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30) 1930년대 대공황 5 : 전쟁의 경제학
소비·투자·정부지출·수출
모두 합산해서 추산하는 GDP
전쟁수행 위해 정부지출 늘며
GDP 증가한 것처럼 보여
소비재·서비스 생산 줄고
민간소득 줄어 구매력 떨어져
소비자 후생은 악화
전쟁 후 親시장정책으로 회귀
관세·세금 낮추며 경제회복
1930년대 대공황과 관련된 두 개의 신화가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대공황을 치유했다는 것이 첫 번째 신화고,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냈다는 것이 두 번째 신화다. 이전 필자들의 대공황에 대한 글에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 대공황을 치유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 신화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신화는 통계에 대한 오판 때문에 생겨났다. 통계만 보면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낸 것처럼 보인다.
대공황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였다. 1929년 3.2%였던 실업률이 1933년 25%까지 커졌고, 1940년까지 계속 두 자리 숫자를 기록했다. 5명 중 1명 이상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상태가 10년 이상 지속됐다. 그러다가 전쟁 발발 후 실업률이 1944년 1.2%로 하락했고, 1940~1943년 국내총생산(GDP)이 84% 증가했다.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2차 세계대전 덕분에 대공황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통계가 인간의 삶과 경제의 진면목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오류다. 전쟁 기간에 실업률이 급락한 것은 징집의 결과였다. 미국 정부는 전쟁 기간 동안 1940년 총노동력의 20%에 해당하는 1200만명을 징집해 군대에 보냈다. 통계상 실업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또 GDP가 급증한 것은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품과 군 인력에 대한 정부지출 증가 때문이었다. 정부지출 때문에 GDP는 증가했지만 GDP의 민간항목인 소비와 투자는 하락했다. 1943년 실질 민간 GDP는 1941년보다 14%나 낮았다. 징집으로 인해 실업률이 하락하고 전쟁을 위한 정부지출 증가로 나타난 GDP 증가는 진정한 호황과 번영이라 할 수 없다.
전쟁기간이 호황이었다는 착각은 GDP를 산정하는 방법으로부터 나온다. 잘 알다시피 GDP는 특정기간에 생산된 최종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으로서 소비지출, 투자지출, 정부지출, 순수출의 합으로 계산된다. 이것을 가지고 실질적인 부의 증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오류를 낳는다. 문제는 정부지출에 있다. 전쟁 기간의 GDP 데이터가 경제 상황을 잘못 평가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기관총, 탱크, 전투기, 전함 등을 생산하는 데 사용된 자원은 소비재와 서비스 생산에 사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쓸 자동차, 집, 가정용 기기, 초콜릿, 설탕, 고기, 휘발유, 식품, 의복, 생활용품 등 소비재가 턱없이 부족하게 된다. 소비재 가격이 폭등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사람들의 생활은 궁핍해진다. 게다가 군대에 있는 일자리뿐 아니라 무기와 군수품을 생산하기 위해 만든 일자리는 민간으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면 민간소득이 줄어 사람들이 필요한 재화를 사는 구매력이 떨어진다. 다시 말하면 소득이 줄고 향유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도 준다. 요컨대 전쟁 기간에 소비자의 후생이 악화된다. 따라서 전반적인 생활 수준의 후퇴를 가져왔던 대공황이 2차 세계대전 동안 끝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대공황을 끝낸 것은 2차 세계대전 후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의 회귀였다. 스무트 홀리 관세법에 의해 높여졌던 관세를 낮추는 조치로 인해 동맹국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경제가 살아났다. 더 중요한 것은 루스벨트 정부에 이은 트루먼 정부가 취한 민간투자를 유인하는 조치들이었다. 그 조치들이 투자자를 되돌아오게 했고, 전후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 전후 트루먼 대통령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전쟁 중에 잠시 중단시킨 뉴딜정책을 재개하려고 했다. 그러나 뉴딜정책이 미국 경제의 회복을 지연시키고 악화시켰다는 인식을 갖게 된 미 의회가 여기에 반대했다.
오히려 뉴딜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높였던 세금을 낮췄다. 94%에 달했던 최고 한계소득세율을 1946년 86%로 인하했다가 다시 1948년 82%로 낮췄다. 기업의 모든 이윤에 부과했던 초과이윤세(excess profit tax)를 없앴고 40%였던 법인세율을 38%로 낮췄다.
큰 폭은 아니었지만 이런 감세조치는 기업가들에게 열심히 번 돈을 정부에 적게 내고 더 많은 것을 차지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줬다. 기업 활동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늘어나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1946년 실업률이 단지 3.9%에 불과했고 이런 상태가 그 후 10년 동안 이어졌다. 대공황을 끝낸 것은 규제완화, 감세, 정부지출 축소로 인한 민간경제 활성화였다. 2차 세계대전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냈다는 견해는 매우 위험하다. 이런 견해에 사로잡혀 있는 지식인들은 서슴지 않고 ‘전쟁과 지진, 그리고 정부지출이 경제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계속 전쟁을 하고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면 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전쟁은 자본을 축적하는 기간이 아니라 소모하는 기간이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도 우리의 축적된 부를 파괴한다. 그것을 되돌리기 위한 정부지출은 다른 생산적인 활동에 쓰일 자원을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전쟁과 지진은 우리의 부를 파괴할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견해가 만연해 있다. 죽음과 파괴는 결코 번영을 낳지 않는다. 이것이 상식이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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