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1만2000대 허가했지만 아직도 자가용 택배차 1만대 영업
'카파라치' 도입 등 단속강화 방침…울며 겨자 먹기로 번호판 암거래
#1. 자가용 화물차를 보유한 자영업자 이모씨(52)는 ‘노란 번호판’을 단 영업용 화물차를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사업이 잘 안 돼 지난 추석 때 용돈벌이라도 할 요량으로 한 운송업체의 택배 일감을 실어나르다 벌금 300만원을 물었다. 경쟁 업체 신고로 불법영업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택배기사도 번호판 색깔에 따라서 신분이 나뉜다”며 “이거(흰색 번호판) 달고는 어딜 가도 천덕꾸러기 신세”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2. 지난 2일 서울 장한평 중고차 시장에서 만난 개인용달차 번호판 매매브로커 권모씨. ‘노란 번호판’을 요구하자 “번호판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으니 결정했을 때 사는 게 좋다”고 권했다. 그는 “수요는 넘치는데 물량은 없어 가격이 오르기만 한다”며 “나중에 팔아도 손해 안 보니 투자라고 여기고 사라”고 부추겼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로 택배물량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영업용 택배차량은 턱없이 부족해 자가용 화물차들이 불법영업에 나서는 등 택배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영업용 화물차량이 달려 번호판 임대 장사가 판을 치고, 중고차 시장에선 노란 번호판 가격이 170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2004년 이후 10년 만인 지난 7월 1만여대를 증차해 노란 번호판 가격이 한때 1000만원대로 떨어졌지만 효과는 채 3개월을 가지 못했다.
○10년 만에 1만2000대 늘렸지만
현행법상 자가용 화물차가 돈을 받고 화물 운송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1998년 제정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운수법)은 화물차의 유상 화물 운송은 노란색 번호판(영업용 번호판)을 발급받은 차량에 한정하고 있다. 흰색 번호판을 단 화물차가 택배 영업을 하면 법적 제재 대상이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해 6월 ‘자가용 화물차로 돈을 받고 화물을 운반하는 행위를 신고할 경우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을 화물운수법(제60조의2)에 신설했다. 자가용 차량을 이용한 불법 택배 영업 행위에 대해 ‘카파라치 제도’(신고포상금 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대해 택배업계는 시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2004년 영업용 번호판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꾼 뒤 10년 가까이 신규 차량을 늘리지 않았다. ‘화물운송차량 공급 과잉’이 이유였다. 하지만 택배 물량은 10년 동안 3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택배 물량은 13억개에 달했다. 택배업계는 늘어나는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영업용이 아닌 자가용 택배 기사들까지 고용했다. 업계의 불만이 높아지자 국토부는 지난해 4월 택배용 신규 차량 번호판을 공급하기로 결정, 1년여의 심사를 거쳐 올 7월 노란 번호판 1만2000여개를 새로 발급했다.
○단발성 효과…번호판값 1700만원대 치솟아
신규 화물차량 공급에도 업계와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주로 자동차 중고매매시장 등을 통해 유통되는 영업용 번호판 거래가격은 1300만원대에서 최고 1700만원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서울 장한평중고차시장의 한 브로커는 “정부가 영업용 번호판을 풀면서 한때 1000만원대까지 번호판 가격이 떨어졌지만 금세 원상 회복됐다”며 “최근에는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오르는 추세”라고 전했다. 번호판 거래는 일종의 관행으로 여겨져 제한할 법적 근거도 마땅찮다.
영업용 차량 번호판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교통사고 등으로 이미 번호판 사업정지 처분을 받은 차량주인이 구매자에게 이를 속이고 번호판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차량주인이 행정처분을 받기 전에 번호판을 넘기면 처벌 역시 넘겨받은 사람의 몫이 된다. 지난 3월 1330만원을 주고 노란 번호판을 산 자가용 택배기사 최모씨는 “이제 마음 놓고 택배 운송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영업정지가 뒤늦게 나와 이제 남은 건 빚뿐”이라며 “구청에서 검증 절차가 전혀 없다는 점이 더욱 황당했다”고 말했다.
영업용 차량 품귀 현상이 해결되지 않아 자가용 택배기사들을 상대로 한 번호판 임대 장사도 여전하다. 권리금 300만원과 매월 15만~19만원의 임대료를 내는 형태다.
경쟁업체끼리 자가용 택배 차량의 불법영업을 고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얀 번호판’ 택배기사 정모씨(39)는 “특정 영업소를 골라 주변에 잠복하고 있다가 단속에 나서는 용달차 운전자도 있다”고 혀를 찼다.
○“불법영업 불가피” vs “증차 돈벌이 수단 우려”
번호판이 고가에 거래되는 것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다. 업계에서는 국토부의 번호판 증차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4월 기준으로 이전에 17개 택배업체에 등록된 1만6062대의 자가용 택배차량 중 심사를 거쳐 1만3457대를 증차 대상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신용불량자 등 영업용 택배차량 전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2000여대를 제외, 최종적으로 1만1221대를 증차했다. 이에 대해 택배업계는 지난해 4월 이후 등록된 차량과 폐업에 따른 자연감소분 등을 고려하지 않아 증차 효과는 6000대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물류협회 관계자는 현재 4만2000여대의 택배 차량 중 1만여대가 여전히 자가용 택배차량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국토부는 “일부 자가용 차량 소유주들이 기존 번호판을 팔고 새 번호판을 다시 받으려고 하는 등 부작용이 있어 지난해 4월 이전으로 기준 시점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업계 요구대로 무작정 증차를 계속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가용 택배 차량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택배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 6월 ‘택배 물류 혼란 및 소비자 불편 등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신고포상금 제도 도입을 보류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내년 초 카파라치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배명순 한국통합물류협회 사무국장은 “자가용 택배차량에 대한 단속 강화로 전국적으로 운송대란이 벌어지면 사회 전체적으로 하루평균 3400억원대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지훈/박상익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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