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주변이 온통 지뢰밭이다. 유럽발 재정위기론이 조용하다 싶으면 중국발 긴축론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주택경기가 살아나면서 훈풍이 돈다 싶더니 곧바로 출구전략 얘기가 돈다. 경기가 당장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08년과 같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10년 내 2~3차례 더 있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돌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 3%를 포함해 올해 2.7%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2.0%)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정부 전망은 경제 주체들의 심리요인도 감안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하반기 경영환경 전망을 최근 조사한 결과 기업들은 현 경제 상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45.1%)하거나 더 심각하다(31.8%)고 답했다.
“경제지표는 수치에 불과”
중소기업들은 최근 경영상황을 ‘지난해보다 어렵다’(75.4%)고 보고 있다. 내년 경기에 대해서도 절반 이상이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51.2%)이라고 답했다.
각종 경제지표 발표치들은 이런 우울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생산 소비 투자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모두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불안과 우려들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기업들도 있다. ‘위기는 곧 성장의 기회’로 보고 ‘역발상 공격경영’을 펼치는 기업들이다.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식품가공업체 동양종합식품은 올 들어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20억원을 투자해 육가공냉동식품 생산라인을 자동화했다. 독일에서 새로 닭튀김기계 등을 도입하고 있는 것. 20억원은 이 회사 지난해 매출(210억원)의 10%에 달하는 금액이다.
강상훈 동양종합식품 회장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좀 떨어졌고 경기도 좋지 않아 투자를 말리는 분들이 많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놓아야 경기가 살아날 때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가구업체
한샘은 최근 경기 위축이 무색할 정도로 유통망을 확대하고 있다. 서울 방배, 논현, 잠실, 경기 분당에 이어 부산센텀시티에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가구 전시장으로 꾸민 ‘한샘 플래그샵 부산 센텀점’을 열었다. 고급 주방가구 브랜드인 ‘키친바흐’ 매장과 인테리어 가구 대리점 규모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종합 아웃도어 업체인 세이프무역은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자사 브랜드 ‘투스카로라’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중국 옌지시에 첫 매장을 열었고 베이징 등 대도시에도 추가로 매장을 낼 예정이다.
종합 아웃도어 업체 세이프무역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진화하는 회사다. 1996년 소규모 캠핑용품 업체에서 시작해 의류, 신발, 배낭 등 아웃도어 제품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앞으로 육상 제품 등 스포츠 제품 영역까지 넘볼 계획이다.
판매 경로도 다양화하고 있다. 대형마트 위주에서 홈쇼핑과 직영점 및 대리점 등으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 회사 매출은 2010년 148억원, 2011년 218억원, 2012년 280억원 등 최근 3년간 연평균 40% 넘게 증가했다. 올해는 37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태국 세이프무역 사장은 “앞으로 5년 안에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격변기 활용하는 기업이 승자”
중밀도섬유판(MDF)과 마루제품 등을 만드는
한솔홈데코는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20%가량 높게 잡았다. 건자재업계 매출이 건설시장 위축으로 대부분 뒷걸음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고명호 한솔홈데코 사장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중밀도섬유판으로 올렸는데 올해는 마루와 인테리어 자재의 매출을 더 늘려나갈 생각”이라며 “현재 수십종의 신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색조화장품으로 유명한 라미화장품은 관계사인 한생화장품과의 시너지를 통해 화장품 시장에서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각오다. 중소 화장품업체들의 수명은 평균 3~5년. 업체 난립으로 인한 출혈경쟁 때문이다.
라미화장품은 색조 화장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고 한생화장품은 기초 화장품 분야에서 비교 우위를 갖고 있다. 두 회사의 강점을 합하고 관계사인 피부관리 프랜차이즈 기업 ‘레드클럽’과 연계할 경우 화장품 생산에서부터 소비자와의 접점에 이르는 완벽한 유통라인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레드클럽을 통해 두 회사 제품을 사용해 소비자들의 반응을 즉각 체크하고 요구사항을 반영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시너지가 될 것으로 회사 측은 강조했다. 박혜린 라미화장품 대표는 “화장품 시장은 더이상 똑같은 제품을 일방적으로 공급하듯 팔기만 해선 경쟁할 수 없다”며 “사용자 각각의 피부 상태를 체크하고 이에 맞는 화장품과 피부관리법을 제시해주는 고객 맞춤형 플랫폼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컨설팅업체인 배인&컴퍼니의 이성용 한국대표(부사장)는 “보통 상황에서는 3, 4위 기업이 시장 1위 기업을 추월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경제 격변기에는 공격경영으로 업계 판도를 바꿀 수도 있다”며 “기회를 잘 활용하는 기업이 승자가 된다”고 강조했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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