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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금 안받으면 美·日 기업에도 안 팔아…이게 다 우리 기술력 덕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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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단지 혁신의 현장 - 동우에스티

27년전 부부창업 도전
1㎜ 단위까지 자를 수 있는 정밀한 필름커팅기 자체 개발

안산에 공장 짓고 특허 등록…전세계 30개국에 1000여대 수출

해외바이어엔 '슈퍼갑' 이지만 150여개 협력사엔 상생 동반자



[ 김낙훈 기자 ]
시화산업단지 내 시화MTV(멀티테크노밸리). 시화호를 매립한 이곳에 동우에스티가 있다. 이 회사는 종업원 80명의 전형적인 중소기업이지만 이 회사 기계를 사가려면 100% 선금을 줘야 한다. 어떤 업체이길래 이런 ‘배짱 장사’를 하는 것일까.

작년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의 미국 기업인이 시화산업단지 내 동우에스티를 찾아왔다. 전 세계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는데 자기들이 요구하는 성능을 갖춘 기계는 동우에스티밖에 없다며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직원 등 4명과 함께 온 그는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를 샅샅이 살펴본 뒤 즉석에서 2대를 샀다. 그러고는 당장 이들 기계를 트럭에 실어 달라고 요구했다. 비행기로 싣고 가겠다는 것이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m에 이르는 커다란 기계를 비행기로 싣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운반비가 무척 비싸기 때문이다. 기계 2대 값이 1억2000만원인데 항공운임은 약 8000만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최단 시간 내 미국으로 싣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이를 관철했다. 한시바삐 스마트폰 생산라인에 이 설비를 투입하려는 것이었다.

수년 전 도쿄에선 일본 기업인과의 상담이 있었다. 그는 동우에스티에 일본 내수시장 독점권을 요구했다. 협상은 결렬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 기업은 동우에스티 제품을 수입할 때 대금 절반을 결제하고, 판매 뒤 나머지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동우에스티 경영진은 “100% 선금을 주지 않으면 공급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동우에스티 설비는 어떤 것이길래 미국과 일본의 바이어들이 앞다퉈 사가는 것일까.

이 회사의 주력 기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필름 롤커팅기(roll cutting machine)’다. 테이프 커팅기라고도 불린다. 필름이나 테이프는 종류가 많다. 이 회사가 제작하는 기계는 초정밀 필름이다. 예컨대 TV, 휴대폰에는 수많은 종류의 필름이 들어간다. 필름을 여러 층으로 쌓은 뒤 여기에 각종 부품을 배치한다. 필름은 가볍고 유연하다. 얇고 가벼운 휴대폰을 만들기 위해선 이들 필름이 필수적이다. 김형선 사장(50·여)은 “외국 기업은 이들 필름을 기껏해야 1.5~2㎜ 단위로 자를 수 있지만 우리 설비는 1㎜ 단위로 재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밀도가 훨씬 높은 것이다. 회로도 정교하게 구성할 수 있다.

둘째, ‘필름합지기(laminating machine)’다. 여러 가지 물성을 지닌 필름을 포개서 합치는 설비다. 전도성 필름, 차폐 필름 등 갖가지 필름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붙이는 설비다.

셋째는 슬리팅과 라미네이팅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복합기(multiple converting machine)’다. 필름은 물성에 따라 각종 화학 소재에 얇은 구리막을 입혀 서너 겹으로 만들기도 한다. 필름에 구리막을 입히는 것과 커팅이 동시에 이뤄진다. 이들은 컨트롤 장치에 의해 정교하게 입혀지고 잘린다. 이 밖에 원단 자체를 자르는 슬리팅기(slitting machine), 원단을 감는 리와인딩기(rewinding machine)도 만든다.

이들 장비를 개발하려면 많은 소재가 든다. 소재 역시 박스당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싸다. 아예 이들 소재를 라미네이팅해서 잘라 공급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기계 개발 과정을 사업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렇게 제조된 필름은 스마트폰용 평판디스플레이필름이나 가전업체의 가전제품용 필름, 자동차업체의 내부접착용 필름, 차량 엠블럼 등으로 공급된다.

동우에스티가 법인으로 출범한 것은 2003년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뿌리는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시흥동에서 10여㎡짜리 월세 사무실을 얻어 3M대리점을 시작했다. 김 사장은 경리를, 류정선 상무는 영업을 맡았다. 부부 사이인 이들은 창업 초기 서로 ‘대리’로 불렀다.

시흥과 구로동 가리봉동 고척동 일대에서 영업하던 류 상무는 기계를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고객마다 원하는 필름 사이즈가 달랐지만 이를 제대로 자를 기계를 구할 수 없었다. 스스로 만들어 쓰기로 했다. 이를 위해 독학으로 기계 제어 전자 등에 대한 공부를 했다. 기계업체를 찾아다니며 물었고 산업용재 유통상가의 고수들에게 한수 배우기도 했다. 바닥을 헤매며 절단기 지식을 익혔고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기계를 만들었다. 이 기계는 전기 전자 제어 소프트웨어 등 메커트로닉스 기술이 모여 완성됐다. 류 상무는 “기계를 개발하기 위해 새벽 2시에 퇴근한 뒤 새벽 5시에 출근한 적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개발한 설비는 자가 절단용이었다. 하지만 고객들은 필름보다 기계에 더 관심을 보였다. 필름이 통째로 정교하게 절단되는 데다 간격도 아주 고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수없이 기계를 팔아 달라는 요청을 받자 이들 부부는 아예 기계 제작에 뛰어들었다.

2003년 안산에 공장을 설립한 뒤 법인으로 전환했다. 이후 각종 특허를 등록했다. 여기에는 자동 롤커팅기, 연마부가 달린 롤커팅기, 동박 도전성 테이프 복합가공장치 등의 기술이 포함돼 있다. 인도네시아 일본 등에 대리점을 속속 개설했다. 김 사장은 “그동안 수출한 기계가 30여개국 1000여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일본에만 수십대가 나갔고 유럽, 미국, 호주 및 동남아 지역 등에 수출하고 있다. 전체 직원 80명 중 8.8%인 7명을 연구개발팀에 배치해 신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김 사장과 류 상무는 산업단지공단이 주관하는 반월·시화 전기전자미니클러스터에 가입해 동종업계 및 유관업종 관계자들과 협력활동을 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뒤늦게 인근 경기과학대를 다니며 청춘시절 못배운 것을 보충했다. 김 사장은 경영학, 류 상무는 기계설계를 공부했다.

이들의 꿈은 세계 최고의 기계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수출을 확대하는 일이다. 김 사장은 “필름커팅기와 라미네이팅 복합기의 수출을 더욱 늘리기 위해 연간 10회 정도 해외 전시회에 출품할 정도로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주문이 이어짐에 따라 올해 매출 목표는 작년보다 3배가량 늘어난 200억원으로 잡고 있다.

동시에 세계적인 기술과 제품력을 확보하려면 협력업체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를 위해 150개에 이르는 협력업체와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나눔을 일상화하라는 선친들의 가르침에 따라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자사를 찾은 협력업체 직원에게 작은 호의지만 구내식당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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