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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竹)'잇는 구찌 뱀부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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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스타일

1947년 물자부족 속에 고육지책으로 사용한 대나무
구찌의 장인정신 입고 '브랜드 아이콘'으로 재탄생



탄생 66년
'0633' 모델번호로 첫 출시…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 등
당대 최고 여배우·로열 패밀리가 애용

장인의 손길
탄력 뛰어난 대나무 뿌리만 사용…140조각 수작업으로 13시간 가공
한정판 '뉴 뱀부백' 2500만원에 판매…내달 7일까지 청담동 매장서 전시회


이탈리아 명품 구찌에는 멀리서 봐도 금방 눈에 띄는 고유의 디자인이 있다. 큼지막한 ‘GG’ 로고와 초록·빨강·초록이 이어지는 줄무늬 ‘GRG 웹’이 구찌의 대표적 상징이다. 구찌를 다른 명품 브랜드와 차별화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구찌의 아이콘인 ‘뱀부백(bamboo bag)’이다. 뱀부는 영어로 대나무를 말한다. 뱀부백은 손잡이를 진짜 대나무로 만든 핸드백. 워낙 독창적인 방식이어서 탄생 66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브랜드들은 따라할 엄두조차 못 낸다.

●뱀부백 ‘출생의 비밀’

구찌의 역사는 1921년 구초 구찌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매장을 열면서 시작됐다. 뱀부백이 처음 나온 건 1947년. 사실 대나무는 구찌가 ‘자발적으로’ 도입한 소재는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이탈리아는 경제제재 탓에 외국에서 물자를 제대로 공급받을 수 없었다. 모든 산업에서 물자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패션업체 역시 자재를 못 구해 생산을 중단하는 곳이 수두룩했다. 창업자 구찌의 큰아들 알도 구찌는 당시 유일하게 수입할 수 있었던 ‘일본산 대나무’를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나무에 열을 가해 부드럽게 만든 다음 반원 모양으로 구부려 가방 손잡이로 쓴 것. 전쟁 이후 물자 부족이라는 위기를 창조적 디자인의 기회로 반전시킨 셈이다.

뱀부백은 그해 ‘0633’이라는 모델번호로 처음 출시된 이후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로열 패밀리로부터 사랑받았다.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 파올라 벨기에 여왕,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 등이 뱀부백을 즐겨 들었다. 프레데리카 그리스 왕비는 보석 케이스가 포함된 뱀부백 세트를 한번에 12개나 주문할 정도로 마니아였다고 한다.

●나무 뿌리부터 장인이 엄선

초창기 뱀부백은 일본 대나무를 썼지만 지금은 중국 저장성에서 재배한 대나무를 쓴다. 대나무에서 줄기가 아닌 뿌리 부분만 쓰는 점이 특징이다. 마디가 몰려 있어 무늬가 아름답고, 견고하면서도 탄력이 뛰어나다는 이유에서다.

생명력이 강한 대나무는 뿌리가 잠시 손상돼도 계속 자란다. 이 때문에 방대한 양의 뱀부백을 만들더라도 숲은 훼손되지 않는다. 뱀부백은 그 자체로 명품이지만,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착한 가방’이라는 점 역시 구찌의 자랑이다. 뱀부백은 핵심 원재료인 대나무와 돼지가죽을 선별하는 것부터 세척, 재단, 염색, 조립, 바느질까지 이탈리아 장인의 100% 수작업을 거쳐 탄생한다. 숙련된 구찌 장인이 140조각의 재료를 활용해 뱀부백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평균 13시간이 걸린다. 수확한 뿌리 중 핸드백에 적합한 것은 40% 남짓. 불꽃을 쬐어 대나무를 부드럽게 만든 뒤 둥글게 구부리고, 작은 불꽃으로 마치 붓질을 하듯 그을리며 색을 입혀 나간다.손잡이는 피부에 직접 닿기 때문에 광택을 낼 때 화학약품을 절대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구찌의 명성을 상징한다

구찌는 초창기 ‘오리지널 뱀부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상품을 다양하게 내놓고 있다. 2010년 나온 ‘뉴 뱀부백’은 뱀부백 고유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크기를 넉넉하게 키웠다. 가방 내부엔 거울과 주머니를 달아 실용성을 높였다.지난해 3월에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프리다 잔니니가 한국 소비자를 위해 딱 한 점만 제작한 한정판 뉴 뱀부백을 선보이기도 했다. 악어가죽을 쓴 베이지색 핸드백으로 2500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출시 첫날 바로 팔려 화제를 모았다.

올 들어서는 시크한 도회적 감성을 담아낸 ‘뱀부 쇼퍼’와 여성미를 강조한 ‘레이디 락’을 내놨다. 뱀부 쇼퍼는 가방 크기에 따라 260만~290만원대, 레이디 락은 소재에 따라 280만~550만원대에 팔리고 있다.이 회사는 대나무라는 소재를 뱀부백뿐 아니라 여러 제품에 다양하게 접목했다. 우산 손잡이, 시곗줄, 벨트 버클, 스틸레토 힐(굽이 송곳처럼 뾰족하고 높은 구두)의 굽 등 구찌만의 ‘뱀부 스타일’이 곳곳에 숨어 있다.

구찌는 30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서울 청담동 구찌 매장에서 뱀부백의 역사를 소개하는 ‘뱀부 스페셜 아카이브 디스플레이’ 전시회를 연다. 1950~1970년대에 만든 초창기 뱀부백 10점을 이탈리아 피렌체의 구찌 박물관에서 공수해왔다. 뉴 뱀부, 뱀부 쇼퍼, 레이디 락 등 최근 출시된 제품도 함께 전시돼 뱀부백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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