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정부, 현대차에 제의
"이렇게 힘든 시기에 파업이 말이 되나…"
현대·기아자동차 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가운데 네이선 딜 미국 조지아 주지사가 지난 21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나 미국 공장 증설을 요청했다. 10월에는 앨라배마 로버트 벤틀리 주지사도 정 회장을 찾아 공장 증설을 요청할 예정이다. 현대·기아차는 아직까지 미국 공장 증설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노조 파업으로 국내 공장의 생산 차질이 계속되면서 내부적으로 미국 공장 증설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지난 21일 딜 주지사가 서울시내 호텔에서 정 회장과 비공개 면담을 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딜 주지사는 현대·기아차가 미국 현지에서 물량 부족을 겪고 있는데 공장을 증설하면 필요한 부지와 자금 등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며 “우리가 노조 파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들어 미국 공장 증설 필요성을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공장 증설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만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딜 주지사에 이어 10월에는 로버트 벤틀리 앨라배마 주지사가 정 회장을 만나 투자 유치에 나설 예정이다.
미국 주정부들의 잇따른 러브콜은 최근 현대·기아차 노조 파업과 무관치 않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분석이다. 노조 파업으로 현대·기아차가 생산 물량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점을 투자 유치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 현대·기아차는 작년부터 미국 현지에서 공급 물량 부족을 겪어왔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미국 판매량은 126만대. 연간 35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차 조지아 공장을 110% 가동해 72만대까지 생산하고 있지만 물량이 달려 54만대는 한국 공장 생산 물량으로 충당해 왔다. 올해도 앨라배마·조지아 공장 생산량을 74만대로 높였지만 연간 판매목표(130만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56만대를 공급받아야 한다.
문제는 노조의 주말특근 거부와 파업으로 한국 공장 생산이 차질을 빚는 데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5~6월 노조의 주말특근 거부로 8만3000여대의 생산 차질을 입었다. 또 지난 20~21일 현대·기아차 노조가 부분 파업을 벌이면서 5400여대의 차량을 생산하지 못했다. 그룹 관계자는 “가급적이면 해외보다 국내에 공장을 짓는다는 게 우리 방침이지만, 노조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반복된다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국토교통부 주최로 열린 ‘자동차 및 부품업계 CEO 간담회’에서도 현대·기아차 노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정진행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은 “현재 자동차 시장이 안팎으로 엄청나게 힘든 시기인데 파업이 말이 되느냐”며 “(노조가) 이제 파업을 그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부품 업체인 대원강업 허성호 부회장도 “아직은 파업 초기라 괜찮지만 파업이 장기화돼 생산 차질이 커지면 부품업체들이 힘들어진다”고 노조의 파업 중단을 촉구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도 “올해 7월까지 완성차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6.6% 감소했고, 세계 자동차 시장 성장률이 급락할 전망”이라며 “노사가 합리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명/최진석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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