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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신흥국' 인도를 가다] 서민 보조금만 年 53조원…절반은 부패 관료·정치인 주머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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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제 좀먹는 포퓰리즘·부패

의무고용'유토피아'
기업에 짐꾼 수십명씩 '할당'…건물 공사때 굴삭기 제한…인건비 부담 늘고 효율성 뚝

보조금 중간에서 '증발'
전철 등 SOC사업 중단 빈번…재정적자 더욱 악화시켜




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주(州) 푸네 인근의 란장가온 공업단지. 이곳의 공장들에는 ‘마타디(Mathadi)’라고 불리는 인력이 있다. 힌디어로 머리라는 뜻의 ‘마타(matha)’에서 유래한 것으로 머리나 등을 이용한 막노동 짐꾼 인력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 마타디는 주정부가 하층민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각 기업에 의무적으로 할당한 인력이다.

란장가온에 진출해 있는 LG전자 생산공장은 90명의 마타디를 쓰고 있다. 컨테이너 차량 등에서 짐을 내릴 때 이들이 전담한다. 다른 작업은 하지 않는다. 비용은 차량 한 대당 500루피. 한 달에 평균 6000대 안팎의 차량이 오가는 상황을 고려하면 인건비는 대략 300만루피(약 5000만원)다. 어차피 현장 근로자들이 짬을 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상당 부분 추가 비용이 드는 셈이다. 지난 4일 현지에서 만난 성보경 LG전자 법인장은 “한국에서라면 차량이 도착할 때마다 작업장의 현장인력을 동원해 처리하면 될 일을 굳이 마타디를 써야 하기 때문에 효율이 떨어지고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정부·기업 곳곳에 의무고용 만연

마하라슈트라주가 1969년 법을 제정한 이래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마타디는 인도 사회에 뿌리 깊은 포퓰리즘의 한 전형이다. 심지어 건물을 지을 때 지하 공사는 굴착기 사용을 금지하고 반드시 특정 인력이 담당하도록 규제하는 주정부도 있다.

인도에는 ‘리저베이션(reservation·할당제)’이라는 고용 보장 프로그램도 있다. 정부 부처나 공기업, 국립대학 등에 ‘불가촉천민’ 출신 인력을 15% 정도 의무 고용 또는 입학시키도록 특례를 부여하는 제도다. 불가촉천민은 인도 특유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에 따른 것으로 수드라(농민·노동자)와 더불어 하층계급에 속한 집단이다.

헌법 조항에까지 명시된 리저베이션 제도는 영국 식민지 시절 가장 착취를 많이 당한 불가촉천민을 배려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본 생계는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의 통치 이념에 따른 것이다. 인도 특유의 ‘다가가고 배려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지만, 한편으론 인도의 발전을 저해하는 포퓰리즘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인도에 있는 글로벌 투자자문사 맥스틴의 이건준 공동대표는 “의무고용이다 보니 실력과 무관하게 채용돼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리저베이션을 활용하는 사례까지 나타나면서 사회 발전이나 경제 성장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조금 천국…예산 부족에 허덕
보조금 제도는 인도의 또 다른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정부가 식량, 연료, 비료 등에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보조금 제도를 남발하면서 인도의 재정적자를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루피화 가치 하락과 국내총생산(GDP)의 5%를 웃도는 재정적자 등으로 인도가 자칫 구제금융을 신청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는 와중에, 최근 국회를 통과한 식량안전법(푸드빌·food security bill)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체 인구 12억명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8억명을 대상으로 한 이 법이 시행되면 연간 식량 보조금 지출액은 160억달러에서 200억달러(약 22조3000억원)로 늘어나게 된다.

이 법안을 둘러싸고 이른바 ‘웰페어(welfare·복지)인가, 아니면 인도 성장에 고하는 페어웰(farewell·작별)인가’(이코노믹타임스 8월27일자)에 대한 논쟁도 다시 불붙고 있다. 델리에서 만난 아툴 션굴루 인도 경제인연합회(FICCI) 사무총장은 “푸드빌 법안은 재정적자를 심화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어 루피화 가치를 더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식량 보조금과 함께 연료·비료 보조비 규모도 상당하다. 인도 중앙은행에 따르면 2012회계연도 보조금 규모는 연료, 비료, 식량 부문 등을 합쳐 GDP의 총 2.7%에 달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492억달러(약 53조원)에 이른다. 보조금 운용과정에서 금액도 자꾸 늘어나는 추세다. 2012회계연도 연료 보조금의 경우 당초 예상은 4358억루피였으나 결국 2.2배 늘어난 9688억루피가 집행됐다.

○총선 앞두고 정치권 포퓰리즘 기승

정부나 정치권의 시선은 이미 내년 5월 총선을 향하고 있다. 표심의 달콤한 유혹을 차마 외면하기 어려워서다. 특히 하층민을 지지 기반으로 한 집권세력인 국민회의당이 이끄는 통합진보연합(UPA)이 일자리, 주택 분야의 환심성 지원 정책을 적극 펼치는 모양새다. 제1야당인 인도인민당(BJP)도 최근 양파를 시중가보다 30% 싸게 판매하는 등 맞불작전을 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각종 보조금이 실제 국민들의 손에 쥐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의 보조금은 운영 과정에서 줄잡아 50%가량이 부패한 정치권과 관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반면 예산이 보조금에 투입되며 정작 필요한 사회간접시설 투자는 늦춰지고 있다.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도로 사정이 열악해 농작물의 40%가 운송 과정에서 썩어 버려지는 것이 인도의 현주소다. 인도에서 자금이 가장 풍부한 금융도시인 뭄바이에서도 최근 모노레일 공사가 중단됐다. 지난해 말 완료 예정인 지상운행용 중전철 공사는 1년 이상 개통시기가 연기됐다. 뭄바이에서 만난 비제 칼란트리 인도 세계무역센터 부의장은 “인프라 개발은 인도 경제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자본과 예산 부족, 각종 부패로 철도 개발 등 많은 프로젝트가 멈춰서 있다”며 “정부가 하루속히 경제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델리·뭄바이·푸네=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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