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양 회생계획안 의결…CP 투자자 등 채권자 1000여명 참석
채권자에 10년간 나눠 변제…개인채권자 지분이 86%
일부 고령 채권자들 "10년 기다릴 수 없다" 반대
[ 안대규/배석준 기자 ]
“대구에 사는데 관계인집회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어요. 나이가 80인데 10년간 변제를 하면 어떡합니까.”(개인 채권자 양모씨) “일단 회사를 살려야 많이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의결권을 위임받았습니다.”(모 채권자단체 대표)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아침 일찍부터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주)동양 2·3차 관계인 집회에 참석한 채권자들이다. 이들은 오전 10시 일제히 회생계획안에 대해 찬반을 표시한 OCR(광학식 문자판독기)카드를 투표함에 넣었다. 20분 만에 결과가 나왔고 법원의 인가 결정이 내려졌다. 법원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여경을 포함해 경찰 100여명을 대기시켰지만 큰 소란 없이 관계인집회는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수석부장판사 윤준)는 이날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진행 중인 ‘동양 사태’의 핵심 계열사 (주)동양의 회생계획을 통과시켰다.
◆눈물 닦아준 ‘법원’
(주)동양 회사채·기업어음(CP)에 투자했던 개인 채권자들은 투자금의 45%는 현금으로 돌려받고, 나머지는 주식으로 받게 된다. (주)동양에 대한 채권자 출자전환이 이뤄지고 나면 (주)동양은 86%의 지분이 개인 채권자에게 돌아간다.
(주)동양 회생 인가는 법원과 회사, 채권자단체들이 힘을 모아 극적으로 이뤄졌다. 당초 (주)동양은 채권자들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사상 최대 규모 채권자(3만7000여명)가 있다 보니 회생계획안 통과가 불투명했다. 회생계획안이 통과되려면 관계인 집회에서 전체 회생담보권자의 4분의 3, 회생채권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나와야 한다.
(주)동양 채권단은 회사채를 매입한 2만8549명, 특수목적법인 티와이석세스를 통해 전자단기사채를 인수한 5100여명 등으로 구성된다. 관계인 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부결’로 처리돼 의결권 위임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법원은 지난달 (주)동양 1차 관계인 집회 때는 1400여명의 채권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이들을 수용할 장소가 없어 소위 ‘멘붕’(멘탈붕괴·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황)을 경험했다.
그동안 법원은 ‘동양그룹채권자비상대책위원회’와 ‘동양 피해자대책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의결권을 모아줄 것을 독려했다. 때문에 이날 참석한 채권자는 예상보다 적은 1000여명이었다. 정성수 (주)동양 관리인은 “채권자들이 (주)동양을 회생시키고자 한마음으로 의결권을 위임해 불가능할 것 같았던 회생 인가를 이뤄냈다”며 “법원도 OCR 기기를 도입하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했다”고 말했다.
◆채권절반 출자전환…86% 개인 주주
회생계획안에 따르면 (주)동양은 채권자에게 10년간 나눠 변제하기로 했다. 출자전환 후 개인 채권자의 (주)동양 지분율은 86%가 돼 일종의 ‘시민기업’이 된다. 코스피 상장사인 (주)동양은 이날 상장폐지도 면하게 됐다. 회생계획안대로 출자전환이 이뤄져 자본잠식을 해소하지 않으면 상장폐지가 될 상황이었다.
이날 법정에선 고령의 채권자를 중심으로 회생계획안에 반대하는 발언이 나왔다. 자신을 70세의 암환자라고 소개한 한 채권자는 “10년간 산다는 보장을 못한다. 변제기간을 앞당겨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재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오늘 (주)동양의 회생계획안이 인가되지 않으면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된다. 기업은 기업대로 죽고, 주식 가치가 사라지면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채권자 간 합의를 이끌어냈다.
안대규/배석준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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