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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Go! 열전 ③] '특목고 잡는 일반고' 공주 한일고… 휴대폰 없이 8명 한방 썼더니 SKY 입학 척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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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최상위 20개高 중 유일한 일반고… 영어·수학 실력 강자
교육철학 맞춰 '구체적 진로·비전 준비된 학생' 깐깐하게 선발



지금의 대입은 고입에서 결정됩니다. 어느 대학에 합격하느냐에 앞서 어떤 고교에 진학하느냐가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그러나 개별 고교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에 한경닷컴은 국내 유수 명문고들의 우수 커리큘럼과 다양한 교육과정을 소개하는 '명문Go! 열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일반계 고교뿐 아니라 자율형사립고 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 영재학교 등 다양한 학교에 대한 기사가 진로·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면사무소 앞을 지나는 국도 한 켠에 '공주 한일고' 표지석이 서 있었다. 학교가 안긴 뒷산은 예부터 아홉 정승이 나온다는 '구작(九爵)골' 지리로 유명하다. 눈앞에는 자그만 논밭과 개울이 펼쳐져 있고 학교 앞 이차선 도로에는 경운기가 지나갔다.

한일고는 10여 년 전부터 이미 '사교육 청정 학교'로 수차례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전국단위 선발, 학생 전원 기숙생활로 사교육 없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명문대에 많이 진학시키는 학교로 유명세를 탔다. 지난해 수능에서도 1~2등급 학생 비율 고교 상위 20곳 명단에 일반고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특목고·자사고와 '맞짱' 뜨는 일반고로 눈길을 끌었다.

한일고의 이런 성과에는 다양한 노하우가 있었다.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고 축구로 심신을 단련하는 생활과 8인1실 기숙사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원칙, 학부모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한 실질적 진로교육 프로그램 등 다채롭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특유의 깐깐한 학생 선발과정이 눈길을 끈다. 한일고에 입학하려면 설명회부터 집단·특별상담까지 몇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학생은 물론 학부모도 이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단순히 성적만 잣대로 삼는 게 아니다. 중학교 성적은 기본이고 중학생 수준을 뛰어넘는 구체적 진로계획, 한일고 진학에 대한 강한 의지 등을 평가한다.

◆ 꿈 뚜렷하고 구체적 계획 세운 '한일고 스타일' 학생 원한다

"기억에 남는 졸업생을 말해달라는 부탁에 원광대 의대에 진학한 학생을 얘기한 적 있습니다. 서울대 간 학생도 많은데 그 학생을 꼽은 건 꿈과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이었어요. 고교 입학 때부터 의대에 진학해 의료선교를 하겠다고 한 아이였죠."

한일고에서 입학상담 업무만 20년 넘게 맡아온 최용희 교감의 말이다. 학생의 지적 능력뿐 아니라 실천·행동능력 등을 중시하는 한일고의 인재상을 대변했다. 그는 "수능 한 두 문제 차이로 대학이 갈린다"며 "수능 한 문제 더 맞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구체적인 비전을 갖고 공부해 '사회와 국가를 위해 베풀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3학년인 김은탁 군은 입학 당시 인상적인 자기소개서를 써내 지금도 최 교감이 기억하고 있다. 김 군의 꿈은 스포츠 에이전트, 그리고 이후 이를 바탕으로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달성할 내용을 자세히 서술했다.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김 군은 학교의 축구리그 '한일 리그'를 꾸리는 데 앞장서고 정치외교동아리의 전국단위 기획 업무를 맡고 있다.

최 교감은 "선발과정에서 이런 구체성을 요구한다"며 "진지하게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학생은 입학해서도 생활이나 학습에 소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선발 과정에서 봉사와 인성, 독서체험, 지원 동기까지 꼼꼼히 살핀다. 최 교감은 "기숙사 공동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부모와 사교육 도움 없이 해낼 수 있을지도 많이 본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한일고는 단계별 입학 절차를 마련했다. 학교 측이 개최하는 입학설명회에 참석하는 게 우선. 설명회를 비롯한 각종 상담과 면담은 사전예약이 필수다. 설명회 참여 후에는 개인별 상담을 진행한다. 진학 의사가 확고한 수험생은 관리번호를 부여받아 각종 입학정보를 제공받는다. 상담은 7월 이전 기초상담, 8월 이후 중학교 3학년 성적과 제출서류를 토대로 성적을 산출하는 심화상담으로 나뉜다.

기자가 학교를 찾은 날도 방학이었지만 학교 설명과 상담을 원하는 학부모 문의 전화가 잇따랐다. 학교 관계자는 "설명회부터 집단·특별상담까지, 한일고에 입학하려면 부모들이 함께 와야 한다"며 "학생은 물론이고 학부모의 가치관이나 성향도 같이 살펴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한일고의 교육과 생활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막연히 입학을 원하는 경우 다른 학교 진학을 권하기도 한다"고도 했다.

◆ SKY 못지않게 경찰대 많이 합격하는 이유는?

한일고는 최근 2년간 입시에서 서울대 61명, 연세대 58명, 고려대 43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한해 재학생 160명의 절반이 이른바 'SKY'에 합격한 것이다. 의학계열 합격자도 2년간 81명(중복합격)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KAIST와 경찰대가 16명씩, 성균관대 13명, 서강대 9명, 한양대 4명 등 주요대학 합격자 비중이 높았다.

3학년 부장(진학부장) 박기운 교사는 "서울대는 수시모집에서도 꽤 합격한 편인데 연·고대 수시 합격자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며 "연·고대 수시 전형은 특목고 출신에 유리한 전형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수학생들이 몰려 아무래도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는데, 의대의 경우 수학·과학 논술문제에서 내신을 만회하고 합격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사가 꼽는 한일고 학생들의 강점은 영어·수학 실력이다. 수능 수준을 웃도는 높은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수학은 난이도 있는 문제를 수업과 학습동아리 시간을 통해 소화한다. 영어는 교과서가 아니라 해외 뉴스나 영자신문을 스크랩해 지문을 만들어 수업을 진행한다. 지문을 제시하면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과 국내외에 미치는 영향 등을 영어로 토론한다.

실제로 한일고는 국영수 실력을 가늠하는 2012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분석 결과, 특목고와 자사고를 모두 제치고 척도점수 평균에서 전국 1위에 올랐다. 또 하나의 잣대는 경찰대 합격자(1단계) 숫자다. SKY도 아닌 경찰대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삼은 이유가 있다. 경찰대 입시는 수능과 별도로 전형 단계에서 난이도 높은 국영수 시험을 치르기 때문이다.

박 교사는 "경찰대 1단계 합격자는 120명의 3배수를 선발하는데 2013학년도 39명, 2012학년도 33명 등 8년 연속 20명 이상을 배출했다"며 "특히 수학과 영어가 어려운 경찰대 시험에서 이정도 꾸준한 성적을 낸 학교는 한일고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높은 진학 실적 비결에 대해 "수능 준비를 위한 별도 프로그램은 없지만 우수학생들이 모여 있어 수업의 수준 자체가 높고 그 자체로 시너지를 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1학년 때부터 자기주도적 학습이 몸에 익어 방학 기간에도 90% 이상의 학생들이 기숙사에 남아 있는다"며 "우수학생들이 함께 더 열심히 하는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 호실 선후배 어울려 '끈끈해' 친구 부모님 조언하니 '탄탄해'

한일고 학생들이 공부만 하는 건 아니다. 경쟁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협력이 강조된다. 학교 관계자는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학생들이 입학하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구나',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란 생각을 하곤 한다"며 "내려놓는 걸 배우고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서로 도우며 공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사교육과 휴대전화가 사라진 학생들의 생활에는 같은 기숙사 방의 친구들이 들어왔다. 같은 호실을 쓰는 이른바 '침대 선후배' 사이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 이상으로 끈끈하다. 호실별로 학습동아리 활동, 체육대회를 벌이는 것도 친밀감을 높였다. 자연히 서로의 카운슬러나 멘토가 돼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진출한 후에도 힘이 돼준다는 전언이다.

학생들의 진로 교육에 친구 부모님을 초청하는 아이디어도 효과 만점이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진로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학부모 인재풀(pool)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실질적 진로 교육을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예컨대 의사인 학부모는 의대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기초의학의 중요성을 특강으로 가르치고, 물리학을 전공한 부모들은 그룹을 짜 진로 강의를 분담한다. 학부모의 지인을 불러 진로 교육을 의뢰하기도 한다. 해당 분야 전문가가 '친구 부모님'이란 친밀감 속에 생생한 현장의 얘기를 풀어 말해주니 학생들은 이해가 쉽고 호응도 높다.

최용희 교감은 "대학 교수, 의사 등 식자층 학부모 인재풀이 상당하다는 점에 착안해 진로 아카데미를 상설화 했다"며 "학생 선발과정에서 부모도 함께 보며 학교의 교육과정을 공유하다 보니 학부모들도 동질적 가치관을 갖고 학교 일을 돕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일고는 기존 전인교육 프로그램인 '화랑교육' 외에도 여러 교육실험을 시도할 계획이다. 고교 급에선 이례적으로 해외 고교와의 교환학생 제도 등 글로벌 프로그램을 마련할 생각이다. 또한 대학과도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인문학 강좌, 실험실습 등에 학생들을 참여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학교교육의 질과 다양성 확보가 목표다.

[일반고 살리기의 필요·충분조건]
독특한 모델 장려, 선발시기 조정으로 우수학생 확보해야

학교급 구분에 따르면 한일고는 일반고로 분류된다. 물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준화 일반고는 아니다. 소수정예로 운영하는 데다 전국에서 우수학생을 뽑을 수 있어 자원에서 차이가 확연히 난다. 일반고로 분류되지만 자사고, 특목고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이유다.

핵심은 우수학생 유치다. 일반고 모집시기를 전기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 현재는 특목고·자사고 등이 일반고에 앞서 전기에서 학생들을 모집해 우수학생을 뺏긴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입시업체 이투스청솔 오종운 평가이사는 "2014학년도부터 고교 내신이 절대평가(A-B-C-D-E) 방식으로 전환되면 대입에서 내신 영향력이 낮아져 특목고와 자사고에 우수학생이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특목고·자사고에 입학해도 크게 내신 불이익을 우려할 필요가 없어 일반고는 우수학생 모집이 더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최용희 교감은 "한일고처럼 독자적 설립정신과 학교운영의 차별성을 가진 독특한 일반고 모델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일반고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자사고·특목고와 차별화된 자율고 모델을 연구해 전파했으면 한다"며 "교육부 장관에게 이런 내용을 건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반고 살리기는 아무래도 일반고가 잘 알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한일고 입학 이렇게 준비하라]
"성적 좋아 찔러보는 지원은 NO… 구체성·진정성이 핵심"

한일고는 자기주도학습전형을 통해 160명을 선발한다. 전국단위 선발이지만 정원의 30%는 충남 지역에서 뽑는다. 1단계에서 내신으로 정원의 1.5배수를 선발한 뒤 2단계에서 서류와 면접평가로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학생부를 기본으로 추천서, 학습계획서 등을 본다. 변별력이 강한 면접은 자기주도학습 계획과 봉사·체험활동, 독서활동 등을 평가한다.

한해 1000~1300명이 진학 의사를 밝히는 만큼 문의와 상담, 지원 등 절차를 착실히 밟아야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교도 단순 성적보다 학업·진로 계획의 구체성과 지원 동기의 진정성 등을 꼼꼼히 검토한다. 특히 한일고는 오래 전부터 입학사정관제와 유사한 선발제도를 고수해 왔다. 수험생 성적이 좋아도 그저 찔러보는 지원이라면 '노 땡큐'란 입장.

한일고 입학 관계자는 "물론 기본은 튼실한 기초학력이지만, 어차피 내신 전교 1등 수준끼리의 경쟁이므로 막연히 '성적이 되니 서류를 넣어본다' 수준으로는 합격이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진로 계획도 그저 의대 진학이 아니라 임상·정신과 체험을 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는 학생도 있다"며 구체성을 거듭 강조했다.

봉사·체험활동이나 독서활동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봉사활동은 연간 40시간씩 120시간을 요구한다. 자발성, 지속성과 실제 도움이 됐는지 등을 따져 '우수봉사'를 가려낸다. 우수봉사라 해서 거창한 내용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다만 보여주기식 봉사는 곤란하다. 실적을 평가해 학생의 행동·실천능력 등 봉사활동의 질을 본다. 체험활동, 독서활동 역시 양보다는 교과와 전공 학습과 연계된 활동을 했는지 위주로 평가한다.

기숙사 8인1실 사용과 같은 공동체 생활이나 집과 멀리 떨어진 거리, 사교육 받기 힘든 면 단위 교육환경 등을 견디기 어려운 학생에게는 특목고 등 다른 학교 진학을 권하기도 한다.

최용희 교감은 "개략적 내용을 이해하는 설명회부터 시작해 서류?면접 대비 요령을 알려주는 집단상담, 전형에 필요한 세부 스킬 등을 안내하는 특별상담 등을 거치며 학교와 잘 맞는지 파악할 수 있다"며 "한일고에 입학하려면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 이 과정에 참석해야 하는 만큼 중3이 되기 전 어릴 때부터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공주=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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