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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쓰는 논술] (10) 정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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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란 무엇인가

한때 마이클 샌댈이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는 것이 유행이었다. 한국에서만 수백만 부가 팔린 이 공전의 베스트셀러는 우리 사회에 이른바 ‘정의 열풍’을 불러왔으며 이 기세는 논술시험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논술 기출문제도 유행을 탄다) 대학의 논술 제시문과 논제로 수차례 출제되었고, 학교의 수행평가에서도 이 책의 독후감을 내는 것이 단골 메뉴였다. 학원에서도 이 책을 가지고 논술 수업을 했다. 이 책을 논술교육에 접목시키자는 교육학 논문도 수차례 나왔고, 심지어는 ‘정의란 무엇인가 논술대회’까지 개최되고 있으니 이 책의 위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의 열풍’의 근원에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정의가 없기 때문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나왔다. 타당성이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자살률은 세계 최고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올바름의 기준에 대해 혼란을 느낄 것이다. 저마다 말하는 정의의 기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점은 감안해도 우리 사회의 합의와 기준은 무엇인지 특히 학생들에게는, 그러한 좌표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꼭 하버드 대학 교수에게 물어봐야 알까. 그것은 여러분의 상식 속에 있다.

▧ 자유와 평등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 다룰 수도 없고 공리주의를 설명한 지난 칼럼에서 이미 이 책의 일정 부분은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유와 평등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하자. 자유와 평등의 관계 문제는 다양하게 응용이 된다. 이것은 효율성과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하고, 개인의 이기성과 공공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파트로 응용된다면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간섭 관계도 이와 동일한 구조이다. 이것을 다룬 기출문제는 많지만 최근의 것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2 성균관대 수시(2교시) : 정의 (효율성과 형평성)
2011 서강대 수시 2차(인문계 / 커뮤니케이션학부) : 개인의 이기성과 공공성 실현
2011 동국대 수시 : 정치의 역할 (롤스의 차등의 원칙)
2011 상명대 수시 : 바람직한 평등(남자교사 할당제)
2011 성신여대 수시(3교시) : 평등 개념,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제한 조치의 타당성
2011 서울여대 수시(인문-오전) : 윤리적 가치와 시장원리(플로리다 가격폭리처벌법)

이 문제들은 일정한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열어주고 수험생에게 선택할 것을 요청한다. 딜레마라는 말 자체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지도 완벽하게 상황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반면에 어떤 것을 선택해도 답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채점의 기준은 무엇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어떤 논리적 근거를 들어 합리화시키느냐이다. 이러한 분석력과 논증력이 주된 채점 대상이라는 점 숙지하고 제시문을 읽어보자. <2011 동국대 수시1> 논술문제의 제시문이다.


분배 정의(正義)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는 시장을 통한 분배만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며, 국가 개입을 통한 소득 재분배에 대해 반대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설령 시장 경제 아래서 어느 정도 소득 불평등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시장 메커니즘에 따른 분배는 소득 계층 간의 자유로운 이동 기회를 보장하기 때문에 그러한 불평등이 고착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예를 들어 가난한 집 자식들도 능력이 있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부잣집 자식들이라도 무능하고 게으르면 어느새 빈곤해지게 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오히려 시장 경제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에서 계층의 고착화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논의의 초점은,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불평등이 굳어지는 경향이 있는가의 여부이다.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시장은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에 따라 계층 이동의 길이 열려 있으며, 따라서 부의 불평등이 고착화되지 않는다. 결국 기회 균등이 현실적으로 구현되는가가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논의의 핵심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기회 균등은 개인이 하는 일을 사회가 막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소극적 또는 형식적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분배 정의에 관한 자유주의적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개인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개인의 자유로운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야 하고 국가의 역할은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선에 한정된다는 주장이다. 이렇듯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못 견디기 때문에 실질적 평등을 위한 국가의 제도를 거부한다.

자유주의의 정의는 사실 별게 없다. 자유는 신성한 영역이고 이것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정의의 실현이라는 뜻이다. 샌댈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나오는 대목이지만 정통 자유주의자는 소득에 대한 세금도 반대한다.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 논리만큼은 탄탄하다. 개인의 소득은 개인이 일한 만큼의 보상이므로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 1년에 3000만달러를 벌었는데 세금으로 1000만달러를 내야 한다면 그는 결국 1년의 3분의 1을 국가를 위해 일한 셈이 된다는 것이다. 국가가 조던을 불러 ‘네 시간의 3분의 1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유 침해이자 인권유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금 또한 자유 침해이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과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데 사실 완벽한 자유주의적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전 세계에서 자유를 수호하면서 국방비로만 우리 돈 천 조를 매년 쓰는 ‘천조국’, 미국의 소득세율도 꽤 높은 편에 속하니 말이다. 로버트 노직을 필두로 하여 자유주의의 광풍이 불던 시대에 실질적 평등을 무기 삼아 활약했던 학자가 존 롤스이다. 그의 정의론 또한 알아 둘 필요가 있다.


▧ 롤스의 정의론


롤스에 따르면 정의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사회구조와 제도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실질적인 기회 평등을 보장하여 최선의 자아실현이 가능하도록 최대로 돕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의 원칙으로 “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을 제시했다. 두 원칙 중 보다 중요한 것은 차등의 원칙이다. 차등의 원칙은 “기회 균등의 원칙”과 “최소 수혜자 최대 이익의 원칙”으로 나누어진다. ‘최소 수혜자’는 사회적으로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로서, 이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역(逆)차별적인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최소 수혜자 최대 이익의 원칙”이다.



<2011 동국대 수시1> 문제의 제시문이다. 롤스의 정의론은 자유를 일정한 범위에서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자유 제한은 곧 세금 부과이다. 못사는 사람들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살 정도의 최소한의 혜택은 주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 국가는 세금을 걷는다. 왜 그래야 할까? 논리 구성을 위해서는 롤스의 개념 용어인 ‘무지의 베일’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무지의 베일을 씌워놓고 생각해보자. 여기서 무지란 그 사람이 마이클 조던이 될지 서울역 앞의 노숙자가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노숙자는 빈둥빈둥 놀기만 하고 게을러 터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그것도 모르는 일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외환위기 사태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일로 극빈층이 된 사람들도 많다. 결국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구성원들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자유의 절대적 보장? 아니다. 기본적 자유는 모두 주되, 인간다운 삶을 살 만큼의 평등은 보장해야 한다고 합의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못사는 사람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게 복지제도도 필요하고 사회안전망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롤스의 견해다.

롤스의 제안은 자유주의의 폐기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상황적 적용에 가깝다. 그도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원칙은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원칙을 기계적으로 모든 사항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불의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유권을 유연하게 생각하여 재산상의 자유 정도는 약자를 위해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는 원칙 또한 유연하게 해석하여 최소 수혜자에 한해서는 일하지 않아도 보상받아야 한다는 그의 사상은 완고한 자유주의자에게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질 것이다.

▧ 맺음말

정의 내지 도덕과 관련한 원칙은 이미 우리들이 알고 있다. ‘개인의 자유는 소중하다’ 혹은 ‘모두의 평등은 소중하다’는 것들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만 이것을 일률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정의를 추구하는데 불의의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도덕적 판단이란 이러한 원칙들을 적용할지 말지, 적용한다면 얼마나 적용할지 등의 복합적 판단이다. 따라서 좋은 논술 답안에는 원칙이 당위적으로 주장되지 않는다. 수험생이 어떻게 적용했는지 혹은 적용하지 않았는지의 논리적인 사고 과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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