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한탕 노린 뒤 눈치채기 전 해외 도주
30대, 재벌 2세 흉내…10대, 용돈벌이 옛말
수도권의 한 대학을 중퇴하고 직업 없이 지내던 백모씨(33). 자동차에 관심이 있던 그는 2010년 7월 자동차 동호회에 가입한 뒤 “아버지가 업계 2위 의류업체를 운영하는데 실장으로 일한다”며 자신을 명문대를 나온 재벌 2세라고 사칭하고 다녔다. 이곳에서 만난 여자친구 심모씨(29)와 고교동창 이모씨(35)에게 접근해 “회사 사정이 있어 그러니 자동차 대여료를 낼 돈을 빌려주면 해결되는 대로 갚겠다”고 속이고 고급 외제차 2대의 대여료 2억5000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
백씨는 자동차 동호회에서 알게 된 정모씨(35)와 여자 친구 심씨에게서 191차례에 걸쳐 1억1000여만원을 빌리고 돌려주지 않고 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단독(판사 최태영)은 이 같은 혐의(사기)로 기소된 백씨에게 19일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저지르는 사기 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기범의 범행동기가 연령대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과감화·지능화하는 10대들은 유흥비 마련을 위해, 사회에 갓 진출한 30대는 상류층 모방형 과시욕 충족을 위해 범행에 나서고 있다. 재기불능에 빠진 50대는 인생역전을 노리고 거액을 챙긴 뒤 잠적하는 막장형 사기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능화된 10대
10대 범죄는 어른 뺨칠 정도로 대담하고 지능화하고 있지만 동기는 단순하다. 대부분 갖고 싶은 물건을 사거나 여자친구와 놀기 위한 유흥비 마련을 위해서다. 치밀한 사전 계획이 필요한 보험사기에 빠져드는 10대들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10대는 1562명으로 2010년의 586명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의 보험사기는 용돈벌이를 뛰어넘었다. 지난 4월 서울 종로경찰서는 10대 23명이 가담한 교통사고 보험사기를 적발했다. 이들은 중앙선을 침범하는 택시와 접촉사고를 내거나, 택시를 탔던 공범이 차에서 내릴 때 일부러 부딪히는 수법으로 총 44회에 걸쳐 1억1230만원을 합의금과 보험금으로 뜯어냈다.
○재벌2세 사칭 30대
‘재벌 자제’를 사칭한 사기사건의 주범은 사회생활 초년생인 30대들이 많다. 동경해온 상류층 삶과 현실의 간극을 사기를 통해 잠시나마 좁혀보려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모그룹 부회장의 숨겨진 딸이라고 사칭하며 22억원을 가로챘다 지난 11일 충남지방경찰청에 잡힌 30대 사기녀 이모씨(31)도 대학 졸업 뒤 대전의 한 백화점에서 2004~2005년 여성옷을 팔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백화점 VIP 고객을 만나며 상류층 삶을 동경하면서 씀씀이가 헤퍼진 그는 2005년 퇴사 후 지인들에게서 500만~1000만원을 의외로 쉽게 빌려주는 데 힌트를 얻어 사기행각에 나서게 된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30대는 사회적 출세에 당한 욕망과 갈망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 자체는 제한돼 있다 보니 사기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잃을 게 없는 50대
사기를 벌이다 잠적하거나 도주한 40~50대 사기범들은 대개 사업을 벌이거나 도박을 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갚기 힘든 큰 빚을 진 경우가 많다. 빚을 갚아 나가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해결 수단으로 사기를 택하게 된다는 게 일선 경찰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박종권 마포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은 “30대 초반 범죄자들을 보면 다단계 사기로 잡힌 친구들이 많은데 좋은 양복 입고 외제차 타기 위해서라고 털어놓는다”며 “50대 이상에서는 사회적 관계를 이용해 건실한 사업가로 자신을 꾸민 뒤 한탕하는 경향이 많다”고 설명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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