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입국장에 면세점을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입국장 면세점은 2001년 인천국제공항이 문을 열 때부터 옛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정부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합의를 보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도 2003년부터 다섯 차례나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허용하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달에는 입국장 면세점 도입 필요성을 논의하는 정책 토론회도 열렸다. 하지만 관련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의 힘겨루기 탓에 정부 차원의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여행객들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입국장 면세점 설치에 찬성한다. 외화 유출을 억제하고 관광수지를 개선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공항을 관리·운영하는
천공항공사도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로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와 관세청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출국장 면세점에서 구매한 상품은 기본적으로 외국에서 소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면세가 인정되지만 입국장 면세점에서 산 물품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만큼 ‘소비지 과세 원칙’(관세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수 측면에서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2011년 국내 면세점 매출 5조3716억원 가운데 내국인 구매액은 2조6662억원으로 49.6%에 달했다. 국내 면세점 매출의 절반가량을 내국인이 올려줬다는 얘기다. 관세청은 입국장 면세점이 테러 물품이나 마약, 총기류 등 밀수품을 숨기는 장소로 활용될 수 있는 데다 세관 검사가 늘어나 입국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 계층 간 위화감 조성, 수화물 분실 위험 증가, 공항 서비스의 질 하락 등도 부작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찬성 해외 여행객 '쇼핑 불편' 해소…外貨 유출 줄어 관광수지 개선
경제성장과 한류 열풍, 문화산업 등의 발전으로 관광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은 1114만명을 기록했다. 해외로 나간 내국인도 1373만명에 달해 공항을 통한 여행객이 연간 2500만명에 이른다. 2003년 여행객이 1200만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해외 여행을 할 때 느끼는 불편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국민 정서상 집을 떠나 외국 여행을 하면서 간단한 기념품과 선물을 사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특히 쇼핑은 여행을 하면서 즐기는 여가 생활이다. 여행에 대한 만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적 활동이기도 하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관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활동은 쇼핑(69.5%, 2008년 조사)이다. 외국 관광객이 우리나라 방문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도 쇼핑(66.6%, 2010년 조사)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해외 여행을 해본 사람은 출국심사와 비행기 탑승 시간에 쫓겨 면세점을 정신없이 둘러보고 겨우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비행기를 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국내 공항 면세점에서 구매한 물건을 여행 기간 무겁게 들고 다니면서 불편해한 적도 많을 것이다. 입국장 면세점이 없어 시내 면세점에서 미리 구매 요청을 해 공항에서 수령한 경험들도 있을 것이다. “왜 입국할 때는 면세점을 이용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우리 주위에 흔하다.
국민 대다수 필요 공감v면세 관련 산업도 발전
국민들의 이 같은 불편을 해소하고 외화 유출 억제와 관광수지 개선 등을 위해 이제는 여행객 3000만명을 바라보는 시점에 입국장 면세점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2002년 이후 아홉 차례에 걸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응답자 총 1만7700명)에서도 입국장 면세점 설치 찬성률은 77~90%(평균 84%)로 나타났다. 국민 대다수가 여행 편익을 위해 입국장에 면세점을 설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내국인들이 여행을 할 때 외국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대신 해외 쇼핑 수요를 국내 입국장 면세점으로 유도한다면 경제적 효과도 크다. 국내 면세점 소득이 증가할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각종 면세 관련 산업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외 여행객 1000만명이 입국장 면세점에서 연간 10달러씩만 구매해도 1100억원 정도의 매출이 발생한다. 구입 제품이 모두 외국산이라는 가정을 하면 수입원가의 약 50%를 수익으로 낼 수 있다. 550억원 이상이 임금, 유통비, 세금 등으로 전환되는 효과를 거둔다. 국산품의 경우에는 수출과 동일한 경제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여기에다 입국 외국인 약 1000만명이 연간 10달러씩만 입국 면세점에서 지출한다면 그 경제적 효과도 11000억원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들어 중국인 1인당 면세품 구입액은 내국인의 2.5배를 기록하고 있다. 또 외국인의 면세 매출 비중이 지난 3년 동안 10%씩 성장해 현재 전체 면세 매출의 약 47%에 이른다. 앞으로도 외국인의 면세 매출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외국인 면세 시장의 성장에 따라 입국장 면세점 설치는 더욱 필요하며 방한 외국인의 쇼핑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서비스 개선도 요구된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지난해 기준 면세 시장 규모는 약 5조3000억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면세 시장은 대기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된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입국장 면세점 설치로 우수 중소기업 상품 등의 비중을 늘림으로써 지역 경제 및 중소기업 육성도 기대할 수 있다.
입국장 면세점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생활문화 및 경제 발전상을 보여줄 수 있는 유용한 홍보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은 쇼핑을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 생활상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입국장 면세점 설치에 따른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입국수속 관리의 어려움과 관계기관 법령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인천국제공항의 경쟁 공항인 중국 베이징·상하이공항, 홍콩 첵랍콕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을 비롯해 세계 63개국 117개 공항이 입국장 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이들 공항은 여행객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어 인천국제공항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생활 수준이 낮았던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관세법(1978년)의 입법 취지나 국제기구의 권고(1962년) 기준 등은 이제 창조경제 시대를 맞아 수정되거나 재해석돼야 한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출입국 보안 문제와 공항 업무 효율성 저하, 위법행위 및 세관 감시행정 약화 문제 등은 여행객 3000만명 시대에 육안이나 인위적인 감시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중, 3중의 철저한 보안과 최첨단 보안 시스템 등을 활용한 관리로 극복해야 한다.
글로벌 공항 경쟁 시대…창조적 서비스 제공해야
입국장 면세점이 이미 설치된 기존의 해외 공항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연구 조사를 통해서도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만의 경쟁력 있는 창조적인 공항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노력이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입국장 면세점을 둘러싼 각종 부정적인 시선과 문제점을 줄여나갈 수 있다.
입국장에 면세점을 설치하면 기내에서 물품을 판매하는 항공사와 보안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등 일부 기관의 손실과 어려움을 수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외국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의 포괄적인 이득과 혜택이 더 크다. 이런 점에서 입국장 면세점 설치는 공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조그마한 손실과 불편 때문에 기대되는 더 큰 이익과 혜택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반대 '내국인 主고객' 입국 면세점…일반 수입품과 과세 불평등
인천공항 입국장에 면세점을 설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행자 편의, 외화유출 방지, 고용창출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 두바이, 중국 등 입국장 면세점을 운영하는 일부 외국 공항들의 사례도 제시한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공항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서 면세 제도를 시행하고 있거나 외화가 자유롭게 유통돼 관세제도와 충돌할 일이 없는 구조를 가진 곳이다. 미국, 영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은 대부분 입국장 면세점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관세법과 면세제도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관세법은 수입물품에 부과하는 세금의 일부를 경감해주거나 면제하는 예외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면세점은 해외에서 면세품을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해외로 출국하는 내국인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만 면세품을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입국장 면세점 설치는 이런 면세점 제도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입국장 면세점의 주 고객은 내국인이고, 구매한 물품은 국내에서 소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로 수출하는 모든 물품은 소비지에서 과세하도록 규정한 관세법의 ‘소비지국 과세 원칙’에도 위반된다. 일반 수입 물품과 입국장 면세점 물품 사이에 과세 불평등이 나타나는 것도 문제다. 똑같이 국내에서 소비하는데 일반 수입물품에만 관세, 부가세 등 세금을 매긴다면 공정한 과세라고 볼 수 없다.
부유층에만 '면세'문제…美·日 등에선 도입 안해
입국장 감시 시스템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다. 세관은 국민의 안녕과 국가 안보를 위해 마약, 테러 물품 등의 반입을 차단하려고 만들어진 국경관리의 최후 보루다. 현재 세관 감시시스템은 항공기 출발지, 여행자의 과거 불법행위 적발 정보, 신용카드 사용자료 등 각종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이를 분석한 뒤 여행자가 입국장에 도착하면 세관 추적요원이 추적, 적발하도록 돼 있다.
화물은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불법 및 우범 물품을 적발한다. 그러나 입국 후 여행 가방을 찾아 공항을 나갈 수 있는 입국장에 면세점을 만들면 면세품 구매한도 초과 여부에 대해 세관이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분석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짐을 찾은 뒤 면세점을 이용하면 여행가방 검색도 힘들어진다. 일부 우범 여행객을 선별해 검사하는 것은 물론 면세점 이용객 모두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여행자 편의를 위해 설치한 입국장 면세점은 공항을 쇼핑하는 여행객들로 붐비게 만들어 오히려 여행객에게 불편함을 가져다줄 수 있다. 공항만족도 8년 연속 1위라는 인천공항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검사 대상으로 선별된 우범 여행자가 면세점으로 도피, 공모자에게 불법물품을 전달하거나 적발을 피해 소지품 등을 면세점에 버려두는 경우 세관의 추적감시 시스템이 무력화될 수 있다.
현재 인천공항은 하루평균 350대의 항공기가 들어온다. 피크시간대에는 2분에 1대씩 항공기가 도착하며, 항공기 1대에 평균 200명이 입국한다. 입국장 면세점 이용시간을 평균 20분 안팎으로 잡으면 1500~2000명의 인원이 입국장에 체류하게 된다. 여러 항공기를 타고온 여행자가 뒤섞이면 특정 항공기 여행객에 대한 세관 검사가 어려워진다. ‘입국 여행자의 84%가 입국장 면세점 설치에 찬성했다’는 인천공항공사의 설문조사 결과는 여행자들에게 이런 부작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얻어진 것이다.
사회 계층 간 위화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 똑같은 물건을 국내 매장이나 백화점에서는 세금이 포함된 가격으로 사야하는데 해외여행을 자주 할 수 있는 부유층은 보다 싼값에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불공평한 과세환경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입국장 면세점이 과소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물품은 대부분 해외 명품 브랜드로, 외국 명품 업체의 수익만 늘려주게 된다. 해외에서 외화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입국장 면세점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무색해진다. 해외 여행객은 출국 때 출국장 면세점과 여행국의 면세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러 차례 면세품을 구입할 기회가 있다. 입국장에서까지 쇼핑할 기회를 주는 것은 충동구매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입국 감시 시스템 '혼란'…불법 밀수품 적발 어려워
인천공항공사는 외국 입국장 면세점의 경우 이용자가 항공기 편당 평균 5명 안팎이어서 입국장 혼잡 및 과소비 조장 우려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외 여행객의 면세점이용 비율이 38%를 웃돈다. 입국장 내 혼잡이 빚어지고 과소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요 선진국들은 소수의 여행자 편의보다는 국민의 안녕과 국가 안보 등을 우선시해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 관세와 면세제도를 총괄하는 국제기구인 세계관세기구(WCO)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 국제 기구들도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반대한다. 일본도 최근 소비지국 과세원칙 위반 및 세관의 관리 허점 발생 우려 등을 이유로 입국장 면세점을 도입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국가의 공공시설인 공항을 운영하는 공항공사가 진정 여행자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면세점보다는 화장실이나 탈의실, 휴식공간을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 혼잡한 시간에 인천공항 입국장에 가보면 여행자들이 화장실 앞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기온 차이가 많이 나는 국가에서 온 관광객들은 화장실이 부족해 입국장 주변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실정이다. 인천공항공사는 편의시설보다는 막대한 임대료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면세점 설치에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 여행자 편의를 도모하고 공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읽을만한자료 ▷ 국민여행실태조사 (한국관광공사, 2011)
▷ 방한여행상품개발 기초자료조사 (한국일반여행사협회, 2009)
▷ 쇼핑관광서비스개선 중장기 계획 (한국관광공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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