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모님 '형집행 정지' 후폭풍
한달새 주가 30% 급락…개인주주들 손실 죄송
일부 네티즌, 협력사 협박…40년 거래처 돌아서기도
회사매출 줄어 업무량 뚝…직원 생계 곤란해질까 걱정
밀가루회사 영남제분 주가는 20일 6.7% 빠졌다. 지난 5월25일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을 방영한 후 4주 새 29.2% 폭락했다. 사회적 분노가 쏟아지고 불매운동으로 거래처가 끊기면서 회사 전체가 휘청이는 모습이다.
○“40년 거래처도 등돌렸다”
류지훈 영남제분 부사장에게 연락이 온 것은 지난 18일이었다. 기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영남제분이 ‘여대생 살인교사 사건’으로 대중의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류모 회장과 ‘사모님’의 아들인 그를 만나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도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졌다. 19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수척한 모습이었다. “영남제분 불매운동으로 죄없는 직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류 부사장은 “회사는 200명의 직원과 1000여명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며 “매출이 줄어들면서 업무량이 급감했고 불가피하게 일부 근로자를 시간제로 전환하고 있다”며 어려워진 회사 사정부터 설명했다. “매출 감소가 지속될 경우 직원들에게 더 큰 피해가 갈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도 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영남제분을 지방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으로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연매출 900억원대의 중소 중견기업이며, 대기업에 고개 숙여 납품하는 회사”라고 말했다.
류 부사장은 주가 폭락에 대해 “일반주주들이 큰 손실을 보게 돼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영남제분 주가는 5월24일 2740원에서 이날 1940원으로 떨어졌다. 이 기간 허공으로 사라진 시가총액은 166억원이다. 오너 일가는 물론이고 영남제분 지분의 50% 이상을 갖고 있는 일반 주주들도 큰 손해를 보고 있다.
그는 “일부 네티즌이 주요 거래처에 전화해 영남제분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하고 있다”며 “40년 넘게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거래처들이 힘에 부쳐 못 버티겠다며 하나둘 떠날 때 가슴이 미어졌다”고 토로했다.
○“사회적 책임 되돌아보는 계기”
류 부사장은 ‘여대생 살인교사 사건’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시 일어난 일은 정말 송구스러울 뿐이며 백번 천번 사죄하는 마음뿐”이라며 “부모님(류 회장과 부인)은 이후 이혼했다”고 전했다. “가족의 일원으로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10여년 전 일이 재조명되는 것에 대해 “급작스럽고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상한 외출’을 해온 사모님은 지난달 21일 검찰이 형집행정지를 취소하면서 다시 감옥으로 갔으나 그 후폭풍은 현재진행형이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대리점주 폭언사건에 CJ 비자금 검찰수사까지 겹치며 ‘재벌=특권’이라는 반기업정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잘못된 소견서를 작성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주치의의 책임도 검찰 수사에서 가려지게 됐다. 살인교사죄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어야 할 범죄자가 ‘형집행정지’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교묘하게 활용해 버젓이 병원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사모님 리스크’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영남제분에서 오너 일가에 대한 엄격한 도덕성,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경제민주화시대의 새로운 기류를 읽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경영 전문가는 “오너 일가의 도덕적 문제가 1000여명의 생계가 걸려 있는 기업의 도산으로 이어져야만 하는지는 좀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라면서도 “사회적 분노가 기업의 생존, 지속적인 성장과도 직결되며 평판경영, 사회적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기업주와 관련한 부도덕한 사건이 순식간에 모바일이나 인터넷으로 퍼지고 조직적인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류 부사장은 한 시간여 인터뷰를 마치며 “제발 회사를 살려달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오너 일가의 도덕성 논란, 기업을 향한 사회적 분노 속에서 55년 외길 밀가루 회사 영남제분은 큰 위기에 처했다. 2세 경영인의 근심어린 얼굴과 일자리를 걱정하는 200여 근로자들의 불안이 묘하게 어른거렸다.
오동혁 기자 otto8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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