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짐 싸기'는 나를 돌아보는 과정
'있으면 좋을 것'은 과감히 덜어내고 '꼭 필요한 것'과 함께하는 길이기를
신수정 < 문학평론가·명지대 교수 >
여행이란 계획을 짤 때 가장 행복하고, 짐을 쌀 때 제일 후회스럽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허다한 여행서들이 짐 싸기의 노하우를 전수하며 ‘짐 싸기, 어렵지 않아요’를 외치고 있는 것을 보면. 사실, 가보지도 않은 곳의 기후를 고려해 옷가지를 챙겨 넣고, 비상시를 대비한 의약품과 소소한 일상생활용품들을 골라내다 보면 이미 지쳐버리기 일쑤다. 더욱이 함께 여행할 사람들이 서먹서먹하고 의례적인 관계라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이런 걸 가져가도 될까, 꼭 챙겨왔어야 할 것을 빠뜨린 것은 없을까, 이런 식의 쓸 데 없는 고민을 하다 보면, 여행 자체를 도로 무르고 싶어지기도 한다.
자칭 타칭 ‘여행의 고수’라고 일컬어지는 여행 전문가 이명석과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본명이다!)의 ‘여행자의 로망 백서’를 보니 짐을 싼다는 것은 ‘서바이벌 라인’에 속하는 일이다. 일종의 ‘생계형’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이드북, 패스, 지도, 나침반, 시계, 환전, 환승비행장 등과 같은. 이들에 따르면, 완벽한 짐을 꾸리기 위해선 우선 여행가기 일주일 전부터, 아니 가능하면 한 달 전부터 ‘트렁크’를 꺼내놓고 생활하는 것이 좋다. 내 방의 주인이 트렁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곤 그 위로 여행갈 때 가져가면 좋을 것들을 던져 놓는다. 시간이 소요될수록 트렁크 위에 올라앉는 물건들도 많아진다. 대개의 경우, 트렁크가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의 서너 배가 넘는 경우도 많다. 대충 그 정도 모아졌으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일단, 내버리기부터. 먼저, 꼭 필요한 것과 있으면 좋을 것들로 분류하고, 있으면 좋을 것들을 트렁크 밖으로 추방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과 있으면 좋을 것들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칫솔은 ‘꼭’ 필요한 것이라 치자. 그럼, 치실과 치아 미백제는 어쩔 것인가. 그동안 사용했던 전동칫솔을 가져가는 수는 없을까. 이왕 가져가기로 한 것, 비상시 사용할 ‘가글’용품과 치아보호 껌 종류는 또 어떤가. 옷가지들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더운 여름 여행이라 하더라도 혹시 모를 한기에 대비할 긴 옷들이 ‘꼭’ 필요할 것이다. 긴 팔 티셔츠는 어떤가. 반 팔 위에 덧입을 점퍼도 나쁘지 않다. 이왕이면 후드 티도 덤으로 가져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이런 식이라면, 한이 없다. 꼭 필요한 것과 있으면 좋을 것들은 언제나 상호 충돌한다. 여행 짐을 꾸린다는 것은 바로 이 헤맴의 연속, 이제까지의 생활 습관에 대한 점검 및 반성, 총체적으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의 하나다. 어쩌면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짐 싸기를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란 트렁크에서 시작해서 트렁크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지에서의 로망이 무엇이든 우리는 매일매일 트렁크를 열었다 닫으며 하루를 마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를 유지하고 생존하기 위한 최소의 물품이자 내가 직접 이고지고 갈 수 있는 내 소유물의 한도를 알려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것의 양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고작 트렁크 ‘하나’ 분량의 물품을 사용하고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날에 걸친 ‘생존’이 가능한 존재다. 약간 불결하고 조금 추워도 다 살도록 돼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가져간 물품의 절반도 사용하지 않고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트렁크 속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다가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물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꼭 필요한 것’과 ‘있으면 좋을 것’들의 기준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을 은연중 강요한다. 내가 생각하는 ‘꼭 필요한 것’들은 어쩌면 ‘있으면 좋을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있으면 좋을 수는 있지만 내 여행에는 불필요한 짐이 될 뿐이다.
이 잉여와 낭비를 줄이는 것이 ‘오십견’과 ‘관절통’에 시달리지 않는 행복한 여행의 지름길일 것이다. 여행은 이 진실을 일깨워준다, 행복하게도.
신수정 < 문학평론가·명지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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