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ENS 인감도장 '알바생'이 관리…은행은 세금계산서 확인 안해
주범들, 수백억 '펑펑'…별장·외제차 사고 내연녀에 판교 빌라 선물
[ 김일규/홍선표 기자 ]
KT 자회사인 KT ENS 직원과 협력업체들이 짜고 16개 은행 및 저축은행을 상대로 벌인 ‘1조8000억원 대출 사기’에 금융감독원 팀장급 간부 두 명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KT ENS는 법인 인감을 책상에 방치하고, 관리도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겼던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 역시 허위 세금계산서 수백 장의 진위를 한 번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감원과 은행, KT ENS의 허술한 내부통제가 사상 최대 규모의 대출 사기사건을 방조한 셈이다.
◆463차례 걸쳐 1조8335억원 사기 대출
서울지방경찰청은 19일 김희철 전 KT ENS 부장(51)과 KT ENS 협력업체인 중앙티앤씨 서정기 대표(44) 등 15명을 검거해 이 중 8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사기 대출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대표 김모씨(56) 등 7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해외로 달아난 핵심 용의자 전주엽 엔에스쏘울 대표(49)는 인터폴에 적색수배됐다.
이들은 2008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463차례에 걸쳐 KT ENS에 휴대폰 등을 납품했다는 내용의 허위 매출채권을 담보로 16개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1조8335억원을 부정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2894억원은 갚지 않았다.
이들은 저가의 휴대폰 주변기기만 제조·유통하던 중 고가의 휴대폰 단말기를 KT ENS에 납품한 것으로 가장했다. 서 대표 등은 본격적인 범죄행각을 벌이기 전인 2007년 세금계산서를 부풀려 김 전 부장에게 제시했다가 들키자 4600만원을 건네며 그를 범행에 끌어들였다.
서 대표와 전 대표 등은 대출받은 돈을 회사 운영자금이나 이전 대출금 돌려막기에 썼다. 또 상장사인 다스텍 지분을 인수하고 경기 시흥 농원, 충북 충주 별장 등을 사들였다. 전 대표는 15억원 상당의 판교 고급빌라를 구입해 내연녀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명품시계와 고급 외제차를 굴리며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금감원 직원 추가 조사 중
전 대표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기 이틀 전인 지난달 4일 홍콩으로 도주했다. 현재 남태평양에 있는 섬인 바누아투공화국에 있는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전 대표가 해외로 도망가는 데는 금감원의 김모 팀장(50) 도움이 컸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김 팀장은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한 1월29일 서 대표 등 협력업체 대표들에게 전화로 조사 내용을 알려주고 이틀 뒤 강남의 한 식당에서 이들과 만나 협의도 했다. 김 팀장은 서 대표가 2008년 230억원에 구입한 시흥 농원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김 팀장은 2005~2007년 금감원 노조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서 대표를 2005년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알려져 도피를 도운 것 외에 사기 대출 과정에서도 도움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팀장 외에도 연루된 금감원 간부가 최소 한 명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금감원 저축은행검사국 박모 팀장을 최근 두 번 불러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며 “금융위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비밀누설 금지 위반 혐의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팀장이 박 팀장에게 접근해 검사 정보를 빼내 서 대표 등에게 알려준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팀장은 김 팀장 직전에 금감원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팀장은 협력업체들과의 관계를 모른 상태에서 단순히 김 팀장의 질문에 답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알바생에게 법인 인감 맡긴 KT ENS
허위 매출채권을 발급하는 데 사용된 KT ENS의 법인 인감도장은 관리자 서랍이나 책상에 놓여 있어 필요한 직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보관업무도 아르바이트생이 맡았다. 김 전 부장은 관리자의 감시가 소홀한 점심 때 등을 이용해 이 도장을 몰래 꺼내 서류 위조에 사용했다.
은행들의 허술한 여신심사시스템도 드러났다. 사기대출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서류는 KT ENS 협력사들이 낸 허위 세금계산서였다. 경찰은 “위조된 세금계산서 수백 장이 제출됐지만 은행들은 이 계산서가 세무당국에 신고됐는지 등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일규/홍선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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