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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2500억 국민 혈세' 낭비한 정부의 시장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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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다시 통폐합되는 산업은행의 교훈

산업은행과 산은금융지주, 정책금융공사가 하나로 합쳐진 ‘통합 산업은행(산은)’이 내년 7월 출범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0월 산은에서 독립한 정책금융공사는 5년 만에 다시 산은에 통합될 처지가 됐다. 금융위원회는 2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올 정기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내년 7월1일 통합 산은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8월28일 한국경제신문

# 산업자금 조달 통로 역할

대학에서 경제학원론 교재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맨큐의 경제학’은 경제학의 10대 원리로 시작한다. 이 10대 원리 가운데 6번째가 ‘일반적으로 시장이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좋은 수단이다(Markets are usually a good way to organize economic activity)이고 이어 바로 그 다음이 ‘경우에 따라 정부가 시장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Government can sometimes improve market outcomes)’는 것이다. 시장이 실패하면 ‘경우에 따라선’ 정부의 개입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이 항상, 그리고 장기간 성과를 내는 건 결코 아니다.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오히려 민간의 창의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정부의 이번 산업은행 조직 재통폐합 결정도 정부의 시장개입이 얼마나 많은 낭비를 낳고 비효율적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산업은행은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라 1954년 설립된 특수법인이다.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순수 정부 은행이기도 하다.

정부가 한국전쟁 후 산업은행을 세운 것은 정부의 신용을 바탕으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으며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얻을 만한 곳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정부가 산업 자금 조달을 전문으로 하는 은행을 만들고, 이 은행을 통해 주요 산업자금을 조달하고 관리하게 된 것이다.

산업은행은 정부의 경제 개발 정책에 맞춰 주로 사회간접자본(SOC)의 형성과 중화학공업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장기성 자본을 융통해 주는 데 주력했다. 필요한 자금은 산업금융채권이라는 공채를 발행하거나 외국에서 빌려 조달했다.

이렇게 산업자본 조달에 큰 역할을 했던 산업은행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금융산업이 발달하면서 그 역할이 점차 축소됐다. 그래서 2008년 주인을 민간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하면서 그 사전작업으로 2009년 산은금융지주회사(산은지주)와 한국정책금융공사로 분할됐고 산업은행은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정책금융 업무는 정책금융공사로 이관됐다. 대신 산업은행은 일반 시중은행처럼 기업금융과 투자금융, 국제금융, 기업 구조조정 및 컨설팅, 수신 및 개인금융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 돌고 돌아 다시 합친 산은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은 이렇게 분리한 산업은행과 산은지주, 정책금융공사를 다시 하나로 합쳐 5년 만에 다시 예전대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통합 산은’은 산업은행이 지금까지 해온 역할에 정책금융공사로부터 벤처투자 등의 업무를 넘겨받아 국내의 정책금융을 총괄하게 된다. 국내 기업들의 개도국 수출지원과 중장기·대규모 해외건설 및 플랜트 지원 등 대외 정책금융은 현행대로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맡게 된다. 수출입은행은 정책금융공사가 해온 해외 업무(대출 및 투자 약 2조원)도 넘겨받는다. 또 산은 민영화는 중단되는 대신 자회사인 KDB캐피탈, KDB자산운용, KDB생명은 매각된다. 산은 자회사인 대우증권은 매각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의 이번 통합 산은 설립 방침은 세계적인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하겠다며 야심차게 추진됐던 산업은행 민영화가 실패였음을 자인한 것이다. 재통합의 이유는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기관이 분산되고 기능이 중복돼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구상했던 핵심 금융정책 중 하나였다. 산업은행을 민영화해 글로벌 IB로 키우고, 산업은행을 기업공개해 얻게 되는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중소기업 지원에 써 일석이조를 노리겠다는 정책이었다. 당시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주도했다. 이 전 부위원장은 2008년 6월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을 발표하며 “산업은행이 정책금융 기능을 주로 맡았지만 여건만 마련된다면 국제적인 투자은행으로 도약할 자질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민영화를 하려다 보니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살릴 필요가 있었다. 이게 정책금융공사를 따로 설립한 이유다. 2009년 4월 진통 끝에 산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정책금융공사법이 공포됐다. 그해 10월 공사가 설립됐다.

산업은행을 두 개의 조직으로 분리했지만 상황은 당초 생각과 다르게 돌아갔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계기로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산업은행 기업공개 일정이 자꾸만 미뤄졌다. 정책금융공사는 공사대로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산업은행 민영화가 늦어지면서 정책금융을 산업은행도 하고 정책금융공사도 하는 어정쩡한 ‘쌍둥이 체제’가 됐다. 이렇게 돌고 돌아 5년 만에 ‘도로 산은’이 된 것이다. 산은과 정책금융공사가 실제로 통합되려면 국회에서 관련법이 처리돼야 한다. 금융위는 산은법 전부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회 통과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 2500억 세금낭비 책임 누가?

남겨진 건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청구서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그동안 전산망 구축, 지점 설치 등에 쓴 돈은 최소 2500억원이다. 두 기관이 4년간 독자 생존을 모색하면서 늘어난 직원 수도 790여명에 이른다. 쪼갰다 붙였다를 반복하며 생긴 비효율과 갈등에 따른 비용은 셈하기도 어렵다. 5년 동안 이렇게 많은 세금을 허비하고도 책임을 지는 이들은 없다.

국내 제조업에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뼈아픈 구조조정을 거친 후 세계적인 기업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한국 금융산업은 IMF 위기 와중에 168조원이 넘는 혈세까지 지원받았는데도 세계적인 은행 하나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은행들을 손에 쥐고 경영을 쥐락펴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처럼 아무 원칙도 기준도 없이 은행을 뗐다 붙였다 하고 있으니 금융산업이 삼류(三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넘었으나 아직도 많은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공석이거나 이명박 정부 사람들이 그대로 지키고 있다. 이 중에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그대로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바뀔 것으로 예상되던 기관장들인데 재신임 등 특별한 조치 없이 어정쩡한 상태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력대란 우려로 국민들의 걱정을 한몸에 받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균섭 전 사장이 지난 6월 사임한 이후 사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올여름을 보내고 있다. 3개월째 사장이 공석인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서부발전, 남동발전 등도 사장 인선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또 대한석탄공사 등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 해임 건의나 경고를 받은 공기업 수장들도 대부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사장도 빈자리인 채로 남아있다. 박근혜 대통령계 측근 정치인이 내정됐다는 설이 나오면서 인선이 중단된 한국거래소도 2개월 가까이 공석이다. 신용보증기금, 코스콤 등 금융 공기업들도 경영공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많은 공기업들이 지난해 대선전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공기업 임직원이라도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우리 회사와 내 자리가 어찌될지 정치권과 정부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이러고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할 것인가.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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