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역학조사위원장 김재홍 교수
철새도래지 인근에 가금류 농장 못짓게
가장 효과적이지만 농가 반대 많을 것
정부 '묻지마 살처분' 방식 바꿔야
[ 고은이 기자 ] “이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방역체계를 보다 선진화하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AI 역학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재홍 서울대 조류질병학과 교수(사진)는 철새를 통해 건너오는 AI의 국내 발병을 원천적으로 막을 길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만약 AI 유입이나 확산을 막기 위해 철새 이동을 통제한다고 상상해보세요. 그것이야말로 후진국을 증명하는 꼴 아닙니까.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때문에 일시이동제한(스탠드스틸)조치와 저수지 인근 항공방제도 상징적인 의미 외에 실제 효과는 크지 않다고 했다. 그가 제안한 가장 효과적인 AI 방지 대책은 철새도래지 인근에 가금류 농장을 세우지 못하도록 하는 것. 다만 관건은 실행 가능성이다. 효과가 크긴 하지만 농가들의 반대가 심각할 것이란 얘기다.
김 교수는 실무와 연구를 두루 경험한 국내 최고의 가축 질병 권위자다. 2002년 구제역 당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방역과장, 2003년 AI가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는 조류질병과장을 각각 맡았다. 국내에 가축질병에 대한 정보나 지식, 제대로 된 방역체계도 없던 시기에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다.
그는 효과적 방역체계 구축을 위한 우선적인 과제로 지방자치단체 내에 숙련된 전문가 양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3~4년에 한 번씩 가축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현장에 나가보면 지자체 담당자가 몽땅 다 바뀌어 있어요. 이래 갖고는 초기 대응부터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아요.”
공무원들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다고 했다. 동물질병 방역 업무가 워낙 고되기 때문이다. “겨울에 꽁꽁 언 땅을 판 뒤에 닭과 오리를 죽여서 묻고, 주변 일대를 소독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축방역 공무원들에게 추가 인센티브를 줘야 전문가 집단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획일적인 살처분 기준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몇 ㎞ 내 무조건 살처분하는 식의, 이른바 ‘묻지마 살처분’으로 비판받고 있는 정부의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 현재 방역당국은 AI 발생 농가 3㎞ 이내의 닭·오리농가의 경우 AI에 걸린 것이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예방적 차원에서 모두 살처분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라도 산이나 강으로 막혀 있을 수도 있고, 멀리 있어도 사람 간의 이동이 많은 곳일 수도 있습니다. 거리를 정해 놓고 살처분을 강제하기보단 큰 틀의 가이드라인만 주고 판단은 지자체에 맡기는 게 방역 선진화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그동안 한국의 AI 연구 수준이나 방역체계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진 만큼 예전처럼 겁에 질려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에는 지속적인 연구활동을 통해 AI 유전자 연구시스템이 정착돼 있고 긴급대응지침(SOP)도 마련돼 있는 상태다.
“AI가 피해 농가들엔 큰 일이고 국가 경제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사람 몸으로 치면 발병 원인과 치유 방법이 거의 나와 있는 만큼 차분한 대응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세종=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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