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없다는 사실이 결국 확인됐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공동조사를 거쳐 내린 최종 결론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아직 미련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처음부터 대화록이 없었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는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기록원장은 회의록이 이관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말하고 있고, 심지어 노 정부의 청와대 전 비서관은 이미 지난 1월 검찰 조사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대화록을 삭제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당초부터 국가기록원에 없을 것이라고 했던 세간의 소문을 그대로 확인하게 되는 형국이다.
문제는 정치권의 현란한 억지 언어들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확인한 것은 기록원에 노 전 대통령 기록의 일부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두 정당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하지 않고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확인이 아닌 합의라니! 그렇다면 합의를 하지 않으면 사실도 없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사실도 정치가 합의하면 그때부터는 존재한다는 것인지. 사실은 사실에 관한 용어로 확정되는 것이지, 정치적 흥정과 밀고당기는 타협을 통해 존재하거나 부인되는 그런 잠정적인 가설이 아니다. 아무리 정치권의 주장과 논리가 사실과 다르고, 거짓이 난무하며 위선이 점철된 것이라고 해도 팩트에 대한 확인을 “합의했다”고 표현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정치권의 심각한 정신착란이요 가치전도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당의 태도는 더욱 그렇다. NLL 포기라는 말이 없다는 억지 주장부터가 그랬지만, 말을 꺼낼 때마다 현란한 언어의 마술을 필사적으로 펼쳐보이고 있을 뿐이다. 비논리적인 주장과 존재하지 않는 증거의 조각들을 억지로 이어붙이려니 언어만이 춤을 추는 형국이다. 이제와서는 국정원 자료를 원본으로 간주하면 된다는 말까지 하는 지경이다. 원본과 사본을 혼동하고 진실과 거짓을 이다지도 제멋대로 뒤섞어 놓아도 좋다는 것인지. 진실을 호도하고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보이는 가짜, 다시 말해 시뮬라시옹을 구축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일 것이다. 팩트는 불변이다. 천안함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한국 정치는 언어 관행까지 뒤바꿀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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