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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과 날줄] 시간의 주름이 펼쳐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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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년만에 찾아간 고향 그곳
그 시절 음악감상실이 아직도
흐르는 음악엔 내 젊은날들도…"

신수정 < 문학평론가·명지대 문창과 교수 >



아마도 지금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음악감상실’이라는 용어에 익숙할 것이다. 굳이 ‘세시봉’처럼 널리 알려진 음악 무대가 아니어도 도시 어디에서나 클래식 음악감상실 정도는 흔하게 볼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정초에 고향을 방문했다가 실로 몇십 년 만에 20대 초반 자주 들락거렸던 단골 음악감상실을 찾았다. 혹시나 싶어서 이름을 치고 인터넷에 검색을 했더니 옛날 그대로 그 자리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몇몇 사진으로 보건대 외양도 거의 그대로인 듯했다.

그러나 의외로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옛날 기억을 되살리고 인터넷 정보에 의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번을 주변에서 맴돌아야만 했다. 심지어 당시의 내 또래로 보이는 아가씨들에게 주변 지형지물을 이야기하며 그곳이 어디쯤인지 묻기까지 했다. 그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모른다 하였다. 알고 보니 내 또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중앙공원’이라는 용어가 그들에겐 낯설었던 탓이다. 그곳은 나에게는 생소한 ‘2·28 국채보상 추모공원’으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 아가씨들과 내가 동일한 공간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고향의 시내 중심가는 내가 그들만 할 때 누비고 다니던 그 길이 아니었다. 어떤 곳은 너무 쇠락했고, 또 어떤 곳은 너무 화려하게 개수되어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 아니 모든 산천이 그러하듯, 내 고향에도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

그것을 시간의 위용이라고 해야 할까. 그토록 넓게 느껴지던 입구가 저리 좁았나 싶은 것은 그렇다 치자. 분명 1층이라 생각했던 감상실은 사실 3층이었으며 감상실의 배치 역시 내가 생각하던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당혹해하며 문을 밀고 들어섰다. 아기를 업은 새댁이 어쩐 일이냐는 듯 쳐다봤다. 내가 몇십 년 만에 처음 찾아왔다고 하자 그녀는 홀 안쪽을 향해 ‘어머님’하며 자신의 시어머니를 불렀다.

아, 그녀의 시어머니를 보는 순간, 나는 내가 와야 할 곳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세월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과거의 그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척 아주머니를 만난 것처럼, 그녀에게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그녀 역시 자신의 가족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말해주었다. 전쟁의 와중에 피난을 오면서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자신의 엘피 앨범들로 그 음악감상실을 차렸던 그녀의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그녀의 자녀들은 모두 성장해 다들 다른 도시로 나가 있다는 것이었다. 일이 힘들 때면 그 도시의 음악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둘째 며느리가 자신을 도와준다며 아까 나를 맞이했던 아기 업은 새댁을 가리켰다.

때마침 토요일이라 감상실에서는 매주 토요일이면 정기적으로 모이는 클래식음악 동호회 회원들의 음악 감상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울려퍼졌다. 아름다운 체코의 풍경 아래로 나의 젊은날이 흘러갔다. 이곳에서 만나곤 하던 친구들, 그 가운데 몇몇은 이제 소식도 알지 못한다. 젊은날 그렇게 붙어다니던 친구와 나는 어이해서 연락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나. 아마 나의 무심과 불찰의 결과일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고 중년부부로 보이는 커플이 들어섰다. 남자가 여주인을 향해 이야기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찾아왔다고. 고향에 다니러 온 길에 아내와 함께 젊은날 추억이 깃든 이곳을 일부러 찾아왔노라고. 주름살 가득한 여주인이 활짝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여기, 그런 분, 또 한 분 계시다며. 음악이 계속 흘렀다. 그리고 가슴을 저미는 선율이 이어졌다. ‘나의 조국’의 2번곡 ‘몰다우’였다. 시간의 주름이 잠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신수정 < 문학평론가·명지대 문창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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