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싼 우수 인력 있어 국내서도 해외서비스 가능…미국 창업 땐 현지인맥 중요
창업 실패 뒤 유학·재창업…SNS '빙글'로 또 다른 도전
“미국에서 창업해 배운 게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위해 꼭 실리콘밸리에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란 점도 배웠죠. 지난해 빙글을 만들면서 한국에 들어온 것도 이 때문이에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의 동영상 자막서비스 업체 비키를 일본 라쿠텐에 2억달러(약 2197억원)에 팔아 화제가 된 부부 벤처기업인 호창성(39)·문지원(38) 비키 창업자에게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이같이 말했다. 창업을 하는 데 물리적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세계적으로 통할 글로벌 서비스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이들은 비키를 매각하기 전인 2011년 말 한국에서 ‘빙글’(www.vingle.net)이라는 관심사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차려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최근 서울 논현동 빙글 사무실에서 만난 호·문 빙글 공동대표는 “빙글을 트위터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서비스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전자상거래 기업 라쿠텐이 비키의 가치를 2억달러나 평가한 이유는.
“비키는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동영상 언어를 번역해 자막을 붙이는 서비스다. 150개가 넘는 나라의 이용자가 세계의 드라마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을 자기 나라 말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비키의 핵심 경쟁력은 언어 장벽을 없애는 글로벌 번역 커뮤니티에 있다. 이 번역 커뮤니티가 지금 당장은 동영상 번역에 국한돼 있지만 라쿠텐의 다양한 사업에 접목될 여지가 있다. 라쿠텐은 전자상거래업체지만 아마존처럼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었다.”
▷비키가 세계적인 서비스가 될 수 있었던 건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기 때문 아닐까.
“비키는 실리콘밸리에 세워졌지만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회사다. 창업자는 한국인이니 그야말로 다국적 기업이다. 싱가포르에 가장 많은 30명의 직원이 있어서 싱가포르 언론들은 비키를 싱가포르 기업으로 간주하고 있을 정도다. 비키 매각 소식이 전해진 뒤 ‘싱가포르 테크벤처가 역사상 가장 큰 금액에 인수됐다’고 싱가포르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하면 어떤 장점이 있나.
“미국과 싱가포르, 한국에 다 있어봤지만 일장일단이 있다. 실리콘밸리에 있으면 우선 좋은 개발자를 쉽게 뽑을 수 있다. 최신의 트렌드도 바로 옆에서 보면서 알 수 있다. 반면 인건비가 비싸다. 또 최신 트렌드는 굳이 현지에 없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보고 알 수도 있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실리콘밸리보다 인건비가 훨씬 싸지만 그렇다고 인재들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
▷요즘 국내 스타트업 업계는 해외 진출이 이슈다.
“현지에 네트워크가 없는 사람이 무작정 찾아가서 사업을 펼친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특히 실리콘밸리는 창업부터 투자까지 긴밀하게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그런 연결점 없이 진출하면 큰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미국 진출을 생각한다면 미국 현지 네트워크에 소속돼 비즈니스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과 공동 창업하는 게 좋다.”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IT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까.
“한국 사람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할 때 빨리 잘 만들어 낸다. 대신 미국 시장에서 일을 해본 사람은 무엇을 만들면 세계적으로 통할지 감각적으로 안다. 그래서 한국에서 창업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콘셉트를 잘 잡을 수 있는 사람을 한국으로 데려 올 수 있다면 세계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빙글을 또 창업했는데.
“비키는 이용자들이 번역 자막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돈을 주지도 않는데 한 달에 2000만명이 사용했고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자막을 만들었다. 팬으로서의 열정,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뭔가를 좋아할 때 엄청난 힘이 생기는 걸 보면서 이 분야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비키가 콘텐츠를 사오는 구조였다면 빙글은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음식 패션 스포츠 사진 등 관심사별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또 동영상에 국한된 비키와 달리 빙글이 다루는 콘텐츠에는 제한이 없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 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나.
“아직 성에 차질 않는다. 게임을 할 때도 레벨업을 계속 해나가지 않나. 그것처럼 우리도 빙글을 통해 다음 단계를 깨보고 싶다. ‘이제 트위터를 뛰어넘는 그런 회사를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빙글의 목표는.
“‘관심사로 세상을 잇는다’가 빙글의 모토다. 관계를 단순하게 확장하는 게 아니라 관심사를 기반으로 인간관계의 새로운 차원을 형성하고 싶다. 현재 이용자는 웹에서 90만명, 모바일 앱에서는 10만명으로 사람 수로는 9 대 1인데, 콘텐츠 소비 패턴은 1 대 1이 될 정도로 모바일 유저들이 더 자주, 열심히 쓰고 있다.”
호창성·문지원 부부는
부산 출신 부부 벤처기업인. 호창성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93학번, 문지원 대표는 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 94학번이다.
두 사람은 1994년 고향인 부산에서 열린 대학 연합동아리 MT에서 처음 만나 2000년 함께 첫 창업에 도전했다. 3차원(3D) 아바타를 만들어주는 사업이었지만 벤처 붐이 사그라지면서 1억원이 넘는 빚을 지고 실패했다.
사업을 그만두고 일반 기업에 취직했지만 창업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2000년대 중반 결혼해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창업에 다시 나서기 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자고 결심했다. 아내인 문 대표가 먼저 하버드대로 유학을 떠났고, 이어 호 대표가 스탠퍼드대 MBA로 유학길에 올랐다. 이들은 2007년 동영상 자막 서비스업체 비키를 창업했다. 최근 비키를 일본 라쿠텐에 2억달러에 팔아 지분 50% 이상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1000억원이 넘는 거금을 손에 쥐게 됐다.
임원기/임근호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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