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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바다 -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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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바다

이성복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1990년 나온 시집 《그 여름의 끝》에 수록된 시입니다. 시집에서 화자는 시종일관 울다가, 서럽다가, 체념합니다. 슬픔과 서러움이 세상의 본질이라는 듯….

서러움은 우리에게 말 걸고, 우리가 대답하지 않아도 먼 길을 따라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끝내는 우리 옆입니다. 하지만 서러움 없는 삶이란 또한 어떨까요. 슬픔과 공존할 때 삶은 아름다운 것 아닐까요. 시집 말미에서 시인은 말합니다. 절망이 매단 붉은 꽃이 좁은 마당을 덮을 때, 장난처럼 절망은 끝이 났다고.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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