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버틀리'
[ 유재혁 기자 ] “나는 이 자리에 없는 존재처럼 행동해야 한다. 백인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한다.”
미국 백악관에서 집사로 일하는 세실(포리스트 휘터커)에게 이런 직업윤리는 삶의 강령이 된다. 목화 농장에서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하인 교육을 받고 성장해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일하다가 백악관 집사로 발탁됐다.
실존 인물 이야기를 모티프로 만든 할리우드 영화 ‘버틀러:대통령의 집사’(리 대니얼스 감독·28일 개봉)는 주인공 세실이 아이젠하워부터 케네디, 레이건 등 8명의 대통령을 모시는 동안 흑인들의 인권사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조망한다. 현실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로 미국에서는 3주간 흥행 1위에 오른 화제작이다.
영화는 세실과 아들 루이스의 상반된 모습을 비교한다. 세실은 백인이 지배하는 체제에 철저히 순응하지만 루이스는 주류 사회와 정부에 저항하는 운동을 펼친다. 레스토랑에서 백인들의 의자에 앉아 뭇매를 맞으면서도 버틴다. 흑인들의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시위에 참여하면서 수없이 감옥을 들락거린다. 그의 눈에는 집사 일을 하는 아버지가 부끄럽다.
루이스를 비롯해 마틴 루서 킹 목사, 맬컴 엑스 등이 펼친 인권운동이 곁들여지며 역대 대통령들은 흑인 인권을 확대하는 조치를 잇달아 발표한다.
그러나 영화는 대통령들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은 다름 아닌 세실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세실의 성실함에 감화된 대통령들은 언제나 흑인 편에 선 정책을 펼쳤다. 백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했던 세실은 백인 지도자들이 거부감 없이 다가오게 함으로써 자신의 지원군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세실은 마침내 레이건 대통령에게 흑인들의 봉급을 백인과 동등한 수준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한다. 30여년간 차별을 묵묵히 견뎌낸 그의 요구를 누구인들 거부했을까. 그의 성실한 삶은 가정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의 유혹을 이겨내도록 힘을 주고, 아들이 극단적이고 과격한 반체제운동으로 빠지지 않도록 길잡이 노릇을 한다. ‘라스트 킹’에서 아프리카 독재자 이디 아민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휘터커가 세실 역을 맡아 내면 연기를 펼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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