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규제는 풀고, 투자는 격려하고…
늘어나는 규제에 말라가는 투자…창조적 산업경쟁력 무너질 수도
일자리 창출 위한 투자환경 절실
일전에 한 연기금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국내 연기금의 운용 수익률은 2~3% 선으로 대동소이하다고 했다. 연기금의 투자에 대한 규제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연기금은 포지티브 리스트에 들어 있는 것에만 투자할 수 있으니 어떤 창의력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규제가 금융산업을 낙후시켰다는 얘기다.
규제는 사고의 폭을 좁게 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만4000여건의 각종 규제가 있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무려 두 배나 규제가 늘었다. 대통령마다 규제를 줄이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규제의 수도 그렇지만 내용 또한 문제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탓에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근로시간면제심사위원회는 최근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임 노조위원장을 둘 수 있는 내용의 ‘근로시간 면제한도’ 조정안을 의결했다.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중소기업 대부분은 가뜩이나 일손이 달려 애를 태우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없는 일손을 빼 노조 일을 전담케 하는 이런 규제 탓에 하루하루 생존에 허덕이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심정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손자기업까지 거느린 한 정보기술(IT)분야 대기업 임원이 규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들었다. 신규순환출자가 금지되면 손자기업이 자회사를 만들 때 100% 출자해야 한다. 손자기업이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해 합작회사를 설립하려고 해도 안되는 것이다.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는 게 외국인의 투자를 걷어차는 꼴이 되는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규제만능주의에 빠진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법으로 누르고 제한하려는 생각부터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문제 해결 방법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소위 ‘일감몰아주기 방지법’ 등의 개정안은 특히 걱정된다.
그룹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막는다며 계열사 간 이익이 나는 행위 모두를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어서다. 대기업 계열사 간 거래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룹 내 시너지 효과를 위해 꼭 필요한 계열사 간 거래가 있는 게 사실이다. 유럽의 전자·자동차회사들은 오히려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이 만들어 놓은 가치사슬 생태계에 대해 감탄하고 모방하려 하고 있다. 총수 일가를 때려잡기 위한 규제가 자칫 대한민국 산업경쟁력의 원천인 가치사슬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받는 제도를 만들었다. 경제적 논리대로라면 지각하는 엄마의 수는 줄어야 한다. 그러나 늦게 애를 데리러 오는 부모는 더 늘기만 했다. 벌금을 내면 된다는 생각에 지각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어린이집은 벌금제도를 없앴는데 그런데도 부모의 지각률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규제가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다. 잘못된 규제에서 비롯된 행위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최근 한 세미나에서 규제가 실물경제를 바꾸어 놓으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규제일수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까닭이다.
나라 경제는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4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5%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4.0%나 줄었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으로 세계 경제는 불안하게 요동치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려면 대기업이 투자를 선도해야 한다. 국가는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정책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규제에 매달릴 게 아니라 기업이 투자하도록 격려하는 규제의 폐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규제가 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과 차이가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뜻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6월 27일자 A 38면
유지수 <국민대 총장 jisoo@kookmin.ac.k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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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만19세 성년, 책임과 의무를 아는 성인 돼야
어제부터 민법상 성년이 만 20세에서 19세로 낮춰졌다. 이에 따라 1994년 7월1일 이전 출생자는 곧바로 성년의 지위를 누리게 됐다. 민법상 성년이란 부모나 후견인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부모 동의 없이 결혼·약혼, 부동산 매매, 전세계약을 하거나 사업자 등록, 신용카드 발급, 휴대전화 가입, 타국 국적 취득도 가능해진다. 청소년의 조숙화와 국내외 입법 추세에 비춰볼 때 만 19세 성년은 빠르다고 볼 수 없다. 그동안 공직선거법, 청소년보호법 등에서 만 19세를 성년으로 인정했던 것과의 괴리와 혼선도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성년이 된다는 것은 마땅히 축하하고 축복받을 일이다. 부모 슬하에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지나 비로소 독립된 개인으로서 법적으로 공인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년으로서 누리는 권리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 성년이 된 젊은이들에게 마냥 축하만 보낼 수 없는 이유다. 예컨대 무분별한 카드 과소비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섣부른 결혼으로 인한 굴절된 삶을 살게 되더라도 대신 책임져줄 사람은 없다. 스스로 감수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얘기다.
성년의 기준이 19세냐, 20세냐는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성인이지만 성인답지 못한 이들이 너무 많고, 그 이면에는 다 큰 자녀를 성인으로 인정치 않으려는 한국 부모들의 유별난 과보호가 있다는 점이다. 소위 헬리콥터족 부모들은 자녀를 캥거루족으로 만들고, 학교에서도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가르치는 데 소홀하다. 그래서 그 자녀들 중에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본인과 가정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크나큰 불행이자 손실이다.
성년의 삶은 막중한 책임의 무게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젊은이들을 감상에 젖게 하는 싸구려 멘토링이나 힐링으로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겪게 될 고단한 현실과 막막한 미래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성년은 스스로 부딪치고 이겨내는 자조(自助)의 삶이어야 축복이 될 수 있다. 성년이 된 젊은이들의 건투를 빈다. ☞한국경제신문 7월 2일자 A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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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중 정상, 북한核 불용(不容) 원칙 재확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가진 정상회담은 여러 면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수교 21주년을 맞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하는 내용의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도 의미가 깊다. 북한의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의 평화가 공동의 이익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하고 함께 대처해 나가기로 한 점은 중국의 진일보한 태도로 평가된다. 이달 초 오바마·시진핑 회담에서 이미 선포된 원칙이기는 하지만 한·중 간에 직접 ‘북핵 불용(不容)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것은 중요한 진전이다. 한반도의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시진핑 주석의 발표도 주목할 만하다. 평화적 통일에 대한 언급은 이번에는 특히 울림이 컸다.
두 정상 간에 강조점에서 다소 차이도 있었다. 중국은 북한 비핵화라는 단어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제재 방안에 대해서도 유엔안보리 결의 등 기존의 방안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6자회담의 틀을 여전히 강조했다는 점도 그렇다.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라는 소위 3원칙은 중국 정부가 이전부터 강조해 왔다.
양국 간 경제관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법들이 제시됐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2015년까지 교역규모 3000억달러를 달성하자며 수치까지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FTA에 대해서는 강조점이 달랐다. 시 주석은 ‘높은 수준의 FTA’를 언급한 반면 박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만족하는 FTA’를 언급해 차이를 보였다. 정상회담 과정에서 7건의 크고작은 양해각서가 체결된 점도 주목할 만했다. 평화로운 해양질서라는 이름으로 중국 어민들의 서해어로구역 침범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 문화 유대를 크게 강화하기로 한 점도 기대를 모으는 협력 부문으로 부상했다.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특히 중국 언론의 환대가 주목을 끌었다. 한국의 재계 지도자 71명이 대거 박 대통령과 동행한 만큼 북핵문제 외에 경제협력 확대도 괄목할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박 대통령의 3박4일이 한·중 양국 국민이 서로를 라오펑유(老朋友)로 느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6월 28일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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