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끝) 日 메이지대 경영대학원 다카하시 마사야스 원장
CEO의 생각·전략 희망적이고 짧은 이야기로 전달
머리 아니라 가슴에 호소해야 직원들 자발적 행동
기업 환경 급변할 땐 강력한 오너경영체제가 유리
대기업마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세상이다. 비즈니스맨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블랙베리는 이미 매물로 나왔고, 노키아 소니 파나소닉 등 전설적인 전자기업들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잘나가던 기업의 발목을 잡은 요인은 무엇일까. 22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다카하시 마사야스 메이지대 경영대학원장은 ‘스토리텔링 부족’이라는 의외의 답을 꺼냈다. 경영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직원들에게 하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진단이다.
▷기업이 스토리텔링과 무슨 관계인가.
“어느 조직이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소통하지 않는 조직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기업도 경영을 하는 ‘조직’이다. 지금까지 경영학에서는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다루면서 정보의 전달 측면에만 주목했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공유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가 누적되면서 또 다른 잣대가 등장했다. 그게 바로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조직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소통한다. 일상적인 잡담이라도 대화는 대부분 이야기로 구성된다. 오스트리아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말하지 않았나. 인간의 언어는 본래 문자가 아니라 이야기라고. 지식이나 정보는 문서의 형태가 아니라 ‘스토리’에 담았을 때 전달력이 높아진다. 인간의 이런 특성은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기업은 지향점이 있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대체로 명확하다. 기업의 구성원들도 숙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다만 실천이 동반되지 않을 뿐이다. 사람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호소해야 한다. 알게 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닫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CEO의 생각과 전략을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어떤 게 있나.
“일본 기업가 중에서는 혼다그룹의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생 자체가 큰 이야깃거리다. 시멘트공장을 하다가 두 번이나 파산했고, 겨우 재기해서 지은 가솔린 깡통 공장은 지진으로 폐허가 됐다. 마지막으로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자전거에 모터를 달아 판 것이 대박을 쳤다. 혼다는 자동차사업이 성공한 뒤에도 직원들에게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해 달라’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매번 ‘어떤 일이 있어도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여기에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사를 함께 버무렸다. 직원들의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혼다가 살아 있을 시절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이런 이야기를 가슴속에 담고 일했다. 이게 스토리텔링의 힘이자, CEO가 가져야 할 대표적인 능력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 유형이다.”
▷스토리텔링은 마치 지도자의 화두 같다.
“물론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한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해서는 더욱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선진국을 만들겠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선전 문구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일본 정치인 중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이런 능력을 갖고 있었다. TV와 라디오에 자주 등장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짧은 이야기로 전달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이 정말 옳은 것이었는지는 물론 별개의 문제다.”
▷일본 전자기업들이 요즘 고전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나.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굳이 원용하자면 파나소닉의 사례를 들 수 있겠다. 파나소닉은 이런 스토리텔링의 힘이 역으로 부작용을 일으킨 사례다. 혼다 소이치로와 마찬가지로 파나소닉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뛰어난 경영자였다. 그의 경영철학은 회사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일본 기업의 모범이 됐다. 마쓰시타가 주창한 것 중 하나가 ‘사업부제 경영’이다. 회사의 각 영역을 사업부로 나눠 효율을 높이려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당초의 취지는 사라지고 사업부 간 장벽만 남았다. 같은 회사에 있으면서도 사업부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회사 사람처럼 행동했다. 여기에 비슷한 사업을 하는 산요까지 합병하면서 불통의 벽은 더욱 높아졌고, 중복 비용은 배가됐다. 파나소닉이 경쟁력을 잃게 된 주요인이다.”
▷소니도 비슷한 경우인가.
“소니는 무분별한 다각화가 발목을 잡은 측면이 크다. 소니는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을 성장 모델로 삼았다. 주력이던 전자산업과는 관계없는 금융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진출하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들 부가사업이 수익을 낸 것이 어떤 면에서는 재앙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점점 소니는 본업인 전자산업에는 소홀해지고, 세계 최고 수준이던 기술력도 한국의 삼성전자 등에 밀리게 됐다.”
▷올 들어 일본 기업들이 살아나는 분위기인데.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로 대기업들의 실적은 개선되는 추세다. 엔화 가치 하락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환율은 믿을 게 못 된다.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아베노믹스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수출에 주력하는 대기업은 상황이 좋아졌지만 수입물량이 많은 상당수 중소기업은 오히려 예전보다 경영이 어려워졌다. 결국 내수가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돈을 번 대기업들이 임금 인상을 통해 근로자들의 소비심리를 부추겨야 한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대기업들은 모두 극심한 글로벌 경쟁에 내몰려 있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물량도 많다. 국내 직원들에게만 월급을 올려주는 게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아베 총리가 최근 결정한 소비세율 인상은 어떻게 평가하나.
“소비세는 역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벌어들인 돈 가운데 생활비로 쓰는 비중이 저소득층일수록 더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소비세율이 가장 낮은 나라다. 어느 정도의 인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일률적인 증세보다는 좀 더 정교한 세제가 필요하다. 생활필수품에 적용되는 소비세는 낮추는 대신 고소득층의 소비와 연관된 상품의 세율은 높이는 식의 이중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
▷ 한국과 일본 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뭔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고방식의 차이다. 한국 기업은 결과를 중시하고, 일본 기업은 과정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생산 공장을 방문했더니 안내를 맡은 회사 관계자가 계속 자동화율이 얼마에서 얼마로 높아졌다는 것을 강조하더라. 반면 도요타는 아직도 생산과정에 투입돼 있는 사람의 힘을 중요시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현대는 일단 빨리 만들고 난 다음에 불량을 걸러내고, 도요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각의 과정에서 불량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한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시스템이 더 낫다고 보나.
“최종 품질과 효율 측면에서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일본 기업들도 요즘 들어서는 과정과 사람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모노즈쿠리’ 정신을 계속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해외 생산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권의 외국 근로자에게 이런 전통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것은 무리다. 도요타 등 일본 기업들이 현재 처해 있는 딜레마다.”
▷오너십의 유무는 기업 경쟁력과 어떤 연관성이 있나.
“한국과 일본 기업 간 두드러진 차이점 중 하나가 오너십이다. 한국은 대부분 강력한 오너체제로 운영되는 반면 일본은 그런 기업이 얼마 없다. 어느 쪽이 우수하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는 문제다. 경영 상황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진다. 예컨대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강력한 오너가 있는 쪽이 유리하다. 반면 그만큼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할 확률도 높아진다. 반면 경영환경이 안정적일 때는 조정 능력이 뛰어난 소통 위주의 CEO가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한·일 양국 간 노사관계의 차이는.
“한국에 비해 일본엔 상대적으로 강성 노조가 적다. 대기업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노동조합의 입김이 센 것이 기업의 경쟁력 측면에서는 대체로 마이너스라고 봐야 한다. 물론 노조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대립적인 노사 관계가 기업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뜻이다.”
다카하시 마사야스는
다카하시 마사야스 일본 메이지대 경영대학원장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경영조직론’ 권위자다. 와세다대에서 석사학위를, 메이지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UCLA에서 객원교수로도 활동했다.
주요 연구 테마는 경영조직과 리더십이다. 기업이라는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리더십의 요체를 분석하는 것이 골자다. 그는 기존 경영학자와는 달리 최고경영자(CEO)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주목한다. 기업의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담긴 메시지 전달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조직론’ ‘조직에 있어서 스토리텔링의 전개와 변혁’ ‘리더십으로서의 스토리텔링’ 등 그의 저서와 논문도 대부분 이의 연장선상이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주요 기업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현재 일본경영학회와 경영전략학회 등의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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