 많아서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은데 가흔이에게 공감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 그에 대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함께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연기자가 아닌 완전한 종가흔이 되었다.

“저는 첫 작품이다 보니까 감독님의 디렉션을 잘 들으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추상적이든 직설적이든 모두를 다 흡수하려고요. 감독님께서 ‘김진평을 볼 때, 눈동자 겉을 보지 말고 저 안 깊숙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저 안까지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봤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가흔이의 묘한 분위기, 표정, 눈빛 등을 끌어냈던 것 아닐까요?”

상대의 눈동자 그 너머. 신인 여배우에게는 김대우 감독님의 디렉션이 꽤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감독님의 디렉션은 추상적인 편이에요, 자세한 편이에요?” 임지연에게 묻자 그는 “둘 다요”라며 빙글 웃었다.

“자세하고 섬세하기도 하고, 추상적이기도 해요. 감독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느낌적 느낌’이에요. 처음엔 그게 어떤 느낌이지 싶었는데 나중에는 ‘지연아 느낌적인 느낌으로 해’라고 하시면 ‘오케이. 느낌적 느낌’이라고 대답하곤 했죠.”


강렬하고 파격적인 첫 등장. 사람들은 임지연의 등장에 영화 ‘은교’ 속 김고은을 떠올리기도 했다.

“저는 아직 첫 작품이다 보니까 비교하시는 게 싫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고은이와는 학교 선후배 사이에요. 제 후배지만 먼저 데뷔한 선배님이시죠. ‘은교’가 개봉했을 대 고은이에게 정말 멋있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비교해주시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

이런 첫 등장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은교’ 김고은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중독’ 임지연의 파격적인 등장에 세간의 관심이 몰렸다. 하지만 이따금은 작품의 본질보다도 베드신에 더한 관심 모이는 것이 섭섭하기도 할 것 같았다.

“섭섭하진 않아요. 다만 이 관계에 대해 자세히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부적절한 관계의 사랑이고, 불륜이지만…. 첫사랑의 느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불륜의 실패가 아니라, 첫사랑의 실패라고요.”

불륜의 실패가 아니라 첫사랑의 실패. 임지연의 입에서 발음된 문장이 강한 여운을 남겼다. “좋은 말이네요”라고 칭찬하자 멋쩍은 듯 웃는 얼굴은, 작품에 대해 열심히 답하던 얼굴과는 달리 또래 여자아이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막 임지연으로 돌아온 그에게 세 번의 베드신에 대해 묻자, 그는 다시금 여배우 같은 얼굴로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설명을 시작했다.

“지프차 안에서 촬영한 베드신이 기억나요. 가장 처음으로 찍었던 베드신이었는데 묘하더라고요. 공간이 협소하고 삐그덕 거리는 소리도 많이 났어요. 비도 내리니까 몸도 축축하고 차안도 축축해서 야릇한 기분도 들고요. 그냥 소리부터 공간까지 그 자체가 주는 분위기가 기억에 남아요.”

앞서 김대우 감독님과의 인터뷰에서, 배우 임지연에 대한 수도 없는 칭찬을 들어왔다. 첫 베드신임에도 불구 그가 보여준 담대함과 여유에 대해 듣고 있으면 신인 배우가 아닌 중견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드신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걱정했는데, 막상 촬영해보니 괜한 걱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태프분들도 감독님도 제가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감정신 찍듯, 춤추듯 하라고 상황을 만들어주셨어요.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었어요. 여러 가지 예쁘고 야릇한 위태로운 것들을 나타내고 싶었는데 생각했던 대로 잘 안 되더라고요.”

첫 데뷔 치고 격한 감정신에, 강도 높은 베드신까지. 앞으로는 ‘어려운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다음 작품은 뭔들 못해’ 이런 마음이 들 것 같아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쉽지 않은 역할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웃는 낯으로 답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까요. 이제 막 시작했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죠. 저에 대한 많은 이야길 들어요. 혹평도 호평도 모두 다요. 그 관심마저 감사해요. 겸손하게 초심을 잃지 않고 연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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