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알파 라이징·공생…선도기업 3대 경영키워드로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최근 들어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출구전략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금융위기 이후 적용될 평가 잣대에 맞춘 새로운 전략 짜기에 애쓰고 있다. 대부분 선도기업은 출구전략이 본격 추진될 내년을 ‘대도약의 해’로 삼고, 이를 위해 △도전적인 목표 설정 △신사업 조기 가시화 △가치 있는 제3의 성장 등을 핵심 경영 전략으로 잡은 것으로 조사됐다.
종전에는 기업을 평가하고 주식을 고르는 잣대로 주로 재무제표가 활용됐다. 경영진은 경제적인 이윤 추구에 집중하고, 투자자들은 매출과 이익을 근거로 우량 기업을 골라내는 것이 정형화된 기준이었다. 주식 투자에서는 주가수익비율(PER), 자기자본이익률(ROE),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재무제표와 관련된 지표가 사용됐다.
이런 잣대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당시 나이키와 코카콜라 사례처럼 비(非)재무적인 이슈들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속속 발생했다. 이 현상은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발달하면서 한층 더 두드러졌다. 부정적인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매출 감소 등으로 해당 기업에 되돌아오는 ‘네트워킹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이때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감안해 소비자, 주주, 종업원 등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차원에서 ‘지속가능 경영’이라는 개념이 제시됐다. 지속가능 경영이란 책임경영, 지배구조 개선, 윤리경영, 투명경영, 열린 경영, 사회공헌활동, 환경경영 등 한마디로 비재무적 리스크까지 감안한 총체적인 경영 활동을 말한다.
금융위기 이후 경영 환경에서는 지속가능 경영이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국제 사회가 지속가능 경영에 동참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불이익을 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국내 기업들도 이런 경향을 수용해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경영 표준을 정하고 속속 경영 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각국의 산업 정책에서도 이런 환경에 맞춰 우선순위가 바뀐다. 한때 정보기술(IT) 산업에 주력했던 각국의 산업정책이 금융위기 이후에는 제조업을 재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같은 제조업이라도 고용창출 효과가 큰 수출 업종을 중심으로 각종 지원을 통해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오랜만에 ‘르네상스’라는 용어가 붙을 정도로 각국이 제조업을 중시하는 데는 거시정책 목표를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닌 체감경기 개선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물가가 추세적으로 안정된 시대에서 체감경기를 개선한다는 것은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목적을 달성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지난 10년간 주력 산업이었던 IT산업은 뒷전에 물러설 수밖에 없다. IT산업은 네트워크를 깔면 깔수록 생산성이 늘어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되면 일자리,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전통적인 제조업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주력 산업으로 떠오른 이른바 ‘알파 라이징(alpha-rising) 업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알파 라이징 업종’이란 현존하는 기업 이외라는 점에서 ‘알파’가, 금융위기 이후 적용될 새로운 평가 잣대에 따라 부각된다는 의미에서 ‘라이징’이 붙은 용어다.
현재 연구개발 중이거나 개발이 완성돼 출시를 앞둔 다양한 제품 가운데 ‘알파라이징 업종’이 될 가능성이 높은 차세대 주력 업종으로 △주인을 알아보는 카드 △건강을 가져다주는 바이러스 △기름을 먹고 사는 박테리아 △사용한 종이 기저귀가 거름이 되는 상품 △세계 언어를 동시에 번역하는 ‘하쿠나 마타타’ 등이 꼽힌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이드 섀플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명예교수와 앨빈 로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공생적 게임이론의 대가다. 섀플리-로스의 공생적 게임이론을 기업경영에 접목시키는 일환으로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새로운 사업모델로 BOP(base of pyramid), 즉 빈곤층 대상 비즈니스를 추진하고 있다.
수익과 빈곤층 자립기반 조성을 동시에 목표로 하는 BOP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요즘 들어서는 동반자 관계 설정, 각종 기부 등을 통해 중소기업 및 저소득층과 함께 가는 제3의 길인 ‘임팩트 경영’에도 주력하고 있다. ‘임팩트(empact)’란 ‘감정이입’을 뜻하는 ‘empathy’와 ‘사회적 연대’를 나타나는 ‘pact’가 결합한 용어로 ‘사회적 연대경영’을 말한다.
기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선도기업들은 전통적인 제조업과 알파 라이징 업종, 섀플리-로스 공생업종 간에 ‘3:4:3’ 또는 ‘4:4:2’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선도기업의 이 같은 경영원칙을 ‘트라이앵글 골든 룰 경영(triangle golden rule management)’이라고 부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선도기업들의 ‘트라이앵글 골든 룰 경영’에서 중시하는 업종은 친인간적이고 친환경적이라는 면에서 공통적이라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돈을 가장 많이 벌고 있는 워런 버핏은 이 점을 중시해 주식 종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도기업들의 이 같은 경영과 버핏의 신투자 기법은 국내 기업인과 투자자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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