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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법 시행땐 건당 등록에만 9개월…신제품 개발 사실상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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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법 "산업계 다 죽인다"

물질 개발때마다 등록…비용 '눈덩이'
정보제공 의무화로 외국기업 철수 우려
유럽, 법 시행 후 중소업체 수천곳 폐업




2015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에 대한 산업계의 우려가 크다.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이 아직은 정해지지 않아 피해 수준을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원안대로 그대로 시행되면 화학물질을 다루는 영세 업체들은 줄줄이 도산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가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연구개발 기간 길어진다”

지난 5월 개정된 화평법은 ‘화학물질 등록과 평가에 관한 기준’을 유럽의 화평법 수준으로 높인 것이 골자다.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위해성 여부를 분석·평가한 뒤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고 등록하도록 의무화한 법이다. 화학물질이 위해 물질로 판정이 나면 기업은 해당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 없고 대체물질을 써야 한다.

산업계가 개정 화평법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조사·연구개발 목적의 화학물질 등록 면제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유해법)에는 연구개발 목적으로 화학물질을 사용했다는 것을 기업이나 연구소가 증명하면 별도로 등록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개정 화평법에는 이 면제조항이 없어졌다. 등록 절차를 거치려면 연구개발 기간이 그만큼 길어진다.

업계는 화학물질 등록을 위해 건당 6~9개월 정도 소요되고, 평균 70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추정한다. 화학물질을 많이 다루는 전자재료 업계와 화학업계는 신규 화학물질을 개발할 때마다 비용과 시간을 그만큼 더 들여야 한다.

박춘근 다우케미칼 디스플레이분야 글로벌 총괄사장은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등에 전자재료를 납품하는 회사들은 제품개발을 마친 뒤 수십 차례 테스트를 거쳐 최종 제품을 생산한다”며 “화평법이 시행되면 단계별로 일일이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개발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며 “국가경쟁력 저하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영세업체 300~500개 도산할 것”

두 번째 문제는 연간 100㎏(0.1t)까지 등록을 면제해주던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첨가제 등 소량의 화학제품까지 일일이 등록해야 한다면 시장 규모가 작은 제품을 만드는 영세 기업들은 도산할 가능성이 크다.

잉크젯프린터의 잉크와 토너 등을 생산하는 알파켐의 조규오 대표는 “잉크젯 잉크는 10여가지 조성물이 들어가는데 이 중 1~2개는 해외에서 반드시 수입해야 한다”며 “외국기업이 화학물질 등록을 꺼리면 잉크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화평법 모델로 삼은 유럽은 연간 1t까지는 (등록을)면제해 줬는데도 법 시행 이후 수천개의 중소 재료업체들이 문을 닫았다”며 “한국도 300~500개 영세 업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물질의 정보제공을 의무화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화학물질을 다른 기업으로부터 사오거나 수입하는 경우 이를 팔았거나 수출한 기업이 요구할 때 사용량과 판매량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부분을 업계는 특히 우려한다.

박 사장은 “외국기업 중에서 영업비밀을 공개하면서까지 제품을 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진출한 상당수 외국 전자재료 업체가 철수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제단체 법개정 촉구

대한상의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공동으로 화평법 개정 건의문을 국회와 정부에 두 차례 보냈다.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화학물질을 엄격하게 관리하자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규정이 지나치게 엄격해 산업계가 따라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예외조항을 둬 유연하게 법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대다수 기업이 개정된 화평법의 내용이 자신들에게 해당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중견 가구업체 임원은 “가구 제작에 화학물질이 일부 들어가는데 소량이라도 등록을 해야 하는 것이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재계 단체 실무 담당자들과 만나 화평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계속 취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재광/박수진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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