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왼쪽 그림은 무엇을 묘사한 것일까. ‘토끼’가 떠오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리’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두 귀가 선명하게 묘사된 토끼의 그림으로 보았다. 토끼를 키웠던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그림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안 후에도, 토끼의 귀 부분을 부리로 보아 오리로 인식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그림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 그림인데, 동일한 현상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람마다 각자가 가진 인식의 틀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도 각기 달라진다. 그 인식의 틀을 흔히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이라고 하고 학문적 용어로 ‘프레임’이라고도 한다.
2013 성신여대 수시 기출 : 관점의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
2013 중앙대 수시 기출 : 대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그 한계
2012 한양대 수시 기출 : 프레임 이론과 바람직한 프레임 설정
2010 인하대 수시 기출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특징
2010 단국대 수시 기출 : 지식 탐구에서 지닐 바람직한 태도
▧ 프레임 이론
프레임이란 사람들이 정치ㆍ사회적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의 본질과 의미를 규정하는 직관적 틀을 뜻한다. 프레임의 사전적 의미가 ‘기본 틀ㆍ뼈대’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대할 때 완전히 순백의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고정관념과 패턴을 가지고 판단하게 된다. <한양대 2012 수시 기출> 제시문을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해보자.
프레임의 가장 흔한 정의는 창문이나 액자의 틀, 혹은 안경테이다. 이 모두 어떤 대상을 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프레임은 뚜렷한 경계 없이 펼쳐진 대상 중에서 특정 장면이나 특정 대상을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골라내는 기능을 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 중 어느 곳에 프레임을 맞춰 사진을 찍을 것인가 고민하는 작가가 양쪽 엄지와 검지로 사각 프레임을 만들어 여기저기 갖다 대보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동일한 장면을 대하고도 작가들마다 찍어낸 사진이 다른 것은 그들이 사용한 프레임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식도 이와 같다. 우리는 마음의 창, 곧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 고정관념의 역할
‘고정관념’ 이라는 단어는 언뜻 보기에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정관념이라는 프레임, 즉 인식의 틀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뒤죽박죽일 것이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성별, 나이, 외모, 직업, 고향, 가족관계 등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신속하게 판단을 내리는 데 매우 유용하다. 어떤 사건에 직면해서 빠른 판단을 내리거나 즉각적인 대응을 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즉,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매번 새로운 판단을 해야 하고, 특정 사건을 대할 때마다 처음부터 고찰을 시작해서 새로운 관점을 탄생시켜야 하는 어려움과 비효율성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사안의 맥락과 기존 정보를 활용해서 새 정보를 명료화하고 그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고차원적 추론능력인 것이다.
고정관념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다. 수많은 정보와 변화 속에 노출되어 판단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일정하고 고정된 틀에 의존할 수 있다면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사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의 특징을 <인하대 2010 수시 2차 기출> 제시문을 통해 확인해보자.
언론학자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여론》에서 세상의 의미를 가장 단순하고 빠르게 찾도록 만드는 것이 ‘고정관념’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밖에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과 우리 머릿속에 들어 있는 세상을 구분한 후,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으면서 인식에 영향을 주는 고정관념의 예로 ‘독일인(딱딱하다)’, ‘남부 유럽인(게으르다)’, ‘니그로(우둔하다)’, ‘하버드 출신(똑똑하다)’, ‘선동가(과격하다)’ 등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이런 고정관념이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만족시키는 면이 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무언가 불안하고 무질서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좀 더 단순하고 일관된 생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은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순화시킨다.
▧ 고정관념이 낳는 문제들
모자 장수는 자기가 정말 흥미를 갖는 문제, 즉 모자와 머리의 문제에 대하여 내게 얘기를 꺼냈다. “크기로 말하면, 참 놀랄 만큼 차이가 심합니다. 저희는 변호사들과 거래가 많습니다만, 그분들의 머리 치수는 놀랄 지경입니다. 손님도 놀라실 겁니다. 아마 그분들의 머리가 그렇게 커지는 것은 생각할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중략) 우리는 제각기 자기 특유의 창을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지금 본 것은 모자의 치수를 통해 온 세상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경우였다. 그는 존스가 7인치 2분의 1을 쓴다 해서 그를 존경하고, 스미스는 6인치 4분의 3밖에 안된대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한다. <2013 중앙대 수시 기출 제시문 >
나는 필경 그 모자 장수에게 빈약한 인상을 주었으리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나의 보통의 머리를 떠받들고 상점을 나왔다. 그 상인에게 나는 겨우 6인치 8분의 7 치수의 인간밖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따라서 대단치 않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속에 보석을 지닌 머리는 반드시 큰 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주고 싶었다. <한양대 2013 수시 기출 제시문>
논술로 자주 출제되는 ‘모자 장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모자 장수는 자신의 직업적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머리 크기로만 사람들의 자질과 능력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객관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듯 프레임을 설정한다는 것은 상황을 단순화시키고 효율적으로 사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만들어진 프레임의 크기와 모양으로만 세상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창문을 통해서 바깥세상의 전부를 볼 수 없듯이, 프레임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진실일 수는 없다.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고정관념이나 프레임은 의사소통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비어 있는 백지 상태로 임하지는 않는다. 이미 상당량의 정보를 지닌 상태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사람들마다 겪어 온 과거의 경험이 다르고, 지식체계가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문자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 의미와 내용이 똑같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느 한편의 고정관념이나 프레임이 잘못 형성되어 있다면 의사소통의 간극은 더 커질 것이다.
‘경로의존성(徑路依存性·path dependence)’ 이란 심리학적 개념이 있다.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의 관습을 의미한다. 경로의존성의 예로 ‘컴퓨터 자판 배열’이 자주 인용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자판의 왼쪽 맨 위 알파벳 배열은 ‘QWERTY’ 순으로 되어 있다. 타자기가 수동이었던 시대에 팔이 뒤엉키지 않게 타이핑 속도를 일부러 늦추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후 기술이 발달하여 보다 효율적인 키 배열인 드보락(DVORAK) 자판이 개발되었지만 보급되지 못했다. 기존의 타자 습관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즉, 관성에 젖은 행동이 창의적인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인간의 사고도 마찬가지이다. 고정관념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는 것은 자신의 성장과 발전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외부의 환경이나 조건은 계속 변해가는데 자신만 기존의 프레임만을 고집한다면 정체되거나 도태될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때로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사고의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지나 <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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