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태 정치부 기자,국회반장)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정치권의 생리를 표현하는데 이 보다 적확한 말을 찾기는 힘들다. 어제의 동지가 적으로 변하고, 한 배(같은 정당)를 탔다가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일이 정치권에선 드물지 않다. 이렇게 갈라선 정치인들은 ‘라이벌’로,때론 ‘앙숙지간’이 된다. 거물, 중진급의 정치 라이벌들에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들 행보에서 정치권의 지형변화 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 이름만 들어도 얼굴을 찡그리는 ‘앙숙’들도 여론의 관심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앙숙관계 정치인들은 감정싸움으로 골이 깊어져 서로를 ‘라이벌’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정치권의 대표 ’앙숙’으론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를 꼽을 수 있다. 둘은 최근에도 앙금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언쟁을 벌였다. ‘정치적 휴지기’를 갖던 안 전 대표가 “이번엔 홍 지사가 양보할 차례”라며 경남 도지사 출마의사를 거듭 내비친 게 계기가 됐다. 홍 지사는 “양보 받은 적도 없을 뿐더러, 도지사가 나눠먹는 자리냐”며 코웃음을 쳤다.
안 전 대표가 창원시장 출마쪽으로 한발 물러선듯 하던 싸움은 아직 끝난게 아니다. 안 전 대표가 경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박완수 창원시장과의 연대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둘은 이를 극구 부인하지만, 창원시장 출마로 선회한 안 전 대표와 박 시장간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라도 홍 지사에 대한 안 전 대표의 구원(舊怨)이 어떤식으로 표출될런지, 이 것이 도지사 경선과정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런지 등은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다.
홍지사와 안 전 대표는 ‘스타검사’ 출신으로 동향(경남 창녕과 마산)에다, 정치계 입문동기나 시기는 물론 4선을 거쳐 당대표를 역임한 것까지 ‘판박이’ 정치인생을 걸어왔다. 홍 지사는 1993년 슬롯머신 사건 수사검사로, 안 전 대표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당직검사로 명성을 얻었다. 둘은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탁성 권유로 정계에 발을 들여놨다. 15대 총선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후 18대까지 내리 4선에 성공하면서 원내대표와 당대표도 나란히 역임했다.
원내대표는 2008년 6월 홍 지사가 먼저 했고, 안 전 대표가 다음해에 바통을 이어받았다. 당 대표는 안 전 대표가 2010년 7월에 먼저 한후 홍 지사가 2011년 7월에 승계했다. 정치적 시련도 함께 찾아왔다.19대 총선에서 홍 지사는 낙선, 안 전 대표는 공천에서 탈락했다.
심지어 체신없는 ‘막말’로 구설수에 오른 것까지 닮았다. 안 전 대표는 2010년 12월께 여기자들과 오찬에서 “요즘 룸살롱에 가면 오히려 ‘자연산’을 더 찾는다고 하더라”라며 성형 안한 여성을 자연산에 비유해 논란을 일으켰다. 홍 지사는 한술 더 떴다. 2011년 10월께 홍익대 인근 카페에서 열린 대학생들과 미팅에서 자신의 과거 사연을 소개하며 “이대(이화여대) 계집애들 싫어한다” “꼴같잖은 게 대들어 패버리고 싶다” 등 막말을 쏟아냈다.
다른 점이 있다면 8살 연배가 많은 안 전 대표가 서울대를, 홍 지사는 고려대를 나왔다는 것 정도다. 이처럼 둘의 삶의 궤적을 짚어보면 도대체 ‘친해질 수 없는’구석을 찾기 힘들지만, 둘은 정치입문 후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각종 현안을 놓고 사사건건 맞붙었던 둘의 관계는 지난 2010년 7월 당 대표 경선 TV토론을 계기로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당시 홍 지사가 안 전 대표가 “개 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며 이웃을 상대로 소송을 냈던 사실을 폭로했다. “‘개소리’ 때문에 옆집사람과도 화합을 못하는 분이 당대표 자격이 있냐”고 공격한 것. 이에 안 전 대표가 “당시 아들이 고3이었고 옆집 개는 10마리였다”고 해명하자, 홍 지사는 “10마리가 아니고 4마리”라고 재반박했다. 당대표 경선이 한편의 ‘코미디’로 전락한 것이다.
안 전 대표의 병역기피 의혹이 끄집어내지면서 집권여당의 대표 경선은 ‘잔혹 코미디’로 변했다. 홍 지사는 “병역 기피를 10년 하다가 고령자로 병역 면제된 사람이 당 지도부에 입성하면 한나라당은 ‘병역 기피당’이 된다”며 맹비난했다. 홍지사는 체중미달로 14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했다.
홍 지사의 인신공격에도 불구하고 안 전 대표가 친이(친이명박)계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당권을 잡았다. 2% 차이로 석패한 홍 지사는 이후에도 틈만 나면 안 전 대표를 공격했다. 2011년 홍 지사가 당대표를 승계하면서 잠시 멈췄던 둘의 갈등은 2012년 경남지사 보궐선거 공천권을 놓고 다시 불거졌다. 안 전 대표가 출마의사를 접으면서 일단락됐지만, 둘의 정치적 채무관계는 감정적 앙금처럼 가슴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결국 6.4지방선거가 두 앙숙이 다시 맞붙을 무대를 제공한 셈이다.
포문은 안 전 지사가 먼저 열었다. 지난 1월 한 방송에 출연,”지난해 (경남도지사)보궐선거에서 출마를 생각하고 있는데 홍 지사가 출마를 하겠다고 나섰다”며 “전 대표 두 사람이 대선을 앞두고 경남지사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아 양보했다”고 운을 뗐다. 홍 지사의 자발적 양보를 촉구한 것이다.
성질 급한 홍 지사는 곧바로 방송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안 전 대표가 양보한 일이 없다. 이게 무슨 서로 나눠먹기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그런 말씀을 하는 게 아니다”라며 “나오려면 나와서 한 번 해 보시라”고 응수했다. 또 다른 매체에 출연해서는 ”보온병 가지고 흔드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라며 안 전 대표가 지난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이후 연평도를 방문,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던 사건을 재상기시키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당 대표까지 지낸 두 앙숙의 거친 말싸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경남지사 출마를 선언한 박완수 창원시장은 “두 분의 설전은 새누리당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는 두 정치거물이 앙숙지간이 된 진짜 속사정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새누리당 한 의원은 ”홍 지사가 사법연수 기수가 7기가 높은 안 전대표를 진정 선배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둘의 갈등의 배경”이라고 전했다.(끝)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