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내용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규제개혁은 계속돼야
'또 다른 규제의 손' 지자체…규제지수 만들어 비교할 것
[ 김주완/마지혜 기자 ]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22일 한경밀레니엄포럼에서 “대부분의 공무원은 규제를 만들면서 자기가 하는 일이 다 맞다고 생각하는 ‘확신범’이지만 밖에서 보면 사회적으로 해야 할 일은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규제가 과도하게 만들어진 것은 규제 친화적인 공무원의 행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김 실장은 “그런 규제는 가처분 소득을 줄이는 각종 비용처럼 국민과 기업에는 강제적 비용”이라며 “정부에서 그동안 규제 개선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트레드밀(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처럼 진척이 없는 한계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는 규제 토양을 바꿔 갑(관료)과 을(국민·기업)이 자리를 바꾸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규제 개혁에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질의응답.
▷김일섭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정부는 원래 규제를 생산하고 실행하는 조직이어서 규제 개혁을 주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동감한다. 잘못된 공무원 행태가 규제 문제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그래서 규제 개혁에 적극적인 공무원은 실수하더라도 면책해 주기로 했다. 물론 이 정도로 문제의 본질이 크게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언급했지만 관피아(관료+마피아), 공무원 임용, 보직 문제 등은 경쟁체제 도입으로 해결돼야 한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규제에 대해 정부가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분명히 구분하는 게 규제 개혁의 출발점이다. 특히 정부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김 실장=사실 규제는 법률에 근거하도록 돼 있다. 규제법정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행정지도 등 보이지 않는 규제가 문제다. 또 법령이 아닌 행정규칙으로 작동하는 규제도 있다. 이런 규제들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김 총장=중앙정부의 위임을 받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규제의 질이 나빠지는 경우도 많다.
▷김 실장=‘또 다른 규제의 손’으로 지자체 규제를 꼽고 있다. 정부가 더 풀어야 할 과제다. 현재 지자체 관련 규제지수를 대한상공회의소 등에서 개발하고 있다. 투자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지자체의 규제가 어느 정도인지 비교할 수 있는 수치가 나올 것이다. 관련 분석이 나오면 여론의 압박이 가해져 지자체 규제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따지기 이전에 규제를 받는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김 실장=예전에는 규제를 받는 이들이 읍소형으로 규제를 풀어달라고 했다. 이것을 바꾸려고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들이 규제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규제 신문고를 운영하고 있다. 과도한 규제라고 접수되면 14일 이내 해당 부처에서 답변을 해야 한다. 답변 내용이 부실하면 규제를 풀 수 없는 이유를 3개월 안에 소명해야 한다. 소명 내용이 적절치 않으면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검토해 개선 권고를 할 수 있다.
▷장종현 비앤엠씨코리아 대표=지금은 정부 정책이 실패하는 경향이 큰 시대다.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 개혁도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김 실장=동의한다. 정부의 실패보다는 정책의 실패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신뢰를 비롯한 사회적 자본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들을 게임에 비유해보자. 단발게임이면 당장은 속여서라도 이기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다. 반면 연속게임의 경우 속이는 것보다 신뢰를 통한 협력이 더 좋은 전략이다. 즉 단발게임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연속게임으로 만드는 사회적 자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이 지키지도 못할 공약(空約)을 내놓으면서 ‘빌 공(空)’자 게임을 하는 건 연속게임을 생각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정책 실명제를 도입한 것도 정책을 연속게임으로 만들자는 취지에서다.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장=규제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규제를 잘 감독하는 것도 필요하다. 감독을 잘 할 때 규제를 줄이는 효과가 커진다.
▷김 실장=그렇다. 이번 세월호 참사도 감독 문제가 컸다. 규제를 받아야 하는 기업들이 규제를 지키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약속을 지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합의)가 필요하다. 이것도 사회적 자본과 관련이 있는 문제다.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시장에서 완전경쟁에 노출돼 있는 기업을 공기업으로 지정하는 것도 규제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기업은행이다.
▷김 실장=기획재정부 차관 재직 시절 기관에 자율권을 주고 책임을 묻는 시스템으로 공공기관 정책을 바꿨다. 당시 기업은행은 공공기관에서 제외됐는데 다시 지정된 경우다. 이 자리에서 공공기관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다만 기관장에게 계속 자율과 책임을 함께 주는 방향은 맞다고 생각한다.
▷문정숙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현재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과 규제조정실장 자리가 비어 있는데 어떻게 규제 정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김 실장=규제개혁위원회는 현재 전면 개편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새로 만들어진 규제를 심사하는 게 주 업무였다. 앞으로는 규제 개혁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규제 비용을 계산하는 규제비용센터를 산하에 둘 것이다. 위원회의 독립성도 강화할 것이다. 규제조정실장 자리에 민간인도 처음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제 아이디어였다. 가급적 규제를 당해본 민간에서 맡았으면 해서 1차 인선 과정에서 관료를 제외했다. 현재 인선 작업 중이다. 되도록 빨리 충원하겠다.
정리=김주완/마지혜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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