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혁명적 사회주의론자 카를 마르크스
19세기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절망이 공존했다.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풍요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다른 한편에선 자본주의의 미래는 장밋빛일 뿐, 빈곤은 인류가 안고 가야 할 숙명이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 자유와 번영을 기약하는 건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설파한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독일의 사회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가 주목한 건 자본주의가 어떻게 몰락하고 사회주의로 전환되는가의 문제였다. 그에게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을 거머쥔 자본가가 노동을 지배하는 사회였다.
마르크스는 공동체 문화를 결정하는 건 이념이 아니라 물질적 힘(기득권)이라는 논리를 펴며 도덕 법 정치 등 시장경제의 상부 구조도 사유재산을 소유한 자본가 권익을 위해 형성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지배계급은 그런 상부 구조를 통해 길들여지는데, 자본가의 착취가 가능한 것도 체제를 위해 훈련된 노동의 순응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본이 어떻게 노동을 착취하는가. 마르크스의 착취이론은 상품가격(가치)이 생산에 투입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논리(노동가치론)에서 출발한다. 노동이 가치의 유일한 창출자라는 뜻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게 순리이고 이는 가격과 일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기업주는 가격만큼 보수를 주지 않고 이윤으로 자기 몫을 챙기고 겨우 먹고살 정도의 임금만을 주는데, 이게 바로 착취라고 강조한다.
노동자들이 구원을 받을 가능성은 없는가. 마르크스는 그 해법이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혁명은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그게 자본주의 경제의 파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스스로 파멸하는가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는 데 주력했다.
기업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낮은 노임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자본을 축적해 기업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게 그의 시나리오 서막이다. ‘축적하고 또 축적하라!’ 이게 자본주의 진리라고 한다. 착취를 통해 생긴 이윤을 재투자해야 기업이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마르크스는 이 같은 자본 축적 논리가 장차 혁명 발발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는 과잉 축적으로 인해 자본비용 증가와 이윤 감소를 가져오고 투자는 위축돼 자본재 산업에 불경기가 닥친다는 논리를 편다. 이뿐만 아니다. 축적의 경쟁은 독점화와 기업 몰락을 몰고 와 늘어나는 건 대기업의 횡포와 착취, 그리고 실업이라는 설명으로 제1막을 끝냈다.
그 정도의 환경 악화로는 노동대중의 혁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마르크스 주장이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들을 더 비참하게 만들어 혁명대열로 뭉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다고 한다. 그게 자본 축적으로 생산은 증가하지만 노동대중의 수요 능력 부족으로 생겨나는 과소 소비라는 것이다. 이로써 ‘산업예비군’이 참을 수 없는 불황·불안·공포에 빠져 혁명의식이 살아난다. ‘노동자여 뭉쳐라!’라는 함성으로 시나리오 제2막이 끝난다.
드디어 혁명이 무르익었다. 노동대중은 뭉친다. 자본주의는 전복된다. 사유재산제가 철폐되고 계획경제가 실시되는 새 시대가 온다는 사회주의 혁명 노래로 마르크스의 대서사시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거대한 논리 구조는 상당한 오류로 엮어져 있다는 게 많은 경제학자들의 지적이고 이는 현실 상황에서 검증됐다. 시장경제는 계획 없이도 스스로 질서가 형성되는 자생적 질서라는 것을 마르크스는 인식하지 못했다. 노동가치론에 집착한 나머지 범한 실수다. 그 이론으로는 자생적 질서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가격의 신호 기능, 즉 판매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기업들에 알려주는 기능을 이해할 수 없다.
가격이 노동 투입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마르크스는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수요하지 않으면 생산에 투입된 노동이나 노력은 소용이 없다. 가치를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소비자다. 이런 인식에서만이 가격의 신호 기능을 이해할 수 있다.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론에서 도출한 착취이론도 오류투성이다. 생산을 위한 노동이 투입되기 전에 생산 그 자체를 결정하는 건 기업가다. 위험을 무릅쓴 투자, 혁신은 바로 기업가정신의 산물이다. 그 대가가 이윤이다. 노동가치론에는 기업가 기능이 빠져 있기에 착취이론도 틀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자본과 노동을 적대적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자본은 노동의 생산성을 높여 소득을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기에 ‘노동의 친구’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기술 발전은 비용 삭감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다른 상품을 생산할 기회를, 그래서 다른 일자리를 창출한다. 과소소비론도 허점이 많다. 저축은 누출이 아니라 자본재 생산을 위한 자금줄이라는 이유에서다. 생산이 소비를 초과하면 가격이 내려가기에 과잉 생산이란 없다. 시장의 불안정은 정부의 무모한 개입에서 비롯된다는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역사학 철학 경제학 등을 융합해 우주와 역사를 한 줄로 꿰는 진리를 제시하겠다는 야심찬 학자였지만 그의 담론은 노동가치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본론' 美서 베스트셀러… 레닌주의·나치즘에 영향
마르크스 사상의 힘
카를 마르크스는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먼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긴 수염과 머리카락에 대한 부분이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제우스상에 매혹된 마르크스는 제우스상의 얼굴 모습과 비슷하게 턱수염과 머리를 길렀다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많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수염을 길렀는데 이는 마르크스에서 비롯됐다는 게 혁명 연구가들의 설명이다.
마르크스는 대영박물관에서 칩거하다시피 하며 ‘자본론’을 쓰던 중 가난 때문에 병든 세 어린 자식을 잃는 비운도 겪었다. 그는 가난과 가족의 불운을 사회 탓으로 돌렸다고 전해진다. 반면 마르크스를 옆에서 도와준 사회주의자 엥겔스는 낮에는 돈 잘 버는 자본가였고, 밤에는 고급 포도주를 마시며 노동자를 위해 건배를 즐겼다고 한다.
마르크스 사상은 19세기 말까지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890년 ‘자본론’이 영문판으로 발간되자 미국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자본을 축적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해 독자들이 돈벌이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마르크스 사상이 지성계에 미친 영향은 작지 않다. 1960년대 유럽의 ‘문화혁명’을 주도한 프랑크푸르트학파, 반미운동에 앞장선 남미의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케인스는 마르크스를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고, 더구나 경제학에 기여한 바는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 추종자들은 케인스 이론은 노동계급을 임금노예로 만드는 사악한 경제학이라고 응수한다.
레닌과 스탈린의 러시아혁명과 체제 전환, 그 과정에서 희생된 1000만여명의 죽음은 마르크스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1950년대 이후 중국의 대규모 기아사태와 빈곤도 중국인들이 신처럼 숭배한 마르크스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히틀러와 나치즘, 루스벨트의 뉴딜정책 뿌리도 마르크스였다.
옛 소련의 몰락으로 대부분의 나라가 자유시장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자유시장에 대한 불신과 마르크스에 대한 향수는 아직도 곳곳에 있다. 권력과 착취를 막고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마르크스의 목적은 좋았지만 그는 인간이성과 정치를 너무 낭만적으로 봤다. 주목할 부분은 마르크스가 염원했던 빈곤과 착취 없는 사회는 자본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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