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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초지에 담 쌓아 사유화…'공유지 비극' 막고 토지 생산성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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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스토리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9) 인클로저와 재산권

식량·양모의 수요증가로 모두가 사용하는 토지에
과도한 수의 가축 풀어 목초지의 황폐화 초래

담 쌓아 배타적 소유권 확립 타인의 이용 배제했다지만
전체 생산량은 증가시켜

도시로 농민 내몬 배경으로 마르크스, 인클로저 지목
"자의적 선택 고려안했다" 비판

한국경제·한국제도경제학회 공동기획




인클로저(enclosure)는 토지의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담장을 쌓는 것을 말한다. 즉 토지에 대한 공유가 부정되고 배타적 사적 소유권이 확립되는 과정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산업혁명 전의 영국에서 주로 나타났는데 이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15~16세기에는 양을 기르기 위해, 그리고 18~19세기에는 농작물 생산을 위해 공유지에 담을 쌓는 일이 일어났다. 이는 사적 재산권의 발전이 역사적 필연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영국에서 인클로저가 일어난 건 양모와 식량 가격의 상승 때문이었다. 모직공업의 발달로 양모 수요가 늘어났고 도시 인구의 증가로 식량에 대한 수요 또한 많아졌다. 이에 따라 목초지 및 농지의 가치는 커졌다. 이처럼 자원의 가치가 상승하면 공유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잘 표현한 것이 공유지의 비극이다. 누구나 목초지를 자유롭게 사용해 소를 기르게 하면 결국 목초지가 파괴되는 것이다.

방목하는 소가 적어서 누구나 소에게 마음껏 풀을 먹일 수 있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인구 증가로 소고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소의 가격이 상승하면 목초지의 공유는 유지될 수 없다. 소가 많아져 목초지가 부족할 때 모두가 자신의 소에게 먼저 풀을 먹이려고 풀이 다 자라기 전에 방목하게 되고 그 결과 목초지는 황폐해지고 만다.

이런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있어 실제 상황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 막기 위한 흔한 방법은 공유지를 유지하면서 목초지 이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용 일수를 제한하거나 기간을 제한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목초지의 황폐화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목초의 생산을 최대로 늘리지는 못한다. 아무도 목초가 잘 자라도록 노력하지 않아서다. 목초가 잘 자라더라도 목초 이용권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목초지의 사유화로 해결할 수 있다. 사유화된 목초지 가치는 목초의 생산이 많을수록 크다. 가령 내가 기존 목초지 주인보다 목초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목초지를 구입하고자 할 것이다. 목초지 가치를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목초지 사유화는 목초를 가장 잘 생산할 수 사람이 목초지를 소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인클로저는 공유지를 이용하던 농민들의 이농을 초래했다고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역사적 과정으로서 인클로저에 처음 주목한 것은 마르크스였다. 그는 인클로저를 통해 농민들이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요한 자유로운 임노동자로 전환됐다고 여긴다. 토지에 대한 농민의 권리가 강탈돼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한 원시적 축적이 이뤄졌다고 본다. 하지만 농민의 이농을 초래한 것은 인클로저만이 아니라 도시에서 취업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인클로저 이전의 농민은 질병과 빈곤에 시달렸다. 비록 배부르게 된다는 약속은 없었지만 그래도 농촌의 삶보다는 유리했기 때문에 도시로의 이농이 이뤄진 것이다. 농민의 도시 이전이 그 전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토지에 대한 농민의 권리가 부정된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생산적인 농민이 농지를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인클로저는 자원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나타난 필연적 과정으로 단지 영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뎀세츠에 따르면 미국의 인디언 사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모피 무역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인디언들은 주로 사냥을 통해 식량을 얻었다. 사냥터는 공유로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피무역이 본격화되면서 모피 가격이 올라가고 모피를 얻기 위한 사냥도 늘어났다. 그러면서 사냥터에 대한 사적 소유가 진행된다. 나무에 자신의 사냥터임을 표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처럼 세계 여러 곳에서 자원에 대한 수요 증가로 가치가 커지면 자원 사용의 효율성을 위해 사유화는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소유를 확인하는 제도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경제여건에 따라 다양하게 등장한다. 굳이 담을 쌓은 것은 달리 소유를 확인할 수 있는 경제적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담을 쌓기 이전에는 토지의 소유 확인을 주로 기억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먼 곳에 거주하는 사람과의 토지거래를 제한한다. 그래서 시장이 확대되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소유 확인제도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담을 쌓기보다 철조망이라는 값싼 방법으로 소유의 경계를 표시했다. 소유 확인 비용이 크면 사적 소유제도가 불가능해 여전히 공유로 남아있기도 한다. 오늘날 자신의 농지에 담을 쌓는 일은 거의 없다. 담이 없어도 등기제도를 통해 소유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도 사적 소유보다 공유나 국유를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사유화로 다른 사람의 이용 권리가 배제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유화는 누군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축출하는 과정이 아니라 보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이 목초지나 농지를 사용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지식재산권은 내가 사용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사용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식재산권의 공유는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지식재산권의 생산은 줄어든다. 목초지가 공유이면 아무도 목초가 잘 자라도록 노력하지 않듯 지식재산권을 대가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아무도 지식재산을 만들어내지 않게 된다.

공유 자원의 비효율성이 증대되면 공유 제도를 바꾸기보다 인간의 이기심을 비난하는 주장이 예나 지금이나 흔히 등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유전자가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런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탓하기보다 공유자산에 대해 주인을 정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사유화를 통해 생산성이 올라가면 가격이 떨어져 소득이 부족한 사람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저소득층을 도울 수 있는 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유재산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오늘날, 인클로저는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공유지 비극으로 지지도를 높인다?

‘공유지의 비극’은 미국 생물학자 개릿 하딘(사진)이 1968년 사이언스지에 실은 동명의 논문에 나온다. 누구나 공유하는 자원을 공짜라는 생각에 마구잡이로 써서 결국은 아무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하딘에 따르면 공유지의 비극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진부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현재적 문제다. 인간 본성의 자연적인 힘이 공유지 비극의 존재를 심리적으로 부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개인적 이익을 위해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진실을 부정하게 된다. 교육이 이러한 본성을 제어할 수 있지만 다음 세대에도 이러한 지식은 새롭게 전수돼야 한다. 그는 이러한 지식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쇼핑 기간에 시내 중심의 주차미터기에 플라스틱 백이 씌워 있다. 요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플라스틱 백을 제거하지 마시오. 시장과 시의회의 배려입니다.’ 달리 말하면 희소한 자원에 대한 수요의 증가를 예상해 시 당국이 공유 제도를 재도입한 것이다. 수요가 폭주할 때는 가격을 올리는 게 당연하지만 정치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반대의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는 얘기다. 역설적으로 시 당국자들은 이러한 퇴행적 행위로 표를 잃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표를 얻었을 것이다.

이처럼 공유지의 비극은 오래전에 알려졌지만 이를 특수한 사례로 치부하곤 한다. 그래서 공유지의 비극은 국가 공유자산을 비롯해 공유수면, 국립공원 등에서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하딘은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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