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 고두현 기자 ] 주말 내내 기분이 좋았다. 소치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갈라쇼에서 피겨여왕의 진정한 면모를 재확인시켜준 김연아였다. 여자 1000m에서 금·동메달을 휩쓴 박승희·심석희도 대견스러웠다. 언론 매체와 네티즌들의 끝없는 찬사가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편파 판정에 분노하는 팬들을 다독이며 쿨하게 웃음짓는 김연아, 우승 문턱에서 메달을 놓치고도 넘어진 선수를 감싸거나 노골적인 방해를 극복하고 금을 따낸 박승희의 모습은 충분히 ‘대인’다웠다.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매체가 이들을 ‘대인배’라고 치켜세웠다. 동아일보는 2면 톱 제목에 주먹글자로 ‘대인배’라고 썼고, 중앙일보는 3면 사진설명 첫머리를 ‘대인배’로 시작했다. 그나마 홑따옴표를 씌우긴 했지만 이는 분명 틀린 표현이다.
방송이나 인터넷은 더했다. “통 큰 대인배” “멋진 대인배” “우리의 대인배”…. 도량이 넓고 관대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소인배의 반대 개념으로 쓴 모양이다. 그러나 배(輩)는 무리를 뜻하는 말이자 주로 대상을 낮추거나 부정적인 뜻으로 쓰는 접미사다. 불량배, 폭력배, 모리배, 간신배, 무뢰배 등이 예다. ‘대인’에게 배를 붙이는 건 잘못이다. 소인의 반대말을 굳이 들자면 대인이나 군자다. 한자를 모르는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얄궂은 신조어는 몇 년 전 “소인배는 대인배를 알아보는 눈이 없어서 소인배라 하는 것이지”라는 한 만화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퍼졌다고 한다. 이젠 아이들이 “저도 대인배가 되고 싶어요”라고 할 지경이 돼버렸다. 유행을 반영하는 신조어는 언어생활에 탄력을 주기도 한다. 기발한 단어들도 많다. 그러나 잘못된 표현은 사람의 생각을 뒤틀리게 만든다.
애초에 말은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우리 사고를 지배하는 것도 언어다. 생각도 말로 하고 표현도 말로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쓰니까 상관없다”며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타당한 근거나 학술적인 뒷받침 없는 주장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글이 확대 재생산되는 비극도 되풀이된다.
더 큰 문제는 틀린 것조차도 ‘우리편’ 사람들이 많이 쓰거나 대중의 힘으로 몰아붙이면 대세가 된다고 믿는 풍토다. 이는 ‘무식도 여럿이 모이면 세력’이라는 말과 함께 설익은 대중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주장 때문에 세상이 혼탁해진다. 틀린 것은 틀렸을 뿐이다. 옛사람들도 그랬다. “에 해 다르고 애 해 다르다”고.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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