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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근 칼럼] 1급 사표 소동, 장난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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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괄사표, 쇄신 공감얻기 어려워
국정 혼선의 책임일선은 장·차관
정부 2년차인데 인사난맥상 여전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국무총리실 1급 공무원 10명의 일괄사표로 연초부터 공직사회가 술렁이자 총리가 직접 나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서둘러 진화했다. 기정사실화되는 것처럼 보였던 정부 부처 1급들의 줄사표는 없던 일로 가라앉았지만 뒤끝이 영 좋지 않다. 장·차관은 제쳐 두고 1급부터 앞세운 순서는 분명 잘못됐다. 그럼에도 청와대와의 교감까지 이뤄졌다며 쇄신을 내걸고 칼을 빼들었다가 어물쩍 칼집에 도로 넣는 모습은 새 정부 출범 2년차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인사의 난맥상 그대로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까지 거들고 나섰던 것은 또 무엇이었나. 공무원 인사를 총괄하는 부처의 수장이자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그는 “공직 이기주의를 버리고 철밥통을 깨야 한다”며 모든 부처 1급들의 일괄사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었다. 결국 총리실 1급들의 사표가 불쏘시개는커녕 장난 수준이 되고 말았다.

1급을 흔히 ‘공무원의 꽃’이라고 한다. 적어도 30년 안팎의 공직 업무를 큰 탈 없이 수행하면서 능력이나 자질, 도덕성을 검증받아야 올라갈 수 있는, 부처별로 몇 안되는 자리다. 다만 법적으로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지위이니 인사권자가 언제든 사표를 요구할 수는 있다. 사유는 ‘쇄신’ 한마디로 충분하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고 국가 현안 처리의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책임 공무원들의 존재감이 없다면 그 이유만으로 바뀌어야 할 대상이다. 유 장관은 ‘공직자가 자신이나, 자기 부처, 장관을 위해 일하는 오랜 관행이 굳건한 철옹성 같다’고 했지만 그 일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중간은 간다.

공무원 사회에는 확실히 수많은 문제가 있다. 몇 년 전 어떤 고위 관료의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관료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해야 하고, 정치의 시녀일 수밖에 없다는 자기 비하적(卑下的) 표현이다. 공무원의 특성, 그 조직의 문제와 한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이 말은 막스 베버의 통찰이었다. 그는 이미 한 세기 전 “관료는 영혼이 없다. 관료는 개인 감정을 갖지 않는다. 관료의 권위는 영혼 없는 전문가와 감정 없는 쾌락주의에 의존한다”고 했다.

그 조직의 적폐 또한 한두 마디로 설명되지 않는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국민에게 봉사할 책무를 가진 공무원들의 조직 생리에 국민은 없다. 정체된 의식, 무사안일, 복지부동, 철밥통, 전관예우의 산하기관 낙하산,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규제 남발, 책임질 일이라곤 전혀 만들지 않는 무능…. 그런 부정적 언어들 일색인 것이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관료사회가 개혁의 첫째 대상인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일신의 영달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늘에서 묵묵히 일해온 공무원이 많고, 또 그 조직만을 매도할 일도 아니다. ‘변양호 신드롬’이 왜 나왔나.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론스타에 팔아넘기는 데 총대를 멘 죄(?)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감옥에 갔던 사건 이후 공직사회에서는 ‘말썽이 일 만한 사안은 절대 손대지도, 결정하지도 않는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국민들의 불만이 크다면 문제의 근원은 첫째 장관, 둘째 차관의 잘못에 있고 그 다음에 책임을 물을 곳이 그들을 보좌하는 1급 공무원들일 것이다. 그게 정상적인 인사운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각은 없다며 장관들에 대한 비판론에 대해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사람도 제대로 업무를 파악하고 일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벌써 대통령 5년 임기 중 1년이 흘렀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인사가 만사(萬事)이자 망사(亡事)이다. 벌써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째이고 이제는 리더십이든 능력이든 밑천 짧은 장관들이 누구인지도 다 드러났다. 갈 길은 바쁜데 아직도 인사의 갈피를 못 잡고 자꾸 꼬여드는 것 같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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