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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경제의 만남] (18) 인플레이션 때 돈을 버는 '미술품 경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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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물가 안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한국은행법 제1조에서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한 물가안정’이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임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물가는 다른 어떤 요인보다 국민들의 실제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급격한 물가의 상승이다. 경제학에서는 일반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이는 화폐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1965년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짐바브웨는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대표적인 국가다. 한때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하며 높은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정치적 독재를 위해 무차별적인 화폐 발행을 감행한 결과 2008년 한 해 동안 무려 2억%의 물가 상승이 발생했다. 이는 지난해까지 1원이었던 상품이 1년 후에 200만원으로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짐바브웨에서는 100조달러짜리 지폐가 등장하기도 했다. 화폐의 공급이 생산물보다 많아지게 되면 그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화폐가치의 다른 말은 구매력이다. 화폐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은 화폐의 구매력이 낮아졌음을 말한다. 이는 동일한 생산물을 구입하기 위해 더 많은 화폐량이 필요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물가 상승이다. 이를 가리켜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며, 짐바브웨와 같은 엄청난 물가 상승은 별도로 ‘초(hyper)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인플레이션이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경우 많은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월급은 매달 일정한 금액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실질적인 구매력이 감소하게 돼 손실을 입게 된다. 같은 월급이라 하더라도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매력 하락으로 인해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입는 와중에 오히려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될수록 오히려 바빠지고 더 큰 수입을 얻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인데, 이들이 바로 ‘미술품 경매사’다.

미술품, 인플레 방어 수단

미술품 경매사란 미술품의 경매를 진행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 업무를 살펴보면 이들을 경매라는 행사의 진행에만 한정해서 설명할 수는 없다. 이들은 효과적인 경매를 진행하기 위해 작품의 선정과 수급에서부터 전시·기획과 경매진행, 그리고 낙찰 작품의 인도까지 담당하는 사람들로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경매를 통해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총괄 중개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미술품 경매사라는 직업이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이끌어가는 경매가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진행돼 물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데 있다. 인플레이션은 구매력을 낮춤으로써 손실을 입히기 때문에 향후 인플레이션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경우 사람들은 화폐가치의 변화로 인해 구매력이 손상되지 않는 실물자산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높아진다. 금이나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 등의 실물자산은 물가상승에 비례해 그 가격도 함께 올라가 화폐가치변동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경향을 미술품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수조달러가 계속해서 살포돼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자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고, 금이나 다이아몬드, 부동산에 집중됐던 선호가 미술품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판매량이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점은 미술품이 고(高)인플레이션 시대의 주요 방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단 20명인 귀한 몸

한국의 경매시장도 최근 들어 그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13년에 있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한 특별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경매 역사상 전무후무한 낙찰률 100%라는 기록을 세우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전 전 대통령 가문의 소장 미술품이 시장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이번 경매의 낙찰률 100%는 ‘경매의 마술사’로 불리는 미술품 경매사가 무엇보다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아무리 주목을 받는 경매일지라도 모든 물품의 낙찰이 이뤄진 것은 짧은 시간에 해당 미술품에 대한 가치를 수요자들에게 최대한 어필했기에 가능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미술품 경매사는 2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그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늘어나는 속도도 매우 더디다. 이유는 미술품 경매사가 되는 과정에 있다. 이들은 자격증의 취득이나 공인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품에 대한 종합적인 안목을 갖춘 이후 경매를 진행하기 위한 기술을 경험하며 만들어진다.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경매라도 대개 1~2분 내에 종료되기 때문에 사전에 작품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현장에서 시장의 흐름을 읽어내는 순발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처음부터 경매사로 입사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경매사는 경매 회사에 소속된 직원 가운데 자질이 있는 2, 3명을 골라 좌중을 압도할 수 있는 몸짓과 말투, 발음, 판단력 등을 갖추는 훈련 등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는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술품 경매사는 작품을 보는 안목에 더해 시장을 바라보는 눈, 매끄러운 진행 능력 등 다양한 자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무리 선진화되고 큰 규모의 경매회사라 하더라도 외부 채용을 활용할 수도, 한번에 만들어 낼 수도 없는 직업인 것이다.

미술계 최고 유망 직업

직업으로서의 미술품 경매사는 전망이 매우 밝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문성이 높아지는 특성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미술시장의 대중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보다 큰 이유다. 한때 미술품은 일부 부호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경매회사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미술시장에 주부, 자영업자 등 다양한 시민컬렉터들이 몰려들고 있다. 매번 경매가 열릴 때마다 객석에는 200명에 가까운 애호가들로 가득 찬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품 경매사의 역할은 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 다양해진 수요층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더 많은 작품들과 호흡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품 경매사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높아진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한국 미술작품 전체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미술품 경매사가 해야 할 일이다.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작품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미술계에서 미술품 경매사에게 거는 기대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술시장의 양적 확대를 질적 수준의 향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미술품 경매사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미술품 경매사를 미술계의 최고 유망 직업의 하나로 주저없이 꼽을 수 있는 이유다.

용어 풀이

▨ 미술품 경매사

미술품 경매를 진행하는 사람으로 경매 기획부터 작품 수급과 선정, 감정 의뢰, 전시 등을 거쳐 경매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 관여하는 경매시장의 총괄 중개인이다.

▨ 인플레이션

일반물가 수준의 지속적인 상승을 의미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주어진 소득 수준에서 이전보다 더 적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게 되기 때문에 화폐의 구매력을 감소시킨다.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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