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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 힘들었던 1975년 첫 포럼…어느새 38년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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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조찬모임'목요포럼'1800회 이끈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故 박병규·김인득 창업주와 시작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도 원년멤버
"국가 발전하려면 인간을 공부해야"



“정확히 제 인생의 절반을 목요 조찬포럼과 함께했네요.”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76·사진)은 38년 전을 떠올렸다. 그의 나이 38세였던 1975년 2월5일, 국내에서 처음 민간 차원의 조찬 모임을 만들었다. 당시는 기업인들이 국가 경제개발 정보를 듣기 위해 정부 주도의 조찬 모임에만 참석하던 때였다. 당시 그가 들고 나온 화두가 ‘인간개발’. 그래서 조찬포럼 이름도 ‘인간개발 경영자 연구회’로 지었다. 매주 목요일에 모인다고 해서 ‘목요 조찬포럼’으로 불리기도 했다. 인간중심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 사업을 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인간개발연구원도 이때 설립됐다.

장 회장은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인간개발을 얘기할 때만 해도 모두 생뚱맞다고 생각했는데 38년이 지나니 이제 좀 통하는 것 같다”고 웃었다.

최초의 민간 조찬포럼을 함께 만드는 데 기여한 이들은 고 박병규 해태그룹 창업자와 고 김인득 벽산그룹 창업자 등 24명. 당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이수빈 씨(현 삼성생명 회장)도 창립 첫 해부터 목요포럼에 참석했다.

장 회장은 “다행히 38년 전에도 국가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사람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적지 않았다”며 “이런 분들이 안 계셨더라면 최초의 민간 조찬포럼은 시작도 못했을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이렇게 시작된 국내 최초 민간 조찬포럼은 최장수 조찬 모임으로 발전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뿐 아니라 대학교수, 언론인들이 참석하며 회원 수도 200여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모여 사람에 대해 공부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 1회 개최 원칙을 지켜 지난 26일 1800회를 돌파했다. 장 회장은 “38년간 한 주도 빠짐없이 국내 CEO들의 새벽을 깨우며 인간개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줄 수 있었다는 게 큰 보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38년간 롱런한 비결은 뭘까. 장 회장은 “회원들이 원하는 강연자를 섭외하고 시의적절한 주제가 생기면 하루에 2~3명의 강연자를 초빙해 열띤 토론을 벌인 게 장수 포럼 비결”이라고 했다. 이어 “일정 기간이 지나니 회원들끼리 공유의식도 생기고 자연스럽게 국내 대표 조찬 모임으로 인식된 덕을 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강연자를 직접 섭외하고 있다.

장 회장은 한남대 영문학과와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나온 뒤 1968년 명지대 경영학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한국 브랜드를 알리는 코리아마케팅 대표이사와 한국갤럽연구소장 등을 거쳐 1975년 인간개발연구원을 설립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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