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골프장 (1) 터지는 부실 폭탄
7억5000만원 낸 가산노블리제 회원들 '깡통 회사' 주주 전락
회원권 분양 안돼 건설단계부터 경영난 시달려
믿었던 '주주 대중제' 모델 실패…회원 보호 비상
입회금 다 날린 첫 사례
[ 한은구 기자 ]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중인 경기 포천 가산노블리제CC(27홀)가 시공사이자 주채권자인 유진기업에 인수되면서 입회금을 출자전환해 주주가 된 가산노블리제 회원들이 결국 빈손으로 남게 됐다.
유진기업은 6일 자회사인 유진로텍이 골프장 용도로 가산노블리제의 땅과 건물을 629억원(매매 비용 포함)에 사들였다고 공시했다. 유진기업이 밀린 공사대금을 회수하기 위해 골프장 땅과 건물을 공매에 부친 뒤 직접 사들이면서 가산노블리제 회원들은 ‘껍데기 회사’의 주주로 전락해 버렸다.
회원들이 입회금을 통째로 날린 사상 첫 사례다. 가산노블리제CC 회원들은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입회금의 17%만 돌려받게 된 골프클럽Q안성 회원들보다 더 큰 손실을 입은 셈이다. 가산노블리제 회원(현 주주) 507명은 입회보증금(4억~7억5000만원)을 출자전환해 직접 경영으로 정상화를 모색했으나 자산을 몽땅 잃어버리고 한 푼도 건지지 못하게 됐다.
입회금을 반환받지 못하거나 회원권이 휴지조각으로 변하는 사태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1990년부터 거래를 시작한 국내 골프회원권 시장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회원제 골프장들은 이제 회원권 폭락을 넘어 ‘회원권 무용론’까지 나오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를 헤쳐나갈 대안 마련이 시급해졌다. 한국경제신문이 기획 시리즈 ‘위기의 골프장’을 싣는 이유다.
2010년 4월 회원제로 개장한 경기 포천의 가산노블리제CC(27홀)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회원권 분양 등으로 비용을 충당해 골프장을 건설하던 관행의 폐해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시행사인 코리핸랜드가 골프장 건설단계부터 경영난에 시달렸고 결국 회원권 분양 실패로 공사대금을 갚지 못하면서 2011년 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 1월 ‘입회보증금 전액 출자전환으로 대중제(퍼블릭) 전환’을 골자로 한 기업회생계획을 의정부지방법원으로부터 인가받았다.
법원이 인가한 회생계획안은 총 3149억원에 이르는 회생채권을 출자전환과 채무면제 등을 통해 정리하고, 회원제 골프장을 퍼블릭으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영업이 정상화되면 2018년 이후 골프장을 매각해 채권을 회수한다는 계획이었다.
시공사인 유진기업은 공사대금 등 총 1447억원의 채권 중 466억원은 채무면제를 해주지만 475억원(변제율 32%)을 7월12일까지 상환받고 나머지 506억원은 출자전환키로 했다. 그러나 주주들이 475억원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유진기업은 채권 회수를 위해 공매처분에 들어갔고 지난달 18일 1560억원으로 첫 공매를 시작해 9차례 유찰된 뒤 지난 4일 10회차에 직접 낙찰받았다.
○토지, 건물에 이어 영업권도 넘어가
골프장 부지와 클럽하우스 등 땅과 건물을 모두 넘겨줌으로써 회원들은 골프장 운영 자산이 없는 ‘껍데기 회사’의 주주가 됐다. 영업권이 남아 있지만 이 역시 유진기업으로 넘어갔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가산노블리제가 회원제로 남았다면 토지와 건물이 매각되더라도 ‘체육시설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체시법)’ 제27조에 따라 회원 승계 의무가 있지만 퍼블릭 골프장이라 그런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매각과정에 깊이 관여한 한 관계자는 “체육시설물을 팔 때 공매나 경매, 기업 인수합병(M&A)이든 회원제는 체육시설을 산 회사가 회원의 권리의무를 승계하면 사업권이 유효하다. 하지만 대중제는 승계할 회원이 없기 때문에 사업권이 토지 소유자에게 승계된다”고 설명했다. 골프장 땅과 건물을 사들인 유진기업 관계자는 “우선 체육시설업 등록 등 골프장 관련 인허가를 취득해 골프장을 정상화한 뒤 매각이나 투자자 모집 등을 고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재인수하려면 150억원 부담해야
주주들이 골프장을 다시 인수하기도 쉽지 않다. 재인수하려면 추가로 150억원 이상의 부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산노블리제를 운영해 온 골프장 관계자는 “사실상 대책이 없는 상태다. 유진기업으로부터 골프장을 다시 사들인다고 해도 취득세 등 추가로 부담할 돈이 150억원”이라며 “연 85억원 정도를 벌어 53억원을 금융비용으로 내고 있는데 여기에 부담액이 늘어나면 사실상 경영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처음에 퍼블릭으로 전환했을 때 매각 주관사 경쟁이 붙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지만 최근 들어 골프장 영업 환경이 악화되면서 자금 마련이 어려워졌다”고 상황을 전했다.
가산노블리제의 주주인 이용규 씨는 “영업권 문제가 남아 있으나 현재로서는 많이 불리한 상황”이라며 “자금을 조달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유진기업이 전혀 협조를 안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달 중으로 자금 유치 계획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는데 유진기업이 27억원의 보증금에다 이자를 내라고 했다”며 “23억원 정도를 마련했으나 유진기업이 이를 기다려 주지 않고 공매를 강행했다”고 덧붙였다. 주주들은 유진기업으로부터 재인수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주 대중제도 안전하지 못해
주주 대중제는 회원권 가격 폭락으로 부도 위기에 몰린 골프장의 회원이나 막대한 채무보증을 떠안은 건설사들 사이에 ‘모범 답안’으로 통했다. 가산노블리제는 법원의 기업회생절차를 통해 대중제 골프장으로 전환해 시공사와 회원들이 상생의 길을 찾은 첫 사례로 꼽혔다. 골프클럽Q안성의 회원들도 주주 대중제로 전환한 뒤 자금을 조달해 빚을 정리하는 것을 최선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가산노블리제의 주주 대중제 실험이 실패로 사실상 막을 내려 회원들의 불안 심리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골프장 M&A 관련 전문가는 “주주 대중제로 전환해도 제대로 자금 조달이 안될 경우 가산노블리제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 이런 사례는 또 나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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