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관문' 천억 클럽
경기민감업종 대거 탈락
영업이익률도 떨어져…인력 확보 가장 큰 애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벤처천억기업’ 기념식이 16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렸다. 매출 1000억원 이상을 처음 달성한 디젠, 세미솔루션, 아모텍, 엔피디, 유비스 등 벤처기업 경영인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한정화 중소기업청장, 정준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쏠리드 사장) 등과 150여명의 벤처기업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축제 분위기가 아니었다. 서로를 격려하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창조경제 실현의 핵심 동력으로 꼽히는 벤처기업들도 불황의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벤처천억기업 416개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넘긴 벤처기업 증가율은 이 조사를 시작한 2005년 이후 가장 낮았다.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벤처천억기업 수는 416개였다. 전년 대비 35개(9.2%) 늘어난 것이다. 증가율이 10% 미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1년 66개(21%), 2010년 73개(30%) 증가한 것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벤처기업인들에게 매출 1000억원은 ‘넘기 힘든 장벽’으로 불린다. 기업이 안정 궤도에 오르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주요 단계로 여겨지지만 그만큼 달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벤처천억클럽 가입은 벤처기업인들의 염원으로 꼽힌다.
◆탈락한 기업 68개
벤처천억기업 증가율이 예년에 비해 떨어진 것은 지난해 매출이 줄어 ‘탈락’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2011년 벤처천억기업이던 68곳이 작년 매출이 100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경기에 민감한 컴퓨터, 반도체, 식품 부문 기업이 대거 탈락했다고 중기청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난해 처음 1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한 곳은 54곳, 예전에 1000억원을 넘어섰다가 탈락한 뒤 작년 다시 벤처천억기업에 진입한 곳은 49곳이었다.
벤처천억기업의 지난해 매출 증가율도 전년 대비 3.3%포인트 감소한 9.1%에 그쳤다.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도 6.5%로 2011년(7.5%)보다 낮았다. 창업 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17년으로 전년(16.1년)보다 1년 정도 늘었다.
◆인력 확보에 어려움 커
한정화 중기청장은 “국내 경기뿐만 아니라 유럽 등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어려운 경기여건 속에서도 전체 벤처기업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며 “성장세가 둔화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벤처기업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준 부회장은 “벤처천억기업의 대부분은 기업 간 거래(B2B) 비중이 크다”며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는 만큼 이들 기업의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설명했다.
벤처천억기업들은 가장 어려운 점으로 인력 확보(43.5%)를 꼽았다. 벤처천억클럽에 처음 가입한 내비게이션업체 디젠의 한무경 사장은 “대구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방에서 인력을 확보하기가 힘들어 서울에 연구소를 두고 있다”며 “연구소를 운영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밖의 애로사항으로는 업계 내 경쟁심화(33.9%), 미래 성장동력 확보(32.3%) 등이었다.
연구개발(R&D)과 해외시장 개척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한 청장은 “벤처천억기업 중 3년 연속 20% 이상 매출이 늘어난 고성장 기업의 공통점은 글로벌시장 진출에 성공하고 지속적으로 R&D 투자를 늘려왔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벤처기업이 벤처천억클럽에 진입할 수 있도록 이 부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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