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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종준 하나은행장 "행원 절반과 셀카 찍은 사이…저만의 소통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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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공부보다 봉사에 꽂혀…지금은 국제봉사단체 한국 회장
쭉 이익 낼 구조 만드는게 중요…취임하자마자 ‘허수 영업’ 금지령
금융의 본질은 원칙 지키는 것…"이상 없겠지" 하면 100% 사고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게 즐거워 금융인을 천직으로 생각했다는 김 행장. 취임 후 곧바로 현장경영에 나서 1년반만에 전국 지점 90%를 방문했다. 지난해 10월에는 2박3일간 당진, 서산, 태안, 홍성, 예산, 서천, 순천, 거제, 영주, 강릉 영업점을 도는 1500㎞ 강행군. 현장에 가지 않으면 답이 안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취임 6개월여 만인 지난해 10월, 2박3일간 1500㎞를 누볐다. 당진 서산 태안 홍성 예산 서천 순천 거제 영주 강릉에 있는 영업점들을 한 번에 도는 강행군이었다. 현장에 가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행장은 영업점 방문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는다. 행장이 온다고 알려지면 쓸데없는 준비를 많이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은행장에게 잘 보이려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직원들이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했다.

1년에 은행장 얼굴 한 번 보기가 힘든 일선 점포의 직원들은 오전 9시 영업 개시 전에 김밥을 사들고 불쑥 찾아오는 은행장이 놀랍기만 하다. 김 행장은 직원 한 명, 한 명의 얘기를 다 듣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떠나기 전에는 직원들과 돌아가며 ‘셀카’를 찍는다. 휴대폰에 은행장과 같이 찍은 사진을 갖고 있는 직원이 절반에 가깝다. 김 행장은 취임 후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전국 647개 점포의 약 90%인 580여곳을 직접 방문했다. 매일 1~2곳의 점포를 찾은 셈이다.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직원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리더십의 원동력이 궁금했다. 김 행장의 단골집인 서울 인사동 한정식집 ‘시화담’에서 최근 그를 만났다. 식당이라기보다는 갤러리에 가까울 정도로 인테리어가 깔끔했다.

◆쓰러져도 학교에서 쓰러지라던 아버지

“음식 맛만 있어선 부족해요. 이젠 맛에도 스토리를 담아야 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 행장이 꺼낸 얘기다.

첫 메뉴로 식당에서 직접 말린 갖가지 과일과 우엉, 연근으로 만든 과자가 담긴 ‘건강 주전부리’가 나왔다. 단원 김홍도의 ‘새참’ 그림을 슈가 파우더로 그려 넣은 도자기 그릇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전부리를 새참처럼 식사 중간 먹으라는 주인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김 행장은 수삼을 탄 건강 동동주를 한 잔 권하며 어린 시절 얘기부터 풀어 놓았다.

“초등학생 때 밤새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께서 한숨도 안 주무시고 간호를 해주셨죠. 그런데 아침엔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며 내보내셨어요. 학생은 죽더라도 학교에서 죽어야 한다고 하셨죠.” 아버지로부터 책임감이란 과연 무엇인지 처음으로 느꼈다고 했다.

때마침 식당 안에 울려퍼진 해금 소리가 음식 맛을 더 북돋았다. 입은 물론 눈과 귀까지 동시에 즐겁게 만드는 식당의 매력에 김 행장이 반했던 모양이다.

김 행장의 첫 시련은 중학교 진학 때 찾아왔다고 한다. 당시 한 명문 중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원하지 않은 곳에 입학했다.

“어린 마음에 너무 창피해서 3년 내내 고개를 숙이고 다녔습니다.” 아버지의 서울 발령에 따라 경복고로 진학한 그는 재수 끝에 성균관대에 들어갔지만 공부는 여전히 뒷전이었다. 대신 봉사활동에 꽂혔다. 2학년 때부터 국제시민봉사회(전 세계 40여개 국가에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봉사단체)에서 활동했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그는 현재 한국지부의 회장을 맡고 있다.

◆목표 달성은 당연했고, 갈데까지 갔다.

이어 나온 음식의 이름은 ‘꽃을 사세요, 꽃을 사.’ 춘권피로 화분을 만들고, 당귀잎으로 꽃을 표현했다. 크림소스 파스타에 김치를 넣어 느끼한 맛을 줄인 ‘김치가 파스타를 만났을 때’가 함께 나왔다. 이 식당을 찾는 외국인들이 맛을 본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는 음식이란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월급이 많다는 이유’로 단자회사에 들어갔다.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이다. “솔직히 뚜렷한 꿈은 없었습니다. 그저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게 즐거웠어요.” 그런 그에게 한국투자금융은 최고의 직장이었다. 임직원 경조사 땐 180여명의 전 직원이 반드시 모이는 조직이었다고 한다. “같이 좋아하고, 같이 슬퍼할 줄 아는 조직이었습니다.”

수많은 고객을 만나야 하는 금융업은 그에게 천직이었다. “주어진 목표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목표 달성은 당연히 하는 것이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영업을 했죠.” 37세에 지점장이 된 그는 지점장 시절 최우수 영업점상을 놓치지 않았다.

김 행장은 1997년부터 3년간은 김승유 당시 하나은행장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이후 영업부장(2000년), 웰스매니지먼트본부장(2002년)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본부장 시절 그의 상대는 ‘부자 고객’. “은행원으로서 VIP 고객을 담당한다는 것은 매우 큰 행운입니다. 그런 고객들을 알아가는 게 그저 즐거워서 일을 했죠.”

그런 긍정의 마인드가 어디서 나왔는지 그에게 물었다. “선천적으로 심장에 문제가 있어요. 꾸준히 치료하다가 2년여 전에는 수술도 했고요. 어느 순간부터 그냥 병과 더불어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각하게 생각하면 하루도 못 살겠더라고요. 그렇게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기로 한 것이죠.”

◆하나캐피탈 알짜 자회사로 변신시켜

이어 나온 ‘밀이 익어가는 풍경’은 음식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김치로 뜨거운 태양을, 참깨를 뿌린 부추로 밀을, 구운 돼지고기와 마늘로 땅과 돌을 표현했다. 한동안 젓가락을 대지 못할 정도였다.

김 행장은 2009년 당시 부실 대출이 늘고 있던 하나캐피탈 사장으로 부임했다. 제대로 된 여신심사 없이 나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문제였다. “첫해 PF를 정리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다음해부터는 본연의 리스, 할부 위주로 개인금융을 늘렸어요.” 2009년 169억원의 적자를 냈던 하나캐피탈은 그의 마지막 임기였던 2011년 433억원의 흑자를 냈다.

조심스럽게 가족 얘기를 물었다. 김 행장이 동동주 한 잔을 마시더니 말을 꺼냈다. “집사람은 첫눈에 반해서 결혼했어요. 아주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사별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고 보니 모든 사람은 서로가 모르는 아픔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에 대한 시선이 더 따뜻해졌습니다.”

◆장기 성장 기반 닦는 게 진짜 CEO

식사 메뉴는 열무보리비빔밥. 두부 장인이 직접 만든 두부가 곁들여져 더 군침이 돌았다.

김 행장은 조직 내 평판과 경영 실적 등에 힘입어 지난해 은행장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는 취임 후 곧바로 ‘허수 영업’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허수영업이란 프로모션 기간에 주어진 목표 달성을 위해 직원 본인이나 가족, 친척 등을 동원해 실적을 채우고 프로모션 기간 종료 후 곧바로 가입을 해지하는 것을 말한다.

“은행이 자산을 늘리는 것은 굉장히 쉽습니다. 그냥 (대출 등) 지르면 되는 겁니다. 단기적으로 성과가 날지 모르겠으나 2~3년 뒤에는 반드시 문제가 됩니다.”

김 행장은 대신 수시입출금통장 등 원가가 적게 드는 ‘핵심 예금’을 늘리는 데 힘을 쏟았다. 지난해 6월 말 13조1000여억원 수준이었던 하나은행의 핵심 예금은 지난 6월 말 14조6000여억원으로 11%가량(약 1조5000억원) 늘었다. 저금리에 정기예금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큰 성과다.

은행장은 단기성과에 대한 부담이 큰 자리다. 재임 기간 중 당장 수익이 되지 않는 일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김 행장은 “주인 의식을 가지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진짜 주인이라면 향후 지속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죠. 장기 성장의 기반을 닦는 게 제 일입니다.”

◆금융의 본질은 ‘원칙’

그는 무엇을 금융업의 본질이라고 보고 있을까. 김 행장은 ‘원칙’이라고 답했다. “대개 사고가 나는 경우를 보면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상 없겠지’ 하면 100% (사고가) 터집니다. ”

남은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먼저 외환은행과의 통합 얘기를 꺼냈다. “중복 점포를 정리해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외환은행과 합치기 전에 점포를 없애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은행 점포를 없애면 거래 고객이 외환은행 점포로 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죠. 외환과 하나가 합치게 되면 정말 절묘한 조합이 될 수 있습니다. 가급적 빨리 통합할 수 있다면 좋죠.”


김종준 행장의 단골집 인사동 '시화담' 입과 눈과 귀가 즐거운 한정식…해금 전문가 연주도

모던 한정식 전문점. 식당 이름은 ‘시와 그림, 이야기가 있는 곳’이란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메뉴 이름도 단순히 음식 명칭이 아닌 의미를 담아 만들었다.

‘밀이 익어가는 풍경(돼지고기, 마늘, 김치, 부추를 이용해 밀이 익어가는 풍경을 접시에 그림으로 형상화)’ 등이 있다. 옥수수죽, 복숭아드레싱 등을 얹은 훈제오리, 차돌박이 초밥, 대하잣즙냉채, 살짝 삭힌 홍어 강정, 열무보리비빔밥 등이 코스 요리에 포함돼 있다. 단품은 1만~2만원, 코스는 점심 2만8000~7만7000원, 저녁 3만8000~7만7000원이다.

해금 전문가의 연주 소리를 들으며 수삼 등을 넣은 건강 동동주를 곁들이면 분위기가 절로 살아나는 맛집이다. 영업 시간은 낮 12시~오후 3시, 오후 6~10시. 인사동점(02-738-8855)과 이태원점(02-798-3311) 두 곳이 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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