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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법치(法治)의 혼을 살려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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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자생적 질서 옹호한 '법치'
의회권한 강화로 원래 의미 왜곡
입법제한 통해 자유정신 살려야

민경국 < 강원대 교수·경제학·한국제도경제학회장 kwumin@hanmail.net >



법의 내용이 무엇이든 의회가 정한 법에 따라 국가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 헌법에 합치되는 법을 집행하는 것, 이런 게 법치(法治)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짙게 깔려 있다. 국민의 뜻에 따른 민주적 입법이 법치라고 주장한다. 분배 복지를 위한 정치, 중소기업을 위한 대기업 규제야말로 진정한 법치라고 큰소리치기도 한다.

이쯤에서 보면 유서 깊은 법치가 시장에 대한 정부간섭을 정당화하는 얼빠진 개념으로 전락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가격·노임·금리 규제, 기업·금융·노동규제 등 매년 수천건의 규제가 ‘법’이라는 가면을 쓰고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유도 법치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이다. 이로부터 법치를 해방시키는 게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주지할 점은 법치란 자유주의의 전통 속에서 정립된 정치적 이상이라는, 그래서 자유주의 맥락에서만 그 개념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게 애덤 스미스가 법치의 원조라는 사실이다.

그는 18세기 개인의 자유와 번영을 해치는 중상주의의 압제를 배격하기 위해 법치에 호소했다. 칸트가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대해야 한다는 도덕철학적 의미를 법학적으로 해석해 법치를 개발했던 것도 집단목표를 위해 독일시민의 경제자유를 억압하던 정부 관료와 싸우기 위해서였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법 철학자 다이시가 법치에 호소한 것도 사회정책을 위한 입법부의 자의적 권력행사로 야기되는 사회 분열의 우려 때문이었다. 계획경제의 다양한 정부간섭으로 암울했던 20세기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하이에크가 “법치의 이탈은 노예의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목할 것은 그같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고비마다 자유주의 거장들이 의지했던 법치의 진수(眞髓)다. 이는 통치자가 멋대로 법을 정하지 못하도록 법이 갖춰야 할 조건이다. 핵심은 첫째, 법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산업 등을 차별하는 건 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둘째, 법은 불의(不義)의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따라서 법은 집단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마지막 세 번째, 법은 금지된 행동이 무엇인지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확실해야 한다. 일감몰아주기 금지는 정상·위장거래를 구분할 기준이 없기에 불확실하다. 이런 ‘법치의 법’으로 구성된 법질서는 개인과 기업이 스스로 정한 목적을 자유로이 추구할 수 있는 ‘자유의 틀’이다. 법치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가능하게 해 자유와 번영을 이끄는 제도적 환경이라는 것도 직시해야 한다.

흥미로운 건 자유의 수호자인 법치를 왜곡한 원인이다. 민주이념의 등장으로 국민의 뜻이 무엇이든 그게 법이라는 인식이 형성됐고 그래서 국민의 대표기관에 경제입법권을 무제한 허용했다. 입법을 제한하는 법치가 실종된 것이다. 애석하게도 헌법도 스스로 법치를 위반하고 있기에 입법제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용-편익, 공익, 공정 등을 통한 법 인식도 의회의 입법 홍수를 막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법치의 왜곡을 야기하는 데 기여했다. 그런 기여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게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 관해 관심도 없고, 경험도 없는 공법학 후생경제학 케인스주의였다.

유감스럽게도 법치 실종의 결과는 빈곤, 실업, 저성장 위기 등 참혹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도 법 같지도 않은 규제입법, 금리의 인위적 조작, 중앙은행의 재량적 통화정책 등 법치의 위반 때문이었다.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근본적 이유도 노동, 금융, 기업 등 모든 부문에서 법치가 실종됐기 때문이라는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의회의 입법권을 엄격히 제한해 국가의 자의적 강제로부터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법과 법치의 정신을 살려야 할 절박한 때다.

민경국 < 강원대 교수·경제학·한국제도경제학회장 kwumi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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