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분 내내 비장한 표정
세월호 희생자 일일이 호명
유민봉 수석 담화문 초안 작성
朴, 유가족 등 만나며 다듬어
[ 도병욱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사고 34일째인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고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담화 말미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정각에 회색 정장 차림으로 청와대 춘추관 2층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단상에 서서 묵례한 뒤 곧바로 7100자가 넘는 분량의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를 시작하자마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한 뒤, 연단 옆으로 나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 국무회의 모두발언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국민을 향해 직접 사과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또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장에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배석하지 않은 것도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하는 자리라는 점을 감안해서다. 이날 대국민담화에는 경호실장과 홍보수석, 대변인, 제2부속비서관, 의전비서관, 춘추관장 등 소수의 관계자만 배석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 말미에 승객들을 구조하다 숨진 승무원 등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박 대통령은 “어린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탈출시키고 실종된 권혁규 군,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든 정차웅 군, 침몰 사실을 119에 신고하고도 돌아오지 못한 최덕하 군, 제자들을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남윤철·최혜정 선생님,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생을 마감한 박지영·김기웅·정현선 님과 양대홍 사무장님, 민간 잠수사 이광욱 님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봅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다시 한번 이번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말로 대국민담화를 마무리했다. 담화는 24분가량 진행됐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없었다.
담화문은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초안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인 대국민담화문이나 기자회견문 등은 국정기획수석실의 홍남기 기획비서관이 각 수석실의 의견을 취합해 초안을 만드는데, 이번 담화문은 이런 과정 없이 처음부터 유 수석이 직접 챙겼다고 한다. 초안이 완성된 이후 박 대통령은 일요일인 지난 11일 긴급 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하고, 13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의견을 수렴했다. 박 대통령은 또 16일 유가족 대표들을 만나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지 의견을 구했다.
담화문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안전’(35회)이었다. ‘국민’(26회)과 ‘개혁’(9회) 등도 여러 번 거론됐다. 대신 ‘행복’ 등의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한편 박 대통령은 해양경찰청 해체 발표로 실종자 수색 구조에 난항을 겪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과 관련,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민·관·군 수색 및 구난체계에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해경 해체 발표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명까지 실종자 수색과 구조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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