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해외홍보 첨병 외국 한식당…지금까진 이미지 실추 더 많아
컨설팅·인증제 통해 수준 높여야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외국 나갈 때 현지 음식을 고집하는 것은 유학시절 생긴 버릇 때문이다. 다른 학생보다는 나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았기에 다소 입에 맞지 않아도 현지 음식에 적응해야만 했고, 그나마 비위가 약하지 않아 별 문제 없이 꿋꿋이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외국 나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아 고추장과 김치를 찾는 한국 사람들을 딱하게 여긴 적도 있었고, 단체여행이나 패키지여행에 왜 꼭 한식당을 포함시켜야만 하는지 의아해 했던 일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인생에서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낯선 외국 여정에 입맛이 안 맞으면 얼마나 괴로울지, 나이 들어 위장이 예민해지고 식성이 까다로워져서인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래도 한 가지 아직도 영 이해하기 힘든 게 있다. 해외 한식당의 모습이다. 고향의 맛을 기대하며 찾은 한식당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구석진 곳에 뭔가 영세하고 쇠락해 보이는 외관이나 국적 불명의 인테리어는 어려운 형편 탓이려니 하더라도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의 자세와 태도, 상차림과 음식 맛 모든 면에서 기대 이하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음식 값마저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았다.
점입가경은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공사현장 식당 같은 분위기의 한식당 경험이었다. 누가 뭐래도, 음식 맛이나 값이 어떻더라도, 여행사나 가이드를 끼고 한국에서 온 입 짧은 단체관광객들을 받을 수 있어 걱정할 게 없다는 식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현지 손님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모자와 등산복 차림의 단체관광객들이 밀려들었다 떠나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한국 음식에 대한 반가움과 자부심은 식당 문을 들어서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해외 한식당의 이미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굳어져 버렸고 현지 음식 고집은 더욱 강화됐다.
그러나 우리가 직시해야 할 훨씬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한식의 우수성이다. 한식은 위대하다. 세계 어느 곳을 다녀 보아도 음식의 종류나 다양성, 요리방식과 맛, 건강성 등 모든 면에서 한국 음식에 견줄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김치와 간장·된장 등 발효음식은 물론이고 각종 나물과 젓갈 등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 특유의 다양한 맛과 건강을 두루 갖춘 음식이다. 한국의 음식과 음식문화는 진정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가장 강력한 한류의 아이템이다. 일식 중식에만 익숙했던 미슐랭의 서구 스타 셰프들에게 충격을 준 것이 한국의 발효음식이다. 이제 한식의 가치는 세계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떤 음식보다 높은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음식문화 유산이자 자산을 가지고 우리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한식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는 일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장 중요한 교두보에서 일이 꼬인다. 해외 한식당은 한식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얼굴이다. 한국을 직접 방문하는 경우 말고 외국인들이 한식을 접하는 가장 주된 전초지점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한식당을 경영해 온 수많은 해외동포들의 의지와 열정이 폄하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한식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기는커녕 한식의 이미지를 망치고 한식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조장하는 우울한 사례들이 많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도 우리는 이것밖에 안되나 한숨이 나온다.
여행이 끝나고 이명박 전 대통령 영부인이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한식 세계화 사업의 예산 낭비와 부실집행을 지적한 감사원 보고를 마주하는 일은 여독보다 더 피곤한 일이었다. 한식 세계화의 방향도 잘 잡았고 또 구체적인 정책수단들도 그런대로 잘 짜였다 생각했었지만 결과가 너무 실망스럽다. 브룩 실즈 등 유명배우를 동원해 적지 않은 돈을 주고 한식 사랑을 연출했다는 얘기는 정말 어이가 없다. 원인도 규명해야 하고 책임도 추궁해야겠지만, 그래도 한식 세계화 사업은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일도 많겠지만, 무엇보다도 해외 한식당들의 리노베이션을 위한 실사와 컨설팅, 자금지원, 인증제도 도입 및 사후지원과 관리에 좀 더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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